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깨금나무라메유?
“깨금나무가 워치게 생겼나 했더니 이냥 생겼구먼유. 보니께 나무가 미끈허질 않구 다다분허니 영 개갈 안 나게 생겼네유. 그런디 안 없애구 왜 그냥 내버려 두신댜. 밭둑에 있는 나무를 살리니께 올 적 갈 적에 걸리적거러쌓서 일허기만 망허구 들 좋더먼.”
“평생 여기 살면서두 보기는 시방이 츰이라메유. 그런 귀헌 나무를 중허게 여길 섟에 없애기는 왜 없앤대유. 냅둬유. 일허기가 망해두 내가 망헐 테니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이문구. p.100)
우연히 훑어내린 한 구절에 홀딱 반해 서점을 둘러보았다. 나는 너무 오래 기다리거나 머뭇거렸나 보다. 이문구의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는 오래 전부터 절판이었다. 중고라도 끼고 앉아 사전을 곁눈질해가며 하릴없이 맹렬히 독서할 밖에. 맹독 같은 그의 언어에 내 피가 이미 오염되어 돌고 있으니.
소설집에 수록된 나무 연작 중, 장이리 개암나무의 한 구절을 만만찮은 전라•경상 사투리로 고쳐 써보았다. 경상도 버전은 친구가 도와주었다. 걸쭉한 이문구의 입담이 타 지역의 방언을 입고도 그 맛이 온전할까. 소설의 맛깔난 향토색에 70년대 농촌의 농민 이야기라도 무작정 끼어들고 싶어졌다.
“이게 가얌나무라메? 가얌나무가 어뜨게 생겠는가 했드만 이리 생겼네이. 본게 나무가 매끈 안 허고 다닥다닥허니 원체 시원찮게 생겼네이. 근디 안 없애고 왜 그냥 보고 있당가. 밭두렁께 있는 나무를 살리잔게 올 때 갈 때 걸리작거러쌓서 일허기만 사납고 안 좋드만.”
“역서 평생 살았어도 보기는 이참이 첨이랑 게. 그런 귀헌 나무를 이뻐해야재 없애기는 왜 없앤당가. 냅두랑게. 일허기 사나와도 내가 사날랑게.”
(전라도)
“이기 귀암나무라 캤나? 귀암나무가 우찌 생깄는고 했드마는 이리 생깄는가 베. 보이 나무가 매끈 안 하고 다닥다닥 영 씨언찮게 생기뿟네. 근데 와 안 없애고 그냥 내뿌리 두노. 밭두렁에 있는 나무를 살릴라꼬 올 적 갈쩌게 걸리적거리싸서 일하기만 힘들고 안 좋그마는.”
“평생 여서 살아도 이번에 첨으로 보는 기라서. 그리 귀한 나무를 중하게 해야지 없애기는 와 없앨라카노. 내삐두라. 일하기 힘들다 캐싸도 내가 힘들고 말라칸다.”
(경상도)
“이게 개암나무라면서요? 개암나무가 어떻게 생겼나 했더니 이렇게 생겼네요. 보니까 나무가 매끈하지 않고 다닥다닥 영 시원찮게 생겼어요. 근데 안 없애고 왜 그냥 내버려 두신데요. 밭둑에 있는 나무를 살리니까 올 때나 갈 때나 걸리적거려서 일하기만 힘들고 안 좋더라고요.”
“평생 여기 살면서도 보기는 이번이 첨이에요. 그런 귀한 나무를 중하게 여겨야지 없애기는 왜 없애요? 놔둬요. 일하기 힘들어도 내가 힘들 테니까.”
(표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