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처럼 음악처럼

cadence

by 블루검



얼마나 좋아요. 읽고 싶은 원서 한 권을 골라 스토리 위주로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건. 그 즐거움에 리듬감이 빠질 수 없겠죠.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감각에 몸을 맡겨보기로 해요. 단어와 문장, 리듬이 주는 쾌감과 문장 사이에 끼인 감정을 느껴봐요. 읽고 또 읽고 고치기를 반복한 작가의 혼이 담긴 글일 거예요. 글이 음악 같은 작품 몇 개를 모아봤어요.





He pushed open the latchless door of the porch and passed through the naked hallway into the kitchen. A group of his brothers and sisters was sitting round the table. Tea was nearly over and only the last of the second watered tea remained in the bottoms of the small glass-jars and jampots which did service for teacups. Discarded crusts and lumps of sugared bread, turned brown by the tea which had been poured over them, lay scattered on the table. Little wells of tea lay here and there on the board and a knife with a broken ivory handle was stuck through the pith of a ravaged turnover.


Irish tea & turnover bread


___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제임스 조이스 p176 Penguin Books


16세의 스티븐(젊은 제임스 조이스)은 진로를 고민하며 방황하다 귀가해요. 빗장 없는 현관문을 열고 텅 빈 홀을 지나 들어선 부엌 테이블엔 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어요. 찻잔 대신 쓰는 유리 단지와 쨈병, 두 번 우려내 마시고 남은 차, 찻물이 들어 널려 있는 빵 부스러기, 손잡이에 금이 간 나이프가 보여요. 가난한 식탁도 언어로 반짝일 수 있구나 싶었어요. 엷은 찻물이 스민 빵처럼 그 안에 리듬이 배어 있거든요.


디테일한 그림이 기억에 남아 돌아가 본 문단인데요, 눈으로 읽는 게 지지부진해 오디오북으로 듣던 중 여운이 남았던 곳이에요. 종이 위 글자가 소리로 공기 중에 퍼질 때 우리도 해방감을 맛보는지 몰라요. 조이스의 문장은 소리 내어 읽는 즐거움이라고 그 동네 작가들은 입을 모아요. 하루 평균 A4 용지 반의 반 장을 쓸 만큼 조이스는 글 쓰는 속도가 느렸다고 하는데요 (완성하는데 8년 걸린 율리시스 기준). 글이 그림으로 리듬으로 문학으로 태어나는데 들어가야 하는 품인지 몰라요.


한편 형용사들의 모임이 심상치 않은데요. latchless, naked, discarded, scattered, broken, stuck, ravaged. 점진적인 하강이 어둡게 가라앉은 스티븐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죠. 어린 시절 중산층이었던 스티븐의 가정은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부실한 재정관리로 가세가 기울었어요. 맏이인 스티븐 밑으로 아홉 명의 동생들이 있었고 대식구가 여러 번 이사를 다녀야 했지요. 어린 동생들은 천사처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가냘프고 천진한 목소리에 피로감이 묻어나 스티븐의 마음은 아려요.





The ivy whines upon the wall

And whines and twines upon the wall

The ivy whines upon the wall

The yellow ivy on the wall

Ivy, ivy up the wall


___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제임스 조이스 p193 Penguin Books


대학 등굣길, 스티븐은 종잡을 수 없는 리듬에 휩싸였어요. 벽 위에서 담쟁이가 우는 소릴 한다니 맙소사 이런 난센스가.. (나 또한 동감) 옐로 아이비는 괜찮아.. 옐로 아이보리도.. 아이보리 아이비는 어떤가? 의식의 흐름이란 이런 걸지도. ivory ivy on the wall, ivy ivy up the wall..





콩너물 대가리 안 먹는 애덜 어거지루 피아노 학원 보내구,

눈썰미 없는 애덜 어거지루 미술학원 보내구 허는 게 다 뭐 간디,

보내는 대루다가 됐으면 이 나라가 온통 음악가 천지, 미술가 천지, 예술가 천지 되었게?

그게 아닌 중 뻔히 알면서두 보내구들 있잖여.

왜 넘덜이 보내니께 나두 보낸다 이거여.

