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는 스승

퇴사한 동료에게 스승의 날 메세지 받고 별안간 눈물흘리며 쓰는 스토리

by 하타

새 프로젝트에 함께하며 자발적 크런치 2주차를 시작한 요즘,

카톡보다 슬랙이 더 빠르고 슬랙보단 메일이 더 빠른 날들,

지난 15일, 회의 끝나고 타운홀에 늘어져 카톡을 켰는데, 퇴사한 동료의 메세지가 가장 상단에 있다.

아무래도 퇴사한 동료들에게는 뭔가를 부탁하는 연락(서류요청이나 기타 확인 등)이 많다보니

시간이 조금 있을 때 읽어야지 하고 남겨두곤 퇴근이 다 되어서야 열게 되었다.

웬걸

전체보기를 눌러 읽어도 한참을 내려가야한 그녀의 메세지는

스승의 날을 맞아 자신을 성장하게 해준 사람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였다.

1차 충격


스크린샷 2025-05-20 오후 1.39.56.png 그녀의 러브레터 중 일부


이렇게 읽으면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절대 아니다.

그냥 그사람이 좋아서 누구나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응원대장을 했을 뿐.


올라운드 마케터였던 그녀는 똑똑하고 솔직했고,

빠르고 다정했다.


내가 최종 인터뷰를 위해 오피스에 방문했을때,

대기자석이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했던 그녀는

'니가 내 동료인거야? +_+ 너모 반갑다 !'하는 눈빛으로 내내 나를 챙겼던 때도...


여튼,

러브레터를 모두 읽고 엄청나게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이런 글을 선택하고, 쓰고, 용기있게 보내는 모든 행위를 할 줄 안다는 것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그냥 이름이 선생님이라 스승인 것 말고.


그녀 역시 나를 조직에서 자라게 한 사람이라 같은 의미로 화답하며 마무리했지만,

나는 다시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나를 자라게한 모든 사람을, 모든 환경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을 모두 나는 스승이라 생각한 적 있는가,

홀로 자라는 존재 없다는데 그 마음 전하는 일이 이렇게나 고심해야 할 일이었나.


최근 인상깊어 오려둔 잡지의 편집장 멘트가 떠오른다.

같은 강연을 들어도 누군가는 '최고의 강연이었다' 깊이 감동하고, 누군가는 '시간 낭비였다'말합니다.
차이를 만들어 낸 건, 말하는 사람의 실력이 아닌 듣는 사람의 실력 아니었을까요?

컨셉진 vol.123, 편집장 레터 중


결국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인 것.

고마움을 알아채는 것도, 그것을 전하는 것 마저도 실력이고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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