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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나서 새가 된다면, 꿈꾼 적이 있다.

죽을 맛이었다.

by 고재욱

나는 노인들과 죽음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인데, 그중에 죽고 나서 새가 되고 싶다던 노인이 있었다. 그는 황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한 가지, 망상 같은 꿈을 꾸었는데 내게 죽음이 임해서 새가 된 꿈이었다. 꿈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처럼 그 일은 멋진 일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꿈속에서 나는 무척 힘들었다.


작은 종달새로 태어난 나는 얼마간 파란 하늘을 가르며 자유로이 날아다녔는데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작은 몸을 덮는 그림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큰 새는 작살 같은 발톱을 세운 채 나를 잡으려고 했다. 그 새는 날카롭고 큰 부리로 내 머리를 통째로 삼킬 듯이 달려들었다. 내 꽁지에서 빠진 깃털이 회오리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나는 이제 끝이구나 여기며 꿈이라면 제발 깨어나기를 빌었는데 깨기는커녕 뾰족한 발톱에 찔려 바닥으로 추락하는 지경이 되었다. 내가 떨어진 곳은 낙엽이 쌓인 곳이었는데 우거진 수풀과 낙엽 덕분에 나는 겨우 몸을 숨길 수 있었다. 큰 새는 내 조그만 몸을 먹지 못해 아쉬운 듯 높은 허공에서 동그라미를 만들며 날고 있었다. 그제야 나를 쫓아오던 새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꿈 속이었지만 어째서 내가 그 새 이름을 아는지 궁금했는데, 큰 새는 참매였다. 참매는 한참 동안 허공을 맴돌다가 돌아갔다. 나는 어렴풋이 이 상황이 꿈인 것을 느끼고 용기를 내어 참매를 뒤쫓기로 했다. 큰 새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녀석의 둥지가 있었다. 둥지에는 아기 새 네 마리가 있었는데 녀석이 둥지로 들어가자 아기들이 일제히 입을 벌렸다. 참매는 아기 새들에게 아무것도 줄 게 없었다. 둥지에서 아기들과 함께 있던 녀석보다 덩치가 큰 다른 매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소리로 울었다. 녀석의 부인인 듯싶었다. 참매는 죄지은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큰 날개를 두어 번 퍼덕이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참매는 금세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먹이를 찾아 더 먼 곳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참매 또한 녹록지 않게 사는 듯했다. 나는 새가 되면 좋을 것만 같았는데, 새로 다시 태어나서 죽도록 고생만 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꿈에서 깨어났다. 새는 무척이나 힘들게 살아가는 생물이었다. 인간만큼이나 치열하게.


참매, 우리나라 토종 매의 이름이다. 익히 들었던 보라매라는 이름은 일 년이 안된 참매의 새끼를 말하는 것인데 보라매는 아직 스스로 사냥을 하지 못하고 엄마새를 기다려야 한다. 사실은 엄마나 아빠가 가져오는 먹이를 기다리는 것인데 사람의 생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태어난 지 일 년이 안된 보라매는 둥지 근처를 자주 떠난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 멀리 가지는 않는다. 아직. 스스로 사냥을 할 수 없지만 독립에 대한 욕구가 늘어가는 것인데 이런 일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 녀석의 자립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어미 참매는 제 몸만큼이나 큰 보라매를 위해 쉴 새 없이 먹이를 찾는다. 아직 어려 보이는 보라매는 그게 당연한 듯이 부모를 기다렸다가 입을 벌린다.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아니, 요즘은 자주 말하는 것 같다.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말. 생각해보면 이런 말의 대부분은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지 않았을 때였다. 참매가 다 큰 보라매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에게 버림받은 한 마리 개가 새끼들을 끝내 버리지 않는 걸 보고, 짐승이란 사전적 정의, 몸에 털이 나고 네 발을 가진 동물이 보여주는 모성애를 보고 사람들은 감동했다.


하지만 나는 여태껏 제 부모를 섬기는 짐승을 보지 못했다. 보라매가 때가 되어 자신만의 터전을 찾아갈 때, 자신의 부모는 어찌 될 것인지 생각할까? 늙은 부모를 위해 먹이를 구하는 어린 짐승이 있을까? 동물학자가 아니기에 조금의 오류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단언컨대 없어 보인다.


