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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Jul 22. 2024

정병러 일지 08

정병러의 가족 혹은 친구들의 건강을 위해 

 내 짝은 상당히 밝은 사람이다. 감정의 면역력이 짱짱한 사람. 그래서 나는 나의 우울이 그에게 감염되지 않는다는 크나큰 착각을 했나 보다. 그에게 시시콜콜한 기분 따위를 털어놓곤 했었다. 항상 따라다니는 불안이나 걱정거리를 주로 말했었고, 너무 우울할 때는 식사도 포기한 채로 잠을 자는 모습을 보였었다 (내가 끼니를 거른다는 것은 정말 큰일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언제나 짝은 시를 쓰고 노래를 하니 나의 착각은 더 심해질 수밖에.


 어느 날, 짝이 신경림의 '갈대'라는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사인즉, 나를 흔들리게 하는 것이 곧 나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짝이 갈대가 되었을까... 하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가끔씩 숨을 크게 쉬곤 했었지. 내가 왜 한숨을 쉬냐고 하면 큰 숨을 쉬는 것이라 고쳐 말했었지. 미간에 주름이 늘어나고 있어. 

한 번씩 '나는 걱정이 없는 사람인데, 요즘 걱정이 느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어. '내 걱정은 당신뿐'이라는 말도 했었어. 


 그랬다. 나의 우울이 전염된 것이었다. 그의 행복 바이러스가 나에게 전염될 줄 알았는데 내 우울 바이러스의 힘이 더 컸다니, 다시 우울해지려고 했다. 그러면서 엄청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정병러에게 크나큰 위기가 있다. 바로 자살 충동이 올 때이다. 그때는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물어 봐줘야 한다. '자살에 대해 생각해 봤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 있니' 등등...


 그러나 그런 순간이 아닌 경우에도 불안과 우울 지수가 높은 정병러가 있다. 나 같은 경우가 그렇다. 불안과 우울을 약으로 다스리긴 하지만 잘 안될 때도 있다. 어쩌겠는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연히 그런 기분이 스멀스멀 번져간다. 어느 순간 나를 더 잘 캐치하게 된 짝은 그 순간이 힘들어진다. 그도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다.


 어느 날 이 문제를 두고 한참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결국은 둘 다 서로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행복을 바라기에 그것이 고민이 되어 스스로를 옥죄었다. 그래서 둘 다 수렁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힘에 몸을 빼면 빠져나올 수 있을 터인데 용을 쓰고 있었다. 정병러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정병러를 구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행동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끔 잊곤 한다. 몸에 힘을 빼고 옆에 있어 주는 것. 본인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견뎌주는 것. 이것이 그들에게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지 정병러 옆에 오래오래 있을 수 있다. 그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겠지만 옆에서 있어주기만 해도 정병러에게는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정병러는 스스로 앉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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