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 더블린
어쩌자고 난 널 알아봤을까 ~
또 어쩌자고 난 너에게 다가갔을까 ~~
선원 모자를 쓰고 플림솔 신발을 신은 호리호리한 청년이 지나가는 아가씨에 다가가 말을 걸어요. 팔을 흔들며 여유롭고 자신 있게 걷는 그녀 모습에 반한 그는 그 자리에서 데이트 신청을 해요. 서아일랜드 골웨이에서 더블린으로 건너와 호텔에서 일하던 그녀의 이름은 노라. 청년의 갸름한 얼굴과 깊고 투명하게 푸른 눈에 끌린 노라는 그의 데이트 신청을 수락해요. 다음 주 화요일 청년은 약속 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려요. 그러나 노라는 나타나지 않아요. 실망한 청년은 그녀에게 편지를 써요.
60 Shelbourne Road June 15, 1904
I may be blind. I looked for a long time at a head of reddish-brown hair and decided it was not yours. I went home quite dejected. I would like to make an appointment but it might not suit you. I hope you will be kind enough to make one with me - if you have not forgotten me!
James A Joyce.
From the article:
JOYCE, NORA AND THE WORD KNOWN TO ALL MEN
By Brenda Maddox on May 15, 1988
The New York Times
노라는 일에 몸이 묶여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했고 그전에 청년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을 거라 추정하는데요. 그 후 둘은 첫 데이트에 성공해요.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던 청년과 객지생활이 외로웠던 노라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는데요. University College를 졸업한 청년은 스물두 살 더블린 토박이 제임스 조이스입니다. 조심스러운 편지 문체로 보아 아마 그는 여러 날 마음을 졸이다 노라에게 접근한 것 같아요.
겉보기에는 또래 여느 청년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조이스는 철학 문학 역사에 조예가 깊었고 그때 이미 시와 단편소설을 쓰고 있었어요. 그즈음 그가 쓰기 시작한 단편들이 1914년(10년 후) 출간되는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입니다. 나중에 소설 율리시스(Ulysses 1922)를 쓰게 되는 조이스는 영문학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죠.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 원서 읽기 어떨까요? (조이스가 아니라도 관심 있는 작가의 단편집을 골라보세요.) 원서는 첫 두세 페이지가 어렵지 그 후로는 쉽게 갈 수 있는데요. 한 작가의 여러 장단편 작품을 읽다 보면 영어를 보다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어요. 이것을 Narrow Reading이라고 하는데요. 다양한 주제나 여러 작가의 작품을 읽는 단계에 앞서 Narrow Reading을 하는 이유가 있어요.
* Why Narrow Reading?
1. 작가마다 자주 쓰는 단어와 표현,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데 거기에 익숙해지면서 작가의 다음 작품 읽기가 쉬워진다.
2. 작품에서 익숙해진 배경 지식으로 같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쉽게 읽을 수 있다.
3. 매번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데는 새 어휘와 스타일에 적응기가 필요하고 원서 읽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4. 좋아하는 작품들에 몰두하며 문장해독보다 글의 의미를 찾는 읽기가 된다.
Narrow Reading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 선정인데요. 정말 쉽고 재미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포인트예요. 더블린 사람들이 도전으로 다가온다면 해리 포터 시리즈나 빨강머리 앤 시리즈는 어떨까요. Narrow Reading을 충분히 하면 어려운 텍스트를 읽을 준비가 나도 모르게 되어가죠.
한편 더블린 사람들에는 1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요, 그중 마지막 작품 The Dead (죽은 사람들)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T. S. Eliot 은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단편 중 하나라고 극찬했고 누군가는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해요. 이 작품은 조이스 자신과 노라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어서 더 그럴 거예요.
더블린에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와요. 가브리엘 콘로이 (Gabriel Conroy)는 이모들이 해마다 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그레타와 부부 동반하는데요. 질척이는 눈길에 신발이 젖지 않게 골로시(goloshes, 고무 덧신)로 단단히 무장하고 도착하죠. 가브리엘은 골로시 신는 남자로 그레타와 두 이모, 케이트와 줄리아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해요. 막 도착했을 땐 문을 열어준 릴리(집사 딸)에 농담 삼아 한마디 했다가 무안을 당했는데요. 가브리엘의 자잘한 내적 갈등은 조이스 자신의 (상처 잘 받는)내면을 반영한 것 같기도 해요. 음악과 댄스로 파티가 무르익는 가운데 가브리엘은 진짜 강적을 만나게 돼요. 댄스 파트너가 된 미스 아이버스가 그의 아이리시 아이덴티티 (Irish Identity)에 노골적으로 도전하거든요.
— 따질 게 하나 있는데요.
— 나한테요? 뭔데요?
— G. C. 가 누구예요?
— (얼굴이 붉어졌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척 미간을 모으는 가브리엘..)
— 데일리 익스프레스(Unionist newspaper, 영국 주의)에 기고한다면서요. 부끄럽지 않으세요?
— …. 왜 부끄러워야 하죠?
— 난 당신이 부끄러운데요, 그런 저질 신문에 기고하고 있다는 게. 당신이 West Briton (앵글로 아일랜드인)인 줄 몰랐네요.
