주마등? 그런 건 없었어. 그냥 슬로우모션.
나도 네비를 사용한다.
바이크 앞에 네비용 폰을 켜놓고, 헬멧 속 그의 음성에 따라 움직였다.
근데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사고가 나고 퇴원한 후야 알았다,
네비는 참고일 뿐, 눈앞의 신호를, 상황을, 잘 봐야 하는 것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나도 당연한 말 같지만,
막상 갓 면허 딴 초짜였던 나에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네비를 너무 믿고 있었고, 심지어 네비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잠시 후 좌회전입니다."라는 말을
난 '좌회전'이라는 말만 듣고 좌회전을 했다.
어?
근데 저쪽에서 트럭이 직진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난 '엥? 나 좌회전인데 저 아저씨는 왜 여기로 오고 있지?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난 내가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트럭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사고가 날 거라는 걸 직감했다.
온 오른쪽 몸이 화염방사기에 지져지는 것 같은 화끈거림과 함께 난 날아갔고
날아가면서 바이크가 처참히 개박살 나는걸 끝까지 눈으로 좇으며 지켜봤다.
'아... 내 바이크... 다 긁히겠네...'
죽을 것 같을 때 뭔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하던데, 난 아니었다.
그냥 모든 순간순간들이 슬로모션으로 머리에 콕콕 박혔다.
정신이 너무 말짱해져서 다 기억이 나는 게 오히려 후에는 괴로웠다.
이전글에 썼듯이 왠지 스펀지밥에 나오는 뚱뚱한 게리 달팽이 슬리퍼를 챙기고 싶어
그 슬리퍼를 배낭에 구겨 넣고 바이크를 타고 있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난 등부터 바닥에 쳐박히며 굴렀지만 그 뚱뚱한 배낭 덕에 등에는 타격이 없었다.
겉으로도 크게 보이는 외상이 없었다.
피부가 갈린다던지 하는 그런 쓰린 상처도 거의 없었다.
그 뚱뚱한 슬리퍼가 바닥에 쳐박힐 때의 충격을 거의 다 흡수해 주었다.
헬멧도 쓰고 있었지만 D링 고리까지 야무지게 엮어 걸지 않고 그냥 똑딱이만 한 상태여서
헬멧은 트럭과 부딪혔을 때 충격과 동시에 벗겨지며 날아갔다.
바이크 신발도 신고 있었지만, 신발끈을 꼭꼭 조여 신어야 한다는 S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신고 벗기 편하다는 이유로 신발끈을 느슨히 묶어둬서 오른쪽 신발도 날아가버렸다.
그 외의 바이크 기어는 하지 않았었다. 그저 바이크 장갑정도,
바이크 의류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뚱뚱한 배낭을 등에 대고 바닥에서 버둥대며 난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무릎 위까지 오는 긴 검은색 양말 밑으로 피가 번지며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었다.
'요거 좀 안 좋아 보이네. 뼈가 왠지 나왔을 것 같아.'
왜인지 오른팔도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덜렁덜렁 거리는 것 같았다.
오른쪽 엉덩이도 자세가 이상했다.
나는 누워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사고가 난 지점은 늘 경찰들이 밤이고 낮이고 지키고 있는 곳이어서
서있던 경찰들이 어슬렁거리며 오기 시작했다.
경찰차를 타고 온 경찰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찰에게 사고 당시를 봤냐고 물었고
그는 "아뇨 저도 사고 나고 봐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아무도 내 가까이로 오지 않았다.
풍기는 뉘앙스는 '오토바이 운전자는 당해도 싸지.' 이런 느낌으로 멀찍이서 구급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트럭 아저씨가 한쪽에 트럭을 세워두곤 쫓아 나오셔서
"괜찮아요?"라고 물으셨다.
난 "네 괜찮은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하고 내가 되물으니
"아니... 난 괜찮지... 아가씨가 문제지 지금" 하시면서 안절부절못하셨다,
다른 경찰들이 슬슬 모였고, 온몸이 꺾여있는 내 자세가 불편해 보였는지, 배낭을 빼주냐고 물어본 경찰분도 있었다. 그치만 그즈음 되니 난 이 상태에서 내 몸을 더 이상 움직이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고, 괜찮다고 했다.
구급차를 불렀으니 곧 올 거라고, 했지만 경찰들은 내 가까이로 절대 오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옆에 같이 앉아서 '괜찮아요. 구급차 올 테니 기다려요.'라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조금이라도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경찰은 "이거 바이크 어떻게 옮겨요? 움직여지지가 않는데?"
나는 버둥대며 "N단으로 놓고 옮기셔야 돼요. 왼쪽에 기어 있어요."
경찰들은 "안되는데? 이런 거 탈 줄 아는 사람 있어? 아가씨 일어나서 와봐 줄 순 없어요?"
그때부터 난 말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개골이라도 빠개지고 얼굴 반쪽이라도 뜯겨 나갔어야
저 사람들은 나에게 일어나서 바이크 옮겨보라고 말하지 않으려나.
바로 옆에 소방서가 있는 곳이어서 정말 바로 구급차가 왔다.
구급요원은 역시나 아스팔트에 피를 적시고 있던 종아리 부분을 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러곤 나보고 "쳐다보지 마시고 다른데 보고 계세요."라고 했다.
그냥 온몸이 불타는 것 같을 뿐 종아리를 처치하는 동안에도 딱히 어딘가가 막 아프진 않았다.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가는 나에게 경찰이 불어보라며 입에 뭔가를 가져다 댔다.
음주 측정기였다.
수치를 보더니 "음주는 아니야."라고 했다.
구급차에 오르면서 난 종아리가 걱정되었다.
"혹시 수술해야 되는 건 아니죠?" 물으니
"네 아마 해야 할 것 같네요."라고 대답하셨다.
수술이라니... 내가 수술이라니!
피 뽑는 게 무서워서 건강검진도 받지 않았던 내가 수술이라니
속으로 계속 '에이 아닐 거야 깁스정도로 끝나겠지.' 했다.
구급차 안에서 내 이름, 생년월일, 신분증, 등등을 묻는 경찰의 조사가 이어졌고,
헬멧, 가방, 바이크신발, 바이크 키 등을 챙겨달라고 하니 챙겨다 주었다.
새벽이어서 그랬는지, 구급차 안에서 여러 군데의 병원에 전화를 돌리는 게 들렸다.
다들 안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여자 오토바이 TA 환잔데요." 하자마자 거절당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알 것 같기도 한 이유가 스쳐갔다.
연락할 보호자가 없냐고 물었는데,
난 S 말고는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에겐 연락할 수가 없었다. 불편하기도 했고, 올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난 전화기 좀 꺼내달라고 부탁하고 S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한데, 나 사고가 났어. 혹시 와줄 수 있어?"라고 했고,
S는 병원 정해지면 알려달라고 금방 간다고 했다.
어찌어찌 날 받아주는 병원이 있었는지,
구급차는 문을 쾅 닫고 매우 거칠게 출발하기 시작했다.
난 슬슬 온몸에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구급대원분께 혹시 진통제를 주실 수 없냐고 여쭤봤지만
병원에서 제대로 봐야 하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하셨다.
난 그렇게 덜컹덜컹 거리는 구급차 안에서
어딘지도 모를 낯선 천장만 보며
병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