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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검 Jun 12. 202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넌 누구야?



고양이 한 마리가 뒤뜰 한가운데 앉아있다. 햇살이 따사로운 오월 한낮이었다.


놀란 내 눈과 역시 놀랐을 고양이 눈이 마주쳤다. 서로 인사라도 나누는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빤히 보고 있는 동그란 눈이 호박빛을 발했다. 별일이지만 별수 없이 지나쳤다.


가을 햇살에 무화과가 짙어졌다. 올리브 열매도 이제 보랏빛이 제법이다. 길어진 잔디는 고개 숙인 벼처럼 하늘거렸다.


잠시 후 돌아와 보니 감쪽 사라졌다.


벌써 간 걸까. 주위를 삥 둘러보니 이 세계에서 몇 발짝 떨어져 앉아있다.


지금 지는 낙엽이런가. 상체는 노랑 바탕에 갈빛이, 하체는 굵은 검정 줄무늬가 나선형으로 감쌌다.


가을 고양이. 묵직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호박이런가.* 그 자태가 제법 태연했다. 깜짝이 자못 깜찍함으로 변해갔다.


문득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생각났다. 그 눈이 왠지 방금 본 고양이 눈과 닮았다.


나를 지그시 바라봤던 눈빛은 그를 빼고는 누구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도 어느  예고 없이 나를 방문했다. 열쇠를 두고 나와  앞을 서성이던 그를 우리  하우스메이트가 보고 내게 살짝 귀띔했다. 이웃집 학생이 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고. 추운데  됐다는 생각에 내 방으로 선뜻 초대했다.


그건 우연이었다. 그 시간에 내가 집에 있었고 그는 이웃집 문밖에 서 있었고 하우스메이트가 지나갔다.


첫 만남의 장소치고는 편리했다. 내 방 난로 옆에 쪼그려 앉아 어색함에 안달이 나는 듯, 왠지 따가운 하우스메이트의 눈길을 피하려는 듯, 겁난 고양이 마냥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혼자서 종알댔었다.


묻지도 않은 말들을 늘어놓다가 혹시 자기가 방해가 되냐고 한번, 한번 더, 세 번 물었다. 큰 눈으로 지그시 나를 바라봤으리라. 그 눈은 유난히 크고 빛났다.


고양이가 왔다는 건 좋은 징조라지만 우려가 앞섰다. 5년 전 임신한 길냥이를 떠안아 뜻하지 않게 고양이 집사로 살아가는 쌤에 톡을 날렸다. 그녀도 고양이과는 아니어서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게 상책이로소이다 한다.


고양이 한 마리가 홀연히 나타나 야무지게 자리 잡고 앉아있다고 옆집에 문자로 호들갑을 떨었다. 길 잃은 아이일지도 모르니 사진을 찍어 지역 분실 애완 웹사이트에 올립시다 한다.


만약 주인은 안 나타나고 애가 뭉개고 안 떠나면 너희 집 마당으로 보낼 거라 했더니 우리 집 강아지가 죽일 거라며 웃음이 찍혀 왔다.






한참 볼일을 보고 나중에 나와보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런, 고민을 앞당겨하다니. 어느 이웃집 고양이가 마실 다녀 간 걸까.


또 놀러 와, 다시 보면 좋겠다. 난 그저 누구 선생처럼 고양이랑 동거할 자신이 아직 없거든. 한 번 키워본 적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금방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동물하고 가까워진다는 건 시간이 필요한 걸 거야. 그저 오늘 반짝 선물이라 해 두자. 오래전 내 방에서 잠시 쉬다간 눈이 큰 아이처럼.


한동안 돌보지 않아 거의 숲이 되어버린 뒤뜰만 뇌리에 무성하겠지.


어느덧 가을 물 든 뜨락에 다시 발을 담근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편 자서.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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