요양원에는 수많은 노인들이 들어온다. 그 모습은 어쩌면 삶을 실패한 사람들로 보이기까지 한다. 스스로 걸을 수 없고 자신의 힘으로 수저를 들 수도 없는, 생의 욕심이란 욕심은 모두 응축한 듯한 고집을 보이는, 자신을 돌보는 이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거나, 폭력을 행하는 이들은 마치 인생을 잘못 살아온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은 치매환자다. 이들은 그들 스스로의 말처럼 하늘의 벌을 받은 걸일까. 무얼 그리 잘못했길래.


요즘 코로나 19가 온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사라졌고 코로나를 전파한, 자신은 무증상자였을, 사람에게 슈퍼 확진자란 별명을 붙이고 손가락질한다. 물론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리 돌아다닌 건지 의심되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뉴스를 보던 할머니 한 분이 말했다.

- 옘병이네.

나는 할머니에게 되물었다.

- 옘병이요? 그 옘병 지랄하네 할 때 그 옘병이요?

할머니는 그 옘병이 맞다고 했고 그 병에 걸리면 옘병 지랄하며 죽는다 해서 그리 불렸다고 덧붙였다.


할머니가 말한 옘병은 적확하게는 염병이다. 염병은 장티푸스를 말한다. 이 병은 고열, 복통, 비장이 커지고, 섬망, 즉 환상이나 환청이 나타난다. 할머니 고향은 북한인데, 염병이 돌면서 수 백명의 마을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다.

- 치료약도 없었을 텐데 염병에 걸리면 어떻게 했어요?

할머니는 그때 생각을 떠올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 사람들이 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어디론가 옮겨갔어. 그런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

그때도 전염병이 돌면 격리부터 했나 보다. 나는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그때의 남겨진 사람들이 궁금했다.

- 가족 중에 염병이 걸리면 동네 사람들도 병 걸린 환자를 둔 가족들을 피했겠어요.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 누가 걸리고 싶어서 걸리나?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했어. 미워하지 않았어. 그저 운이 좋아서 안 걸린 걸. 염병 걸린 사람들이 뭔 잘못을 한 게 아니란 것을 모두가 알았지.

-........


내 가슴에 턱 하니 할머니의 말이 걸렸다. 난 신천지란 집단이 기독교 기준에서 볼 때 이단인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피켓 시위를 하던, 신천지에 자녀를 빼앗겼다는 부모의 눈물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이번 코로나 19를 연관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원주에도 17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대부분 신천지 교인과 가족이었고 그들이 방문한 장소에서 접촉한 사람이었다. 우리들은 모두 신천지를 욕했다. 그러고는 서로를 신천지가 아니냐고 의심했다. 전염병의 급격한 확산으로 인한 불안은 금세 불신으로 바뀌었다.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코로나 19는 무증상으로도 병을 옮긴다는 상식적이지 않은 형태로 너무나 쉽게 우리를 비상식적으로 만들었다.


- 그저 염병이 온 거지. 뭔 이유가 있는 게 아닌 거야. 전염병이 다 그래. 병이 누구를 골라서 오나? 안 걸린 사람들이 도와줘야지. 옛날에는 다 그랬는데.......


염병을 말하는 할머니의 말을 내내 생각했다. 누구나 코로나 19에 노출될 수 있다. 누구나 치매에 걸릴 수 있다. 무슨 죄를 지어서가 아니다. 병에 걸리지 않은 내가 할 일은 그저 그들을 위로하고 돕는 것이 아닐까.

사자는 약한 새끼를 거두지 않는다고 했다. 무리 생활을 하는 짐승들은 병에 걸린 동료를 지키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짐승이 아니니까. 우리가 짐승보다 나은 것은 우리 곁에 있는 약하고 병든 이들을 끝내 보살피는 일이 아닐까.

보라매는 제 부모를 돌아보지 않지만 우리가 늙은 부모, 아픈 이웃을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코로라 19를 통해 오히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심과 사랑이 늘어가길 바라본다.


(커버 사진 pixabay, Sk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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