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녀석에게 항상 막걸리 냄새가 났다(3)
마지막 편
3.
봉만은 순대국밥이 나오기도 전에 연거푸 소주잔을 비웠다. 내게 술을 권하지는 않았다. 내 차림은 누가 봐도 고삐리였다. 녀석은 제법 어른 티가 나 보였다. 금세 순대국밥이 나왔는데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다. 미지근하고 하얀 국물에 거무티티한 순대가 토큰처럼 떠있었다. 봉만은 붉은 양념장을 국밥에 풀었다. 그러고는 벌건 깍두기 국물을 몇 수저 떠서 순대국밥에 넣었다. 녀석 앞에 놓인 미지근한 국밥이 뜨겁게 느껴졌다.
녀석이 국밥에 밥을 말며 말했다.
- 새끼, 가시나같이 밥을 먹냐?
나는 순대국밥에 양념장이나 깍두기 국물을 넣지 않고 밥을 말아서 먹지도 않는다. 나는 뽀얀 국물이 좋았다.
나는 대뜸 녀석에게 물었다.
- 사실이냐?
녀석이 순대 위에 김치를 올리다 말고 나를 봤다.
- 뭐가?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물어도 될까?'라고 생각하는 동안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 누가 그러던데 네가 소년원에 들어갔다고.....
녀석이 멈췄던 수저를 입에 넣으며 우물거렸다.
- 아! 그거. 잠깐 갔다 왔어. 일 년쯤 있어나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녀석의 태도에 나는 약간 화가 났다.
- 아니 뭣 때문에? 진짜 깡패라도 될 거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녀석이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 야 좀 살살 말해라. 계집애같이 꼬치꼬치 캐묻기는.
봉만은 다시 소주 한 잔을 마신 후에 한숨을 쉬었다.
어느 날 녀석이 사는 천막에 사람들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그날도 녀석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천막 이곳저곳에 흰 종이를 붙였는데 불법 건조물을 철거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한 사람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사내 몇이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땅바닥에 나가떨어진 아버지의 이마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천막 안에 있던 물건들을 밖으로 꺼냈는데 아버지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안된다고 소리 질렀다. 몇 번 아버지를 떼어내던 사내가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했고 곧 몇 사람이 가세해서 아버지를 발로 밟기 시작했다. 마침 밖에서 돌아오던 녀석이 그 광경을 보았다. 녀석은 평소 아버지가 싫다고 말했는데 눈앞에서 여러 명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아버지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고 한다.
녀석이 성인 남성 여럿과 상대할 수는 없었다. 녀석의 눈에 천막 옆에 세워둔 삽자루가 보였고 녀석은 삽을 들고 아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사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사내의 머리에서 벌건 피가 솟구쳤다.
녀석 앞에 놓인 순대국밥 국물에서 피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 그렇다고 삽을 휘두르면 어쩌냐고. 아버지는? 괜찮으신 거냐?
봉만은 뚝배기를 들고 순댓국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 살인 미수, 공무집행 방해 같은 여러 죄목이 붙어서 2년 형을 받았는데 일 년도 안돼서 풀어주더라. 왠지 아냐? 지들이 두들겨 팬 아버지가 죽어버렸거든. 좋아해야 되는 건가. 빨리 풀려나서? 난 아버지가 하루라도 빨리 죽어버리길 바랬는데 막상 그렇게 가버리니까 기분이 더럽더라. 씨발! 진짜 좆같지.
툭 튀어나온 녀석의 광대뼈 위에 숨은 작은 눈이 번들거렸다.
- 그런 일이 있었으면 연락이라도 하지.
녀석이 담뱃재를 식당 바닥에 툭툭 털었다.
- 너네 이사 간 집을 알 수도 없었고 또 소식을 알린다고 뭐 좋을 게 있다고. 애들은 나만 보면 슬금슬금 피했잖아. 내가 지들한테 뭘 피해 준 것도 없는데 말이야. 그래도 너는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유일하게 날 피하지 않았으니까. 마침 우리 국민학교 때 같은 반애를 만났는데 네 소식을 알더라고. 여기 정류장에서 며칠 기다렸다. 떠나기 전에 한번 보려고.
- 떠나? 어디로?
