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이유를 알 수 없는 일

갑자기 생각보다 아픈데?

by JK

병원에 도착하니 입원 수속을 위해 보험 여부를 물었고,

기억이 나지 않을 아주 어릴 적 입원했던 것 말고는 병원에 올 일이 별로 없었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여기서부터 내 정신은 없어지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은 것 같기도,

머리는 안 다쳤냐고 물은 것 같기도,

평소 술은 얼마나 마시는지,

담배는 피는지,

알러지 반응이 있는 약물은 있는지,

복용하는 약들은 뭐가 있는지.

보험사랑도 경찰이랑도 연락을 해야 하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난 스무고개 같은 대답들에 얼결에 대답했고,

간호사 쌤들은 재빠르게 내 몸에 뭔가를 붙이고 뭔가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난 겁이 너무 나서 S가 도착했는지 물었고,

간호사 쌤은 보호자 밖에 와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S도 자기 여기 있으니 걱정 말라고 선생님들이랑 얘기 중이라고 날 안심시켰다.


그날 하필 점프슈트를 입고 있었어서 수술복으로 갈아입히기 난처해하시길래

"옷 그냥 자르셔도 돼요. 어차피 이제 안 입을 거예요."라고 했다.

쌤들은 내 반지, 피어싱, 시계, 머리끈, 매듭으로 된 팔찌 등을 빼서 따로 보관해 주셨고,

"폴리 해야겠다."라고 서로 말씀하시며,

"소변줄 꼽아야 할 것 같아요. 조금 아플 수도 있어요~"라고 하셨다.

그러나 난 다른 곳이 이미 너무 아프기 시작해서 소변줄 꼽는 건 느껴지지도 않았고,

채혈이며 링거줄이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옷 갈아입혀지느라 몸이 움직여질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별로 없어서 어디가 어떻게 더 다쳤는지를 보기 위해

엑스레이랑 CT를 찍기로 한 것 같았다.

무슨 동의서 같은 걸 내밀면서 사인을 하라고 하는데

사고 당시에는 움직였던 것 같은 오른 팔이 안 움직였고,

난 S에게 위임한다고 하고 왼손으로 겨우 동의서에 무언가를 찌끄렸다.


사고 충격 당시 분비됐던 아드레날린이 줄은 건지,

S를 봐서 안도감이 들은 건지,

이제야 고통이 미친 듯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CT 찍을 때는 기계가 머리부터 발 끝까지 찍을 수가 없어서 몸을 한 번 돌렸어야 했는데 차라리 죽고 싶었다.

영화에서 사람들이 고문당하거나 고통에 시달리면 토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정말 그렇다.

너무 아프면 순간적으로 토하게 된다.


어깨너머로 S랑 선생님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고,

대충 3군데가 골절인 것 같았다.

뜨문뜨문 들리는 대화 소리는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여기보며는.......뼈가 없........인공관절을.........지금 상태에선........수술을........많이 아플텐데.......아마 3차례 정도는......"

정확하게 다 들리지 않고 조각조각 들리는 말소리를 유추해서 조합하느라 미칠 것 같았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소리가 의사 선생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그레이 아나토미의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에 스쳐가기 시작했고,

나는 '치료 거부를 해야 하는 건가? 할 수는 있나? 사고 났던 그 길바닥에서 피가 더 많이 났더라면... 차라리 덜 아프고 바로 죽지 않았을까. S는 무슨 생각을 하려나. 우리 집 개는 어쩌지? 내 카멜레온은... 걘 나 없으면 밥을 못 먹는데... 우리 집 개 어쩌지... 개도 나 없으면 안 되는데... 개를 어쩌지...' 하는 생각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간호사쌤이 아무리 성인이어도 S는 법적 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나 어머니께 연락하는 게 어떻냐고 하셨지만 난 싫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참... 법적 보호자든 친구든 부를 사람이 없는 사람은 정말 서글프겠다. 나도 S 아니면 부를 사람이 없는데, 만약 그랬다면 차라리 병원까지 오지 않기를 바랬겠다. 인간은 죽을 땐 다 혼자구나.' 싶었다.


선생님들은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무통주사와 펜타닐 패치를 붙여주셨고, 난 슬슬 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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