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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영어 작문

Writings

by 블루검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중 모국어가 외국어의 난이도에 견줄 만한 것은 쓰기인 것 같아요.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영어로 에세이를 쓰는 것만큼이나 스스럼없지 않거든요 (저 자신 글쓰기 초보자로서). 영어권인 호주에서 영어 사용자로 길게 살아왔지만 쓴다는 것은 여전히 가벼운 일일 수 없어요. 그건 네이티브 스피커도 마찬가지 일거고요. 쓴다는 것은 시간을 내어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저절로 쌓이는 게 아니라서 어렵게 느껴지는지 몰라요.


가벼운 글이 있다면 하루에도 몇 통씩 오가는 직장 내 이메일이지요. 형식보단 메시지 전달이 우선이기에 말처럼 캐주얼하게 활동하는 글이에요. 그러면서 오해의 여지없이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몇 줄 문장이라도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 본능처럼 다시 읽어보는 수고를 잊지 않아요. 직장 내 이메일에서 타이포(typo)를 거의 찾을 수 없는 건 그러한 관행을 암묵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의미까지 모호하게 하는 타이포는 비호감이 되기 십상이거든요.


“글쓰기는 질보다 양이야.”

“웬 걸, 글쓰기는 양보다 질이지. 학생들 글 들여다보면 제멋대로 길기만 해.”

………


의욕보다 자주 쓰지 못해 글쓰기 양이 아쉬운 저의 한마디에 동료교사가 학생들의 긴 글을 빗대어 응수했어요. 옆에 있던 교사도 맞장구쳤고요. 동문서답에 순간 할 말을 잃었는데요 둘 다 맞는 말이지요. 될 수 있으면 많이 쓰고 쓴 글은 또 많이 고치고 줄여서 명확하고 간결한 글, 좋은 글이 완성되니까요.


지금까지 연재에서 읽기 듣기 말하기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이런 스킬(skill)들은 쓰기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먼저 생각해 봤어요.



읽기가 올킬이에요.


읽을수록 들리는 것처럼 읽을수록 잘 쓰게 돼요. 쓸 때 필요한 철자 어휘 문법 스타일.. 이런 모든 것을 읽기에서 배우거든요. 우리글도 많이 읽은 사람이 잘 쓰듯 영작도 영문을 많이 읽어봐야 잘 쓰는데요, 학교에서 읽는 교과서가 아니에요. 내가 선택한 책들(원서)을 자유롭게 읽는 것이에요. 이렇게 한 다독보다 효과적인 글쓰기 비법은 없을 거예요. 이것은 의식하지 않은 언어습득인데요. 언어란 무의식의 영역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습득되기 때문이에요. 유아기부터 습득하는 듣기 말하기가 무의식이라면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는 의식적 습득이지요. 다 컸지만 독서에 빠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 외국어를 익힐 수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하지 않아요? 어떤 분야든 다독을 하면 쓰기에 도움이 돼요. 단, 시를 쓸려면 시를 많이 읽듯 일기를 쓸려면 실제 다이어리 글을 읽고 평론을 쓸려면 평론 글을 읽어야 잘 쓸 수 있겠지요.


듣기도 쓰기의 토대가 돼요. 우선 들은 것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요약 정리해서 쓸 수 있어요. 들으면서 정보를 모으고 의견을 형성하고 의사결정을 하게 되죠. 이것을 토대로 여러 장르의 영어작문이 가능하고요. 가능하면 녹음도 해서 들어보고 써보세요.


영어도 말해보고 써보세요. 글 하나 뚝딱 써져요. 강원국 작가의 강연에서 배웠는데요, 실제 해보니 말하기가 글쓰기의 준비단계가 되더라고요. 말해보면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정리가 되며 글 쓸 모드에 돌입하게 돼요. 글쓰기가 훨씬 쉬워지는 지점 같아요. 덜 망설여지고 덜 고치게 되고 대화체 형식으로 쓸 수도 있고 매일 쓰기에도 용이해요.



많이 쓴다고 글이 느는 건 아니다!


쓰기는 쓰면서 느는 것이 아니라는 논문을 발견했는데요. 쓰기에 대해서는 스티븐(Stephen Krashen)이라는 미국 언어학자의 연구에 기초해서 적어보도록 할게요. 모국어든 외국어든, 스티븐에 의하면, 글은 많이 쓴다고 느는 게 아니라고 해요. 여기서 쓰기란 스펠링, 어휘, 문법, 문체, 스타일등 외적(언어적)인 쓰기를 의미하는데요, 이런 외적 요소들은 읽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결과라고 해요. “더 읽는 사람이 더 잘 쓴다.”

* Secret of Writing

Secret #1: More writing will not result in better writing form: Writing form is the result of reading.

This may seem like a violation of common sense, but study after study suggests we do not learn to write by writing. In several articles and books (Krashen, 1994, 2004, 2011), I cite studies showing that increasing student written output does not increase competence in first and second language development. But increasing input does increase competence: Those who read more, write better: they spell better, have larger vocabularies, better grammar and a more acceptable writing style.

Stephen Krashen
Research in Language and Education: An International Journal, 2021


습작도 퇴고도 없이 단 한 번에 장편소설 분량을 써낸 작가 박완서님의 케이스도 같은 맥락일까요?

