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앞뒤에 선 부부의 얼굴 주위로 하얀 입김이 올랐다. 손때 묻은 검은색 쇠로 만든 손잡이를 붙잡은 남자가 연신 뒤를 쳐다본다. 리어카에 실린 짐 때문에 뒤에서 보면 그의 가슴 아래쪽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의 입에서 연기가 솟았다가 사라졌다.
"괜찮다니까요. 앞에나 잘 봐요."
리어카를 밀던 아내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직 어둠이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시간에 불룩 솟아오른 짐을 실은 리어카가 골목 끝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멀리 코카콜라 공장 굴뚝은 햇빛을 뱉어내고 있었고 남문 시장에는 할머니들 몇이 커다란 보자기에서 야채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야! 할머니, 일찍도 나오셨네요."
리어카 손잡이를 밑으로 내린 후 남자가 말했다.
"나야 십수 년 해온 일이니까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이 부지런도 하네. 그려. 암, 그래야 잘 살지."
초록색 고추가 담긴 빨간 플라스틱 채반을 손에 들고 할머니가 대답했다.
"누가 자리잡기 전에 저쯤에다 어서 짐을 부려야지."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젊은 부부는 할머니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리어카를 덮은 포장을 벗겼다. 리어카에는 하얀 스티로폼 박스가 잔뜩 실려있었다. 남편이 흰 박스를 꺼내오면 아내는 박스 안의 생선을 세 마리씩이나 네 마리씩 대나무로 만든 둥근 쟁반에 담았다. 등에 푸른빛이 선명한 고등어, 꽁치, 우럭, 민어 등이었는데 배를 가른 말린 생선도 있었다. 맞은편에 막 도착한 중년의 부부가 물건을 진열하는 중이었는데, 김을 구워 파는 상인이었다.
"저렇게 불이 가까이 있으면 우리 생선에게 좋지 않은 거 아니에요?"
아내가 작은 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게. 하필 여기다가..... 어쩔 수 없지 뭐. 이미 물건을 다 꺼내버렸으니. 대신에 거, 깨 둔 얼음 있지. 그걸 좀 뿌리지 뭐."
머리를 긁적이는 남편에게 아내가 다시 말했다.
"치, 그렇게 모질지 못해서 어째요. 호호. 그게 매력이기도 하지만요."
"둘이 맨날 보는데 뭐가 그리 좋노? 여기 와서 커피나 한 잔 마셔. 거기, 김 장수도 이리 오고."
야채를 파는 할머니가 젊은 부부를 불렀다.
손님을 기다리는 생선 눈알이 검게 반짝거렸다.
어느 날 시장 상인들이 모여서 수군거렸다.
"거, 젊은 부부라면서?"
"뭐가?"
"아, 왜 있잖아. 그 생선 장사 부부가 복권에 당첨됐데."
젊은 부부와 친하게 지내던 야채 장수 할머니가 되물었다.
"진짜로? 몇 달 전부터 갑자기 안 보여서 걱정했는데 아이고 마, 잘 됐구먼. 그리 금술도 좋고 부지런하더니만 잘 됐어. 암. 잘 됐고 말고."
상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빈대떡집 남자가 말했다.
"그게, 잘 된 게 아니라..... 듣기로는 남자가 돈을 싹 들고 도망을 쳤다고 하던데요."
김을 파는 여자가 거들었다.
"나도 그 얘기 들었네요. 그러게 잉꼬니 앙꼬니 돈 앞에서는 다 소용없다니까는."
나는 그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엄마가 시장바구니에 담아 온 얘기를 주워듣고 학교에 다시 소문을 냈다. 앞날에 기대보다 걱정이 많았던 우리들은 근처 남문 시장에서 복권이 당첨됐다는 소식에 흥분했다. 거기서 당첨됐다면 우리들에게도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나는 아버지 양복을 입고 가서 주택복권을 샀다. 난생처음 사본 복권은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속에 넣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쓴 '죄와 벌'이었다. 이 책은 고3 때 딱 한 번 읽고 30년이 지나도 주인공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내개 충격을 준 책이다. 라스꼴리니꼬프와 쏘냐. 무튼 복권을 이 책 속에 넣어두고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결과는? 물어 뭐하실까....... 큭!
다시 몇 달의 시간이 흐른 후에 젊은 부부는 다시 시장에 나타났다. 정확하게는 아내만. 그녀는 혼자 리어카를 끌고 와서 혼자 박스를 옮기고 홀로 생선을 진열했다. 남편은 없었다. 상냥했던 얼굴은 무표정으로 변했고 허공을 바라보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손님이 와서 가격을 몇 번 물어야지만 퍼뜩 고개를 들며 현실로 돌아왔다.
야채 장수 할머니가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남편은 어디 가고?"
여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할머니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말이 아니네. 어디 아픈 거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할머니는 자신이 들었던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는지도 몰랐다.
젊은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가 말했다.
"남편이 갑자기..... 죽었어요..... 새벽에 물건을 떼러 수산시장에 가던 길에 교통사고가..... 두 달 넘게 중환자실에서 버텼지만 끝내 떠나고 말았어요."
"....... 에고 어째, 그런 일이."
할머니는 허리춤에 찬 전대 주머니에서 작은 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한 달 정도 장사를 계속하던 젊은 아내는 어느 날부터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몇몇 상인들이 손에 커피가 담긴 종이컵 하나씩을 들고 모여있었다. 검은 안경을 코에 걸치고 혁대를 느슨하게 맨 배가 불룩 나온 남자가 말했다.
"그 생선 장수 여자는 안 나오네. 누가 그러던데 남편 사고 보상금으로 꽤 많은 돈을 받았다고 하대."
상인 회장이라던 빈대떡집 남편이 되물었다.
"그래? 많이 받긴 했나 보네. 장사까지 접은 걸 보면 말이야. 거, 죽은 사람만 안 된 거지. 젊겠다, 돈 있겠다. 실컷 잘 살지. 그렇고말고."
사람들 얘기를 듣던 야채 장수 할머니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잠시 후에 다시 나타난 할머니가 소리쳤다.
"에라이, 몹쓸 놈들아. 네 놈들이 예전에 뭐랬나. 그래, 뭐 복권에 당첨됐다고. 그러더니 이번엔 뭐가 어쩌고 어째. 뚫린 입이라고 그리 함부로 떠들어 대는 것이 아녀. 벌 받아 이 사람들아."
그러고는 할머니의 손에서 하얀 가루가 뿌려졌다. 소금이었다. 상인들은 말없이 흩어졌다.
이 소식은 이번에도 엄마의 시장바구니에 묻어왔다. 나는 젊은 부부가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쭉 복권을 사는 중이었고 나의 인생 책, 죄와 벌에도 복권 한 장이 들어있었는데, 나는 복권 사는 일을 멈췄고 책 속에 넣어둔 복권 당첨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나는 교통사고로 죽은 젊은 남편의 명복을 빌었고 젊은 아내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자주 이사를 다닌 탓에 복권을 넣어둔 두꺼운 책이 사라졌는데 혹시 '죄와 벌'이 누군가에게 행운의 네 잎 클로버가 되었다면 지금이라도 알려주시기를. 내 몫을 요구하지는 않을 테니!!
(커버 사진: blickpixel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