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영어
대학 다닐 때 영어 음성학이라는 학과목이 있었어요. 우리는 각자 팝송 하나를 골라 가사 속 영어 발음을 나름대로 연구해 수업에서 발표해요. F.R. David 의 Words 라는 곡을 골랐는데요. 오래된 팝송이지만 가사가 잘 들렸고 허스키한 보이스에 끌렸던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면서 F.R. David 를 검색해 보니 프랑스 가수네요! 낭패감.. 이라기 보단 네이티브 대신 유럽피언의 뭔가 매력적인 음색을 본능적으로 알아봤다고 해둘까봐요.
Words는 2017년 영화 Call Me by Your Name 에 라디오 곡으로 잠깐 흘러요. 참 오랜만이었죠. 유럽에서 이 노래가 한참 히트할 때가 영화의 배경이거든요. 근데 노래가 히트할 때보다, 팝송으로 공부하던 대학 때보다, (그때 안 봤지만) 영화가 아프게 다가왔어요. 어릴 땐 지어낸 영화 이야기로 여겼겠지요. 그런 게 현실이라는 걸 이제는 알거든요. 누군가에게 일어났고 현재도 누군가는 하고 있을 법한 러브스토리이죠. 추억이라는 건 망각 속에서도 속절없이 깊어요.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기를 엿들었어요.
https://youtu.be/qTkF2NkSmU8?si=EgSygFURFHAybTJN
2001년 겨울 시티에서 친구와 영화 데이트를 했어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 팝콘을 사이에 두고 앉아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휴대전화 벨이 찌르르 울려요. 망할 놈의 폰 당장 끄라고 어디선가 으름장이 들려요. 누군지 나처럼 브리짓 존스를 고대하고 맘먹고 출타했구나 싶었어요. 우린 숨 죽이고 자막 없는 필름을 열심히 관람하죠. 브리짓의 표정과 목소리, 다니엘의 센슈얼한 눈빛이.. 다아시와 눈발 키스신이 자막 필요 없이 훈훈했어요. 브리짓 신드롬, 르네 젤위거의 시대가 열린 거죠. 헬렌 필딩의 원작 소설을 사서 완독해요.
배우 폴 뉴먼은 아내 사랑으로 한때 유명했죠. 언젠가 애처가로서의 명성에 대해 질문받자, 집에 스테이크 놔두고 햄버거 먹으러 나가냐고 대꾸했다죠. 평범한 싱글들은 스테이크 옆에 두고 멀리 있는 햄버거를 갈망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다아시와 다니엘 사이에 낀 브리짓처럼요. 그즈음 제게도 다아시(스테이크) 같은 사람이 생겼더랬죠. 스테이크라야 별거 없어요. 나처럼 적당히 그늘이 있고 적당히 유머도 있고 적당히 소탈하고 적당히 감성적이고 적당히 알고 적당히 생기고.. 유별난 게 있다면 큰 눈망울쯤. 스테이크가 오기 전에 이미 알게 된 햄버거는 허우대 좋고 미소가 상큼한 기분파였는데요. 그 미소에 반해 그만 스테이크로 착각해요. 해를 넘기며 러브 하트가 콩깍지되어 롱런하죠. 제멋대로 상상하고 제멋대로 마음 부풀다 결국엔 아웃 오브 리치 란 걸 깨달아요.
브리짓은 바람둥이 보스, 다니엘에 차여 직장도 잃고 한동안 방황해요. 선택은 그녀의 것.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하죠. 신문 구인란을 접수하고 잡 인터뷰에 올인해요. 그때가 그럴 즈음이었어요. 일간 The Age에 난 교사 구인광고에 동그라미 쳐가며 몇 안 되는 인터뷰 자리에 나가 나를 소개한 건. 세상에 홀로 서 내 자리를 찾아간다는 건 그런 거였어요.
연애면 연애, 일이면 일, 나를 표현한다는 건, 세상과 소통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학창 시절 영어 수학만큼만 공부했어도 그리 잼뱅이진 않았을 텐데요. 브리짓이 다니엘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면서 쓰레기통에 내던진 책들 중 What Men Want 라는 책이 보여요. 어제 확인해 보니 이 책이 내 책장에도 꽂혀있는 거죠. 햄버거들의 수수께끼 내면을 공부하느라 분투한 노력이 순진난만했네요. (당시엔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였어요.)
https://youtu.be/bprl206jrNE?si=6lOtqMf5ZP9T7rbm
브리짓의 독백과 인터뷰 장면인데요, 단어와 문장 강세(stress•intonation)는 대중없어요. 브리짓 맘이죠. 포인트를 주고 싶은 곳으로 쏠렸다 흩어져요. 의미를 소통하는 방식이 그녀 특유의 음성과 함께. 영화 리스닝은 결코 쉽지 않아요. 맘에 드는 장면을 골라 반복해서 귀 기울여 들어보시길.
[ At Her Apartment ]
At times like this, continuing with one's life seems impossible and eating the entire contents of one's fridge seems inevitable. I have two choices: to give up and accept permanent state of spinsterhood and eventual eating by alsatians (dogs), or not. And this time I choose not. I will not be defeated by a bad man and an American stick insect (Lara, Daniel’s fiancee). Instead, I choose vodka. And Chaka Khan (American singer).
[ I'm Every Woman, song by Chaka Khan ]
[ Television Job Interviews ]
Why do you want to be in television?
Well, I've realized that I've become deeply committed to communicating to the public the up-to-the-moment and in-depth news both political and ecological.
What do you think about the El Nino phenomenon?
Um... It's a blip. I think, basically, Latin music's on its way out (동문서답).
So, why do you want to work in television?
Because I'm passionately committed to communication with children. They are the future.
Do you have any children of your own?
Oh, Christ, no. Yuck!
Sorry.
So, why do you want to work in television?
I've got to leave my current job because I've shagged my boss.
Fair enough. Start on Monday.
We'll see how we go.
Oh, and... incidentally (by the way)…
At Sit Up Britain (company name), no one ever gets sacked for shagging the boss. That's a matter of principal.
* 발음 Tip
기본 발음만 알면 나머지는 읽고 들으면서 문맥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익힐 수 있다.
* 억양 Tip
리듬을 탄다. 심적으로 나를 잊고 네이티브 스피커 클럽에 가입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브리짓 존스의 사운드트랙 중 영국 가수 가브리엘이 부른 Out of Reach 가 있어요. 라디오에서 즐겨 듣곤 했죠. 단조로운 멜로디가 의외로 힐링을 줘요. 저음인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브리짓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단순한 가사와 허스키한 보이스에 과거 햄버거가 주인공인 양 소록소록 떠올라요. 그 당시 황폐해진 내 마음을 달래준 노래, 아웃 오브 리이치에 색을 입혀봤어요.
Knew the signs
Wasn't right
I was stupid for a while
Swept away by you
And now I feel like a fool
So confused
My heart's bruised
Was I ever loved by you?
Out of reach, so far
I never had your heart
Out of reach
Couldn't see
We were never
Meant to be
Catch myself
From despair
I could drown
If I stay here
Keeping busy everyday
I know I will be okay
……………………..
https://youtu.be/uxfAIVfmRa8?si=W2B5DJoK6uwhWdbB
* 영화•팝송 Tip
영화를 보거나 팝송을 들으며 함께 보낸 시간은 추억으로 남는다. 영화 대사를 메모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면 내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