질문자: 처음 써 보는데 1,200매를 다 쓸 수가 있었어요, 선생님?
박완서: 그러믄요. 네.
질문자: 습작을 안 하셨잖아요?
박완서: 습작 안 해도 책 많이 읽으면 돼요.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 당선 후 인터뷰에서
출처: 박완서 나무위키



쓰면 느는 건..

우리는 쓸 때 우리의 생각, 즉 우리의 인식 구조를 표현하는데요. 일단 써 놓으면 두뇌는 더 나은 인식 구조로 변화하려 한대요. 쓰기를 통해 가능한 이것이 진짜 배움이라고 해요. 더 스마트해져요. 사고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생기고 글을 쓰고 고치는 과정에서 영감이 생기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요. 글은 쓸수록 는다는 개념은 글에 이런 깊이와 통찰이 녹아든다는 의미이겠죠.


글쓰기라고 하면 잘 쓴다 못쓴다 뭉뚱그려서 생각하는데 스티븐은 외적 형식(form)과 내적 콘텐츠(contents)를 따로 설명해요. 잘 쓰기 위해서는 읽고 써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하는 영작문을 위해서는 언어적인 측면에 필수적인 읽기에 치중하자는 결론이 나오네요. 갑자기 문장 단위로 하는 필사가 떠올라요.


말하기 듣기 읽기와 달리 문법이 제 구실을 해야 하는 단계가 쓰기예요. 문법을 알아야 문장을 엮을 수 있으니까요. 망건 쓰다 장 파한다고 문법 마스터하다 지금 쓸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요. 쓰면서 필요한 문법을 함께 익혀가세요. 옆에 두고 참고할 수 있는 문법책으로 English Grammar in Use (by Raymond Murphy)를 추천해요.



그럼 어떻게 써야 할까요?


말하기에서 에러와 유창성이 미덕이라면 쓰기는 그에 비해 관대하지 않아요. 대신 사전과 문법을 체크할 여유를 주지요. 단 구글 번역은 피하고 내 문장만을 추구하도록 해요. 문장어순은 중요한 것을 우선 배치하는 순서로 가고 문법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써요. 초고를 쓸 때는 플랜을 짜고 기본 틀(intro-body-conclusion)에 의미만 싣는다 생각하고 단숨에 써내려 가요. 스펠링, 단어, 문법 개의치 말고 전치사 관사 패스하고 의미전달에 집중해요. 헤밍웨이의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라는 명언을 기억하나요? 영어 초고도 예외는 아니겠죠. 퇴고를 거듭하며 글이 나아지는 데요.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콘텐츠 점검이에요. 이 단계를 끝내야 단어, 문장을 손 보고 문법을 체크하는 편집 단계에 돌입해요. 저는 초고에서부터 편집하는 습관이 있는데 샤워도 하기 전에 메이크업부터 해놓는 격이죠. 쓴 글은 보여주고 교정과 피드백을 받아야 완성이 되는데요. 봐줄 사람이 없으면 Grammerly, ChatGPT와 같은 AI 교정 도구를 이용할 수 있겠어요. 온라인 HiNative에 가입해서 네이티브 스피커에게 물어볼 수도 있어요.


* Writing Tip

쓰다가 막힐 때 집안일을 작게 나누어하며 생각을 쉬어준다. 이때 무의식이 살아나 새로운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이 떠오른다.


오래전, IELTS (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를 준비할 때 샘플 글들을 모아봤는데요. 형식이나 내용에서 의외로 쉽게 접근한다는 걸 배웠어요. 어떤 주제의 장단점이나 찬반 의견을 논하는 영어 에세이를 쓸 때는 이런 에세이를 찾아서 많이 읽어보고 기본 틀에 내 어휘와 문장을 주입해 보세요. 쓸 수 있는 어휘목록을 만들어 놓으면 필요할 때 쉽게 꺼내어 쓸 수 있어요. 목록은 그리 거창하지 않을 거예요 (e.g. firstly, subsequently, as a result, finally). 기본 에세이에서 평이하고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들로 목록을 꾸릴 수 있어요.



주의할 점이 있는데요.


첫째는 한국어를 영어로 직역해서 쓰는 경향이에요. 한국어 문장 구조(사고방식)에 영단어를 매치하는 식이죠. 영어도 아닌 것이 한국어도 아닌 것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되어버리죠. 너무 다른 두 언어가 충돌하고 글쓴이의 지적 콘텐츠를 영어가 따라가지 못하는 케이스이죠. 그냥 아는 영어로 쉽게 써봐요. 이를 보강하려면 앞서 언급한 (언어적인 측면을 돕는) 영어원서 읽기가 최선이겠죠.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관심 있는 분야를 다독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빈지 라이팅 (binge writing)이에요. 매일 조금씩 쓰는 것이 날 잡아서 한꺼번에 쓰는 것보다 영작문에도 효율적이랍니다.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매일 글을 썼는데 하루 안 쓰면 리듬이 깨져 회복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고 해요.


박완서님과 디킨스님, 우리랑 많이 다를까요?




참고 논문
Competence in Foreign Language Writing: Progress and Lacunae
by Stephen Krashen & Sy-Ying Lee
from Literacy Across Cultures, Summer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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