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구야?
고양이 한 마리가 뒤뜰 한가운데 앉아있다. 햇살이 따사로운 오월 한낮이었다.
놀란 내 눈과 역시 놀랐을 고양이 눈이 마주쳤다. 서로 인사라도 나누는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빤히 보고 있는 동그란 눈이 호박빛을 발했다. 별일이지만 별수 없이 지나쳤다.
가을 햇살에 무화과가 짙어졌다. 올리브 열매도 이제 보랏빛이 제법이다. 길어진 잔디는 고개 숙인 벼처럼 하늘거렸다.
잠시 후 돌아와 보니 감쪽 사라졌다.
벌써 간 걸까. 주위를 삥 둘러보니 이 세계에서 몇 발짝 떨어져 앉아있다.
지금 지는 낙엽이런가. 상체는 노랑 바탕에 갈빛이, 하체는 굵은 검정 줄무늬가 나선형으로 감쌌다.
가을 고양이. 묵직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호박이런가.* 그 자태가 제법 태연했다. 깜짝이 자못 깜찍함으로 변해갔다.
문득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생각났다. 그 눈이 왠지 방금 본 고양이 눈과 닮았다.
나를 지그시 바라봤던 눈빛은 그를 빼고는 누구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도 어느 날 예고 없이 나를 방문했다. 열쇠를 두고 나와 집 앞을 서성이던 그를 우리 집 하우스메이트가 보고 내게 살짝 귀띔했다. 이웃집 학생이 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고. 추운데 안 됐다는 생각에 내 방으로 선뜻 초대했다.
그건 우연이었다. 그 시간에 내가 집에 있었고 그는 이웃집 문밖에 서 있었고 하우스메이트가 지나갔다.
첫 만남의 장소치고는 편리했다. 내 방 난로 옆에 쪼그려 앉아 어색함에 안달이 나는 듯, 왠지 따가운 하우스메이트의 눈길을 피하려는 듯, 겁난 고양이 마냥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혼자서 종알댔었다.
묻지도 않은 말들을 늘어놓다가 혹시 자기가 방해가 되냐고 한번, 한번 더, 세 번 물었다. 큰 눈으로 지그시 나를 바라봤으리라. 그 눈은 유난히 크고 빛났다.
고양이가 왔다는 건 좋은 징조라지만 우려가 앞섰다. 5년 전 임신한 길냥이를 떠안아 뜻하지 않게 고양이 집사로 살아가는 쌤에 톡을 날렸다. 그녀도 고양이과는 아니어서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게 상책이로소이다 한다.
고양이 한 마리가 홀연히 나타나 야무지게 자리 잡고 앉아있다고 옆집에 문자로 호들갑을 떨었다. 길 잃은 아이일지도 모르니 사진을 찍어 지역 분실 애완 웹사이트에 올립시다 한다.
만약 주인은 안 나타나고 애가 뭉개고 안 떠나면 너희 집 마당으로 보낼 거라 했더니 우리 집 강아지가 죽일 거라며 웃음이 찍혀 왔다.
한참 볼일을 보고 나중에 나와보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런, 고민을 앞당겨하다니. 어느 이웃집 고양이가 마실 다녀 간 걸까.
또 놀러 와, 다시 보면 좋겠다. 난 그저 누구 선생처럼 고양이랑 동거할 자신이 아직 없거든. 한 번 키워본 적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금방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동물하고 가까워진다는 건 시간이 필요한 걸 거야. 그저 오늘 반짝 선물이라 해 두자. 오래전 내 방에서 잠시 쉬다간 눈이 큰 아이처럼.
한동안 돌보지 않아 거의 숲이 되어버린 뒤뜰만 뇌리에 무성하겠지.
어느덧 가을 물 든 뜨락에 다시 발을 담근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편 자서. 나쓰메 소세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