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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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gory of Air by Antonio Palomino, c.1700 @Museo del Prado, Madrid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만끽했다. 나는 옛 폰을 새로운 기기로 바꾸지 않고 몇 년을 버텼다. 테크놀로지에 무관심했고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나를 옛것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랜드라인 집 전화에 애착을 가졌고 차 안에는 GPS 내비게이션 대신 Melway 책지도가 놓여 있었다. 올드스쿨이라 체념하며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이 깃든 아날로그 세계에 머물고만 싶었다. 변하는 세상을 어정쩡하고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의 2010년대는 그렇게 지나갔다.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는 문맹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6권에서 전설의 벨러로폰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며 단 한번 문자 사용이 언급된다. 문자는 위험하고 치명적인 심벌로 묘사된다. 문해력은 특이한 기술이었고 영웅이지만 문맹인 벨러로폰을 끔찍한 곤경에 빠뜨렸다. 자신을 죽이라고 쓰인 서신을 벨러로폰 자신이 메신저가 되어 전달한다는 스토리이다.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세계는 페니키아 문자를 빌어와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구전으로 전해지던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최초로 기록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문자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때론 위협으로 때론 축복으로 다가왔을 이 고대 문자가 21세기 스마트폰을 맞이하는 나의 소회와 많이 달랐을까. 호머의 시는 시-공연자들(poetry-performers)에 의해 그 후로도 오랜 세월 글보다 입으로 전해졌다.
21세기에 읽는 호머의 일리아드
고전 중에 고전, 상상보다 먼 세계, 일리아드를 에밀리 윌슨의 번역으로 읽었다. 고전학자 에밀리는 호머를 평생에 걸쳐 읽었고 일리아드를 번역하는데 6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녀의 번역은 원문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평이한 어휘와 문장으로 고대 그리스문학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럭셔리를 누리게 해 주었다. 호머식 그리스 운문을 강약의 반복 음절을 주입한 전통 영어 운문으로 해석, 단순한 번역을 넘어 문학적 가치를 띤다고 하겠다. 한국에서는 서양고전학자 이준석의 번역이 호평받았다고 하는데 한국어는 한국어대로 번역 작품의 기교와 맛이 다를 것이다.
내레이터 오드라 맥도널드는 나에게 호머가 되어 주었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나란히 가는 Whispersync for Voice기능의 킨들과 오더블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오드라의 내레이션은 날쌘 파도가 들고 빠지듯 극적이고 당차서 처음에는 좀 눌리는 기분이었다. 낭독은 잔잔하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을까. 그녀 나름 서사시다운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오드라는 한순간도 지치지 않고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녀 목소리가 전하는 일리아드의 장렬한 소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매번 반복되는 별칭과 끝없이 이어지는 인명의 나열도 볼륨 있는 목소리에 실려 멜로디가 되었다. 일리아드는 역시 입으로 전해 듣는 문학이었다. 오드라는 미국 브로드웨이 배우이자 가수이다.
별칭
일리아드는 독특한 이야기 테크닉과 스타일이 있다. 음유시인 호머는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이런저런 방식을 고용한 것 같다. 인물과 사물을 묘사할 때 새로운 형용사를 찾느라 버벅거릴 필요가 없었다. 아킬레스는 언제나 발 빠른 아킬레스, 필리어스의 아들이다. 다이어미디스와 메널라우스는 함성의 마스터이고 아가멤논은 에이트리어스의 아들, 사람의 신이다. 여성 캐릭터는 하나같이 하얀 팔에 후행 드레스 차림으로 깔끔한 허리띠를 맸으며 머리를 땋았다. 배는 항상 검은 배, 빈 배이다. 제우스는 하늘이 맑을 때도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이다.
우리도 예부터 별칭을 즐겨 썼다. 이름 대신 참판댁, 개성댁, 처남댁이라 불렀고 다산(정약용), 송강(정철)처럼 따로 호를 지어 불렀다. 거시기 그 양반 하면 알아먹듯 누구인지 모두가 아는 정겨운 호칭들이다. 나도 내게 걸맞는 별칭이 하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트로이의 전사들처럼 거창하진 않아도 내 이름을 걸고 나를 대신할 수 있는 문구가.. 꺽다리 전봇대, 입 큰 아이, 초등 때는 반 아이들이 맘대로 지어 불렀다. 외모를 가지고 놀려서 얄미웠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도 별명 따위 붙여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짓궂게 각인됐던 그 애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동화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발 빠른 아킬레스, 눈 큰 헤라는 시인의 동심이 발동한 별칭이리라.
에피셋(epithet)이라고도 하는 별칭은 서사시에 장중한 감을 줄 뿐 아니라 멜로디 같은 리듬감을 주고 리듬은 또 감정과 뒤엉켜 서사에 극적 효과를 더한다. 전쟁 영웅들은 죽기 직전까지 별칭을 붙여 엄포를 놓다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별칭 위에 저주를 토해냈다. 별칭은 명예를 부여하는 의식이었고 명예는 그들에게 전부였으니.
카탈로그
1919년 5월 이만 명의 그리스 군대가 서아나톨리아 스마나(현 이즈미르)에 상륙했다. 그리스-터키 전쟁발발. 12세기에 빼앗긴 고대 그리스 영토를 되찾는다는 명목으로 그리스가 영국 등의 지원을 받아 터키를 침략한 것이다. 트로이 전쟁 이후 3100년이 지난 시점 일리아드의 비극은 재현되었고 교전국과 사령관, 병력을 문서화한 아나톨리아 전투 카탈로그가 재탄생한다.
