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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검 Oct 05. 2023

매일 신어도 좋아

새벽녘 눈을 떴다. 바람소리가 사위를 휘젓고 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일어나야  시간이었다. 출근해야지.. 운동화 신고. 가벼운 운동화를 떠올리니 아침이 가벼워지고 운동화를 신고 활개   있는  직장이 새삼 좋았다.  운동화는  높은 운동화도 스니커즈도 아닌 아식스  카야노 트레이너이다. 그야말로 운동할  신는  신발에 안착한 지도 벌써 수년이 되어간다.  전에 나는 하이힐족이었다. 하이힐을 신고 출근길을 씽씽 달려 가뿐히 트렘에 올랐고 교실에서 하이힐을 신고 수업을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다만 그런 시절은 지속되지 않았다. 어느  오른쪽 발이 왼쪽보다 넓어진  알았다. 오른쪽 발에 버니언(bunion) 생긴 것이다.  발에 생긴 이상변화를 두고만   없었고 그동안 꿋꿋하게 버텨준 두발을 돌봐야  시기가  것임을 직감했다.  후로 운동할 때는 물론이고 직장이고 만남의 장소이고 아식스 트레이너는 유일한 나의 외출화가 되었다. 옷맵시를   있는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운동화에 맞춰 코디 아닌 코디를 했고 위아래가 어색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운동화는 어느새 나와 동체였다.


4학기 첫날 새로 등록한 학생  명이 우리 반에 들어왔다. 갈색 피부의 버마출신 남학생은 태국 국경 피난민 캠프에서 왔고 자녀가 셋이 있다고 했다. 긴장한 얼굴 표정과는 달리 발가락이 보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학교에  때는 발등 덮는 신발을 신고 오라는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아빠한테 그런 것까지 말하기도 그렇고 워낙 많은 그쪽 학생들이 그래왔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평생을 슬리퍼에 의지하고 살아온 와일드한 발을 하루아침에 규격 안에 넣을 수는 없는 것이리라. 슬리퍼를 신고 겨울을 나건 기차여행을 가건 발에 생채기가 나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포장도로 부재의 땅에서 몬순 시즌 진흙탕도 열대의 무덥지근도 생존하게   질긴 슬리퍼를 하루아침에 벗어던질  없을 . 슬리퍼는 이미 그들의 일부였다. 그들도 속으론 선생은  맨날 운동화만 신는지 의아해할지 모른다.


나란 누구인지 더듬어가 보았다. 호주에 살면서 쌀로 밥을 지어먹고 피자도 즐겨 먹는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쓰고 왓츠앱도 좋지만 카톡은 우리거라  좋다. 외국 친구보다 한국 친구와의 잡담이 실감 나고  브런치에, 이메일은 영어로 한다. 내가 무얼 입건 무얼 신건 무얼 먹고 소비하건  일을 어떻게 진행하건 이젠 아무도 터치할  없다는 자존심(?) 있다. 남의 눈치를 보고 오락가락하는 예전의 나는 온데간데 없다. 나는  퉁퉁거리고  찡그리고  친절하고  차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행복해진 것도 같고  불행해진 것도 같다. 하이힐도 옷맵시도 다른 것도 잃어 갔지만 그만큼 내게 없던 것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내가  건지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조금씩 변해서 새로운 내가 된다는  기분 좋은 일이다.


수업하다 급할  교실 복도를 따라 복사기로 담박질치곤 한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운동도 되는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운동화를 신고 사뿐 걸으면 통통 튀는 기분이 우아한 하이힐 부럽지 않다. 부끄럽지 않은 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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