녀석은 어디로 가는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알 면 다친다는 우스갯소리만 했다. 녀석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시 우리에게 삐삐라던지 휴대전화가 있을 리 없었다. 가난한 우리 집은 자주 이사를 다녔고 녀석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희미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제법 자리를 잡아갈 때였다.
지금 휴대전화에 비하면 흉기에 가까운 모토로라 택 5000이 징징거렸다.
'아이 러브스쿨'이란 플랫폼이 당시에 인기였는데 거기에서 나를 발견한 초등학교 동창이 연락한 것이었다.
우리는 홍대 근처에서 만났다. 모임 장소에는 열댓 명이 나와 있었다. 지난 기억을 소환하던 중에 봉만이 얘기가 나왔다. 다들 녀석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했다. 나는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 도대체 그 녀석이 니들에게 뭘 잘못했길래? 그저 가난해서, 엄마가 없어서,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 때문에 꼬질꼬질한 것뿐이었는데 말이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지들 말자.
갑자기 높아진 목소리에 동창들은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한 녀석이 뭔가 생각난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 아! 맞다. 걔 요즘 시장에 있다던데. 남문 시장. 거기서 자릿세 받는다더라. 네 말처럼 우리가 걔를 잘 모르지. 뭐 알 필요도 없지만 그렇게 자란 애는 결국 그런 일을 하고 사는 거야. 깡패짓이나 하면서.
나는 손에 쥔 술잔을 녀석에게 던질 뻔했다.
- 자자! 재미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같이 잔을 들자.
어중간하게 치켜든 내 손을 보고 누군가 건배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는 동창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자라서 결국 그런 일을 하고 사는 녀석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남문 시장에서 녀석을 찾을 수는 없었다. 녀석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했다. 누구는 일본에 가서 야쿠자가 되었다고 하고 마약에 손을 댔다는 사람도 있었다. 여전히 시장통을 누비며 자릿세를 받는다고도 했는데 녀석을 만날 수는 없었다.
동창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내 의지는 쉽게 무너졌다. 짝사랑하던 부반장이 나온다는 소식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우리들은 더 이상 녀석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더 신나는 얘깃거리가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녀석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거래처를 방문했을 때였다. 거래처 사장이 점심 식사 후 산책을 제안했다. 가까운 곳에 괜찮은 약수터가 있다는 거였다. 그는 물 맛이 좋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그에게 이 근처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이미 약수터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운동기구가 좀 더 다양해진 것을 빼면 약수터는 삼십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산책 중인 직장인들이 제법 보였다. 큰길에서 십 분이면 오를 수 있는 약수터였다. 그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검은 천막이, 약수터 한쪽에 검은 천막이 있었다.
- 저기.... 저 검은 하우스 같은 거는 뭐죠?
약수를 벌컥벌컥 마시던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글쎄요. 저게 언제 생겼지. 두어 달 전만 해도 없었는데.
나는 검은 천막을 향해 달려갔다. 천막 입구에 나무판이 걸려있었는데 검은 글씨로 막걸리라고 적혀있었다. 천막 앞쪽에 흰색 둥근 테이블이 두 개 놓여있고 파란 의자가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천막의 입구는 닫혀있었다. 그때 천막 안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곧 천막 입구가 열리고 작은 아이가 나왔다. 대략 대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사내아이였다. 언제 머리를 감았는지 아이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떡져있었는데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이 눈에 들어왔다. 무릎 부위가 툭 튀어나온 감색 운동복과 낡은 슬리퍼였다. 바람이 불면서 아이가 열고 나온 천막 입구 천이 펄럭였다. 안쪽에 사내 하나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내 앞에는 서너 개의 막걸리 통이 서있었다. 사내는 이미 취한 듯이 앉은 상태로도 비틀거렸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뒤따라온 거래처 사장이 내 안색을 살피더니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유독 피부가 검은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지갑을 꺼내서 있는 돈 전부를 아이에게 건넸다. 십만 원쯤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거래처 사장과 아이가 눈을 끔뻑였다. 나는 아이와 천막 안에서 술 마시는 사내를 번갈아보고 등을 돌려 걸었다.
내려오는 길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이 더럽게 맑았다.
(커버 사진 pixabay,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