— …. (데일리 익스프레스 문학 칼럼에 기고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West Briton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황당해도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기가 뭐 해 가브리엘은 그저 힘없이 중얼거리죠. 칼럼에 책 리뷰를 쓰는 것은 정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Nationalist(아일랜드 독립주의)인 아이버스 양은 또, 유럽으로 휴가를 떠나고 그쪽 언어를 배운다는 가브리엘에게 네 나라 네 땅 놔두고 어디 가느냐, 모국어 아일랜드어는 안 배우느냐라고 대꾸해요. 아이버스 양에게 가브리엘 콘로이는 나쁘게 보면 조국을 외면한 배신자, 동정하자면 집을 잃고 밖으로 나돌며 방황하는 지식인이랄까요. 이건 조이스 자신의 현실이었죠. 그는 노라를 만난 1904년 그녀와 함께 아일랜드를 떠나 유럽에 정착해 살아요. 그는 평생 조국 아일랜드와 애증의 관계였는데요 신기하게 작품에서만큼은 더블린을 떠나본 적이 없어요. 그의 작품은 모두 더블린을 담고 있지요.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갈 즈음, 1층 계단 위에 한 여인이 서 있어요. 어두워서 얼굴을 볼 수 없는데요 그녀의 스커트를 보고 가브리엘은 그녀가 아내 그레타라는 것을 알게 돼요. 그녀는 난간에 기대선채 무언가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요. 가만히 들어보니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예요. 그녀의 정적인 모습에서 우아함과 신비를 느낄 정도인데요. 옛 아이리시 음조가 멀고 슬프게 들려와요. 노래 제목이 The Lass of Aughrim 이라고 방에서 노래를 부른 남자손님이 나중에 알려주죠.
“He was in a dark part of the hall gazing up the staircase. A woman was standing near the top of the first flight, in the shadow also. He could not see her face but he could see the terracotta and salmon pink panels of her skirt which the shadow made appear black and white. It was his wife. She was leaning on the banister, listening to something. Gabriel was surprised at her stillness and strained his ear to listen also.”
단편 The Dead (죽은 사람들)를 더 인상 깊게 해주는 오디오 플레이인데요. 생동감 있는 각색이 소설과 견주어 손색이 없어요.
https://youtu.be/_biTFM83phc?si=U6UJViUfPQSWVhhL
46:32 “It’s Gretta, my wife”
48:35 The Lass of Aughrim
마이클 퓨어리 (Michael Furey)라는 소년이 있었는데요. 그레타가 어릴 적 골웨이(Galway)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지요. 그는 가스공장에서 일했는데 몸이 많이 허약했대요. 마이클은 The Lass of Aughrim을 곧잘 부르곤 했는데요. 그는 그레타를 아주 많이 좋아했대요. 그레타는 그의 크고 검은 눈을, 그 안에 담긴 표정을, 그의 목소리를 잊지 못해요.
“It was a young boy I used to know, she answered, named Michael Furey. He used to sing that song, The Lass of Aughrim. He was very delicate. …… I can see him so plainly, she said after a moment. Such eyes as he had: big dark eyes! And such an expression in them - an expression!”
한편 노라에게는 마이클 보드킨 (Michael Bodkin)이라는 어릴 적 골웨이 연인이 있었는데요. 마이클 퓨어리의 모델이 된 인물이지요. 조이스는 1913년 노라와 함께 골웨이 근교 라훈(Rahoon)에 있는 마이클 보드킨의 묘지를 방문해요. 그리고 She weeps over Rahoon 이라는 시를 써요. 시는 그가 6년 전에 쓴 죽은 사람들(The Dead)과 연장선상에 있는데요 이날은 눈 대신 비가 슬프게 왔나 봐요. 사실 아일랜드는 눈이 아주 드물답니다.
Rain on Rahoon falls softly, softly falling,
Where my dark lover lies.
Sad is his voice that calls me, sadly calling,
At grey moonrise.
Love, hear thou
How soft, how sad his voice is ever calling,
Ever unanswered and the dark rain falling,
Then as now.
Dark too our hearts, O love, shall lie and cold
As his sad heart has lain
Under the moongrey nettles, the black mould
And muttering rain.
가브리엘은 잠든 그레타 옆에 누운 채 창 밖 내리는 눈송이를 봐요. 신문이 맞았어요. 아일랜드 전역에 다시 눈이 내려요. 아직 어두운 새벽. 어두운 평지에도 나무 없는 언덕에도 습지에도 서쪽으로 멀리, 어둡고 거친 Shannon 물결 위에도 마이클 퓨어리가 묻힌 언덕 위 외로운 교회당에도 굽은 십자가와 묘비석에도 온 세상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위에 희미하게 눈이 내려요. 잠이 들며 희미해지는 그의 의식처럼요.
“Yes, the newspapers were right: snow was general all over Ireland. …. His soul swooned slowly as he heard the snow falling faintly through the universe and faintly falling, like the descent of their last end, upon all the living and the dead.”
조이스의 문장은 리듬감이 있어 뮤지션들이 좋아한다고 해요. 소리 내어 읽어보면 단어들이 내는 소리가 음악 같답니다. 젊은 시절 조이스는 뮤지션으로서도 재능이 대단했죠. 그래서인지 눈으로 읽을 때도 술술 읽히는 느낌이에요. 들으면서 낭독하면서 즐길 수 있는 조이스의 작품을 아이리시 나레이터가 읽어주는 오디오북과 함께 해요.
https://youtu.be/B9tMtsSW1HY?si=GoNS9sYumDgc6h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