내 새끼 기 안 죽이려면 개성이니 창의성이니 허는 거 다 말짱 헛거구.

오로지 넘덜 허는 대루 해서 가급적이면 평균적인 애루, 기성품적인 애루 질러야 되는 줄루 알구덜 있기 땜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게여.

아 생각을 해보라구.


___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이문구 장천리 소태나무 중에서


우리글은 소리 내어 읽지 않아도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죠. 이 글을 최주봉 같은 충청도 출신 배우가 읽어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요. 사투리와 유머에 운율까지 더해져 우리말이 더없이 정겨워요. 이런 글을 쓰자면 내면의 끼와 흥이 한몫할 것 같은데요. 이문구 작가에게 글쓰기란 흥겨운 가락을 제조하는 오락 같아요. 고뇌보다는 해소 쪽에 가까워 보이거든요.





In the weeks they’ve been apart, his emails to Marianne have become lengthy. He’s started drafting them on his phone in idle moments, while waiting for his clothes in a launderette, or lying in the hostel at night when he can’t sleep for the heat. He reads over these drafts repeatedly, reviewing all the elements of prose, moving clauses around to make the sentences fit together correctly. Time softens out while he types, feeling slow and dilated while actually passing very rapidly, and more than once he’s looked up to find that hours have gone by. He couldn’t explain aloud what he finds so absorbing about his emails to Marianne, but he doesn’t feel that it’s trivial.


Irish miniseries, Normal People 2020


___Normal People, 샐리 루니 p156


코넬이 마리엔에게 이메일을 쓰는데요, 시간 날 때마다 초고를 써 놓고 읽고 또 읽으며 문장을 들었다 놨다 빈틈없이 퇴고해요.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것만큼이나 공을 들이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시간이 훌쩍 가버리죠. 무엇이 그리 몰입하게 만드는지 모르지만 그런 시간이 아깝지 않아요. 둘은 연인이라기 보단 친한 친구인데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실은 무척이나 맞는 사람인 걸 이때는 잘 몰랐어요.


친구에게 정성껏 써 보내는 편지만큼 좋은 습작이 없을 듯해요. 아일랜드 신예, 샐리 루니도 그러면서 작가가 됐을까요? 독자와의 인터뷰에서 보면 소탈하고 솔직하던데요 그녀 소설도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수수한 문장과 행간에 잘 숨긴 감정이 매력 포인트라고 할까요. 요즘 문학 트렌드 고민하지 않아요. 페이지가 스무스하게 넘어가면 그걸로 만족이죠. 그러기 위해 샐리는 써서 퇴고한 분량보다도 삭제한 분량이 많았나 봐요.





마지막으로, 미국 작가 윌리엄 진서가 글쓰기 생각쓰기(원제: On Writing Well)에 담은 일화를 소개해요. 윌리엄은 어느 프로그램 기사에 이런 문장을 넣었대요. They don’t look like cities that get visited by many visiting artists. 에디터가 문장을 고쳐 보내기를, They don’t look like cities that are on the itinerary of many visiting artists. 같은 단어(visit)의 반복을 피하려는 의도인데요. 윌리엄은 운율을 위해 일부러 반복한 거라고 해요. 둘은 서로 양보 없이 버티지요. 결국 단어 하나에 자존심을 건 윌리엄이 이겨요. 운율이라는 게 작가에겐 하나의 장치이고 독자에겐 반전 내지는 기분전환이 된다고 하네요.


* 윌리엄의 Tip

소리와 리듬을 우선순위에 둔다.

운율이 좋으면 때에 따라 같은 단어 반복도 불사한다.


운율이니 리듬이라는 건 우리 안에 본능적으로 있는 걸 거예요. 꼬마 적 따라 부르던 동요에서, 유년기를 맴돌던 시구절에서, 아니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 듣던 자장가에서부터 우리는 이미 내면화하고 있었거든요. 언어적 감각이라는 건 제임스 조이스처럼 그쪽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의를 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영어에 예민해지고 싶어 한 음절 한 소절에서 오는 감, 그 소리와 울림에 귀 기울여봐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