일리아드의 또 다른 전개 방식은 카탈로그이다.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각 지역에서 동맹 집결한 군대장들과 병사들의 출신지, 함대 수를 나열하며 2권에서 약 260행을 할애한다. 카탈로그는 전쟁의 방대한 스케일을 환기시키고 서사 안에 담지 못한 모든 병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격이다. 하나의 목소리로 방대한 스토리를 커버하는 음유 시인에게 카탈로그는 열개의 목소리가 되어 주고 전투에서 스러진 모든 전사들을 기억하게 해 준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로크리안들 중에서는 오일리어스 왕의 아들, 날쌘 에이잭스가 대장이었다. 그는 텔라몬의 아들, 위대한 에이잭스보다 훨씬 작아서 작은 에이잭스로도 알려져 있다. 에이잭스는 작았고 린넨으로 된 코르셋을 입었지만 창 던지기의 일인자였다. 그와 함께 오포이스, 아름다운 알지아이, 사이누스, 베사, 스카피, 타아피, 칼라이어루스, 보아그리우스 개울 옆의 트로니우스에 살던 이들이 트로이에 집결했다. 40척의 검은 배가 신성한 유비아를 마주 보는 로크리스의 병사들을 태우고 왔다.”
확장 직유
구전시 일리아드의 가장 아름다운 테크닉은 확장 직유일 것이다. 확장 직유는 직유의 부분이 길게 또는 넓게 입체적으로 확장되는 비유법이다. 직유는 카탈로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세계를 그 안에 담을 수 있게 해 준다. 평화로운 일상, 동물의 세계, 신이 움직이는 자연이 하나의 이야기로 전쟁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삼백 개 이상의 길고 짧은 직유로 시적이고 생생한 이미지를 그려내며 되풀이되고 이미 알고 있어 익숙한 부분도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제우스가 눈보라를 만들고 바람을 잠재워 끝없이 눈을 보내는 겨울 폭설에 두껍게 내리는 눈과 같았다. 산봉우리와 바위들과 비옥한 농장과 클로버로 무성한 들판이 눈에 쌓이고 바위 해안, 만, 회색 바다도,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도 전부 눈이 덮었다. 높은 곳의 제우스가 세상을 짓누를 때 사방의 모든 것이 그렇게 눈이 되었다. 트로이 군이 그리스 군에 그리스 군이 트로이 군에 던지는 돌들이 그렇게 무수히 날렸다.” 그리스 군의 방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두 군대가 서로를 향해 던지는 돌을 눈에 비유했다. (12권)
트로이 편을 든다고 호통치는 포세이돈에게 아폴로는 연약하고 비참한 인간을 나뭇잎에 빗댔다. “나뭇잎처럼, 인간은 생명으로 불타오르고 땅의 곡식을 먹으며 잠시 번성하지만 곧 시들고 쪼그라들어 죽는다.” 고 하며 인간 생의 덧없음을 암시하고 그들이 서로 싸우게 두자고 한다. (21권)
트로이 성 밖에 서서 아킬레스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헥터를, “독을 삼키고 쓰디쓴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의 은신처에 숨어 똬리를 틀고 앉은 채 인간을 물기 위해 죽음의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는 산뱀”에 비유했다. 헥터의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22권)
샤를 보들레르는 그의 시 백조에서 파리 시내를 거닐며 헥터의 미망인 안드로마키를 떠올린다. 돌아갈 수 없는 옛 파리를 그리워하며 이국의 작은 개울에서 트로이의 시모에스 강을 그리며 한없는 눈물을 흘려보낸 그녀의 장엄한 슬픔을 생각한다. 작은 개울은 그녀의 괴로움을 비춘 가엾고 애달픈 거울이다. 보들레르 자신의 고립과 노스탤지어가 가족과 고향을 잃고 떠도는 그녀의 영혼을 만났다.
그 외 일리아드에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다른 에피소드와 대칭을 이루는 패턴, 이야기 속에 살아있는 수많은 신화, 베틀의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는 스토리 전개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기념비적인 서사로 가득하다.
어떤 목소리와 귀가 동시에 존재할 때 문학은 존재한다. 문학은 원래부터 혼잣말이 아니었다. 호머는 청중의 에너지를 받아 기나긴 서사시를 완성해 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타고난 문학적 소질에 혼신의 힘을 발휘해 완성한 일리아드를 서사시의 여신 칼리오페에게 바쳤을지도 모른다. 신에 봉헌하는 일리아드의 모든 인물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게 되어 있는데 칼리오페의 보답으로 호머는 불멸의 문학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을지도. 아킬레스의 분노와 상실이 인간애와 공동체라는 희망으로 치유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고대에 이미 자리 잡은 인문학적 면모를 엿보았다. 올드스쿨이라 자처하며 21세기를 헤쳐가는 나의 정신적 차원은 어느 시대에 머물러 있을까 스마트폰에 담긴 반짝이는 청동기 문학을 음미하며 생각해 봤다.
트로이 전쟁은 실존했으며 호머가 일리아드의 유일한 저자라는 가정하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