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작은 방 한쪽에 다른 생명이 있었으면 했어요. 대상이 말 못 하는 식물이라도 말이죠. 이왕이면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고요.
문제가 있긴 했죠. 제 서식지에 큰 화분을 둘 정도로 넉넉한 공간이 없다는 거였어요. 그럼에도 작으면 작은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뭐라도 수확이 있을 거라는 희망 하나쯤 가슴에 품고 아이들을 분양받기로 했어요.
방울토마토 하나, 청양고추 하나, 일반고추 두 개, 총 네 개의 모종을 900원에 샀어요. 아이들의 수가 4라서 조금 꺼림칙하긴 했지만 자연에서는 죽음과 생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기에 사(死)라는 수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어요.
모종을 파는 분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저기, 화분에서도 잘 자랄까요?"
그분이 대답했어요.
"해가 잘 들고 흙이 많으면 화분에서도 잘 자라요."
나는 되물었죠.
"화분은 주먹보다 조금 더 크고 흙도 딱 그만큼인데요. 햇볕은 최대한 받게 해 볼게요."
그녀가 말없이 웃더군요. 저의 '잘'과 그녀의 '잘'은 같지 않은 듯했어요. 그녀의 시선이 저를아래위로 빠르게 훑고지나갔어요.
시골에서 자랐다는 지인이 말하더군요.
"에이, 이 쪼그만 화분에서 토마토가 열릴 수는 없어. 절대 안 돼."
다들 안된다고 하니 괜히 다른 곳에서는 튼튼하게 자라날 모종들을 데려와서 열매도 못 보고 죽이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미 아이들은 작은 화분에 심겨버린 걸요. 다행인 것은 녀석들이 내게 초록 미소를 보낸 것인데요, 식물이 웃었다는 저의 말에, '미친 거 아냐'라고 묻지는 마세요. 진짜로 이 아이들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는 건 아니니까요.
출근할 때, 퇴근을 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꼭 인사를 했어요. 물을 주고 잎을 만져주었죠.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 아무래도 더 좋을 것 같아서 비가 오는 날이면 세숫대야를 밖에다 내어놓고 빗물을 받았어요. 그 빗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화분에 부어주었죠. 작은 화분에 터를 마련해준 것이 미안해서 물은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고추는 꽃이 피고 별 탈 없이 자라주었어요. 문제는 방울토마토였어요. 꽃이 피는 족족 꽃을 매달고 있는 부분이 자꾸 똑 부러지며 떨어지는 거예요. 아, 이게 뭐라고 잠이 안 오더라고요. 하지만 작은 꽃봉오리들은 힘없이 떨어져 바닥에 쌓여만 갔어요.
그러다가 농사를 짓는다는 브런치 작가님을 발견했어요. 작가님의 필명이 무슨 농부셨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여하튼 용기를 내서 그분께 여쭤봤어요.
"방울토마토가 꽃은 피는데 열매가 맺히지 않아요."
농부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는데요.
"꽃이 핀다는 건 해는 충분하다는 건데, 물이 부족한 듯싶어요."
저는 물을 충분히 줬다고 생각했는데 물이 부족하다니요. 그분께 제 물 주기 방법을 설명드렸죠. 흙이 다 젖을 정도로 물을 준 후에 그 물이 바짝 마르면 다시 물을 주었다고요. 보통 화초 키울 때 그렇게 한다고 알았거든요. 제 얘기를 듣고 농부 작가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안됩니다. 흙이 마르면 안 돼요. 아침저녁으로 팍팍 주세요."
팍팍 주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그러자 정말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어요. 고추가 키가 쑥쑥 자라면서 제법 큰 수확물을 매달기 시작했고요. 방울토마토 줄기에도 병아리 눈곱만 한 열매가 생기더니 점점 커지는 게 아니겠어요.
와우, 유레카!
꽃이 떨어진 후에야 아주 작은 열매가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이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흙이마르지 않게 물을 주는 일이 필요했어요.
물론 모두 같지는 않아요. 고추와 방울토마토 옆에는 고무나무와 돈나무가 있는데요, 이 녀석들은 한 달에 한 번 물을 줘야 해요. 물을 줄 때는 화분 밑으로 물이 새어 나올 때까지 듬뿍 주는데요, 이 아이들에게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면 뿌리가 썩고 말아요.
작은 식물도 이럴진대 신묘한 인간은 오죽할까요.
식물에 물을 주다가 문득 글쓰기가 생각났어요. 녀석들 입장에서 보면 꽃이 피는 이유는 씨를 뿌리거나 열매를 맺기 위해서일 텐데요. 우리가 사색이나 독서, 여러 경험들을 통해 글감을 모으는 것이 꽃을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은 듯해요. 우리가 이런 일련의 일들을 하는 이유는 글감을 그러모아 꽃을 피우고 글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죠. 혹은 더 나은 삶이라는 열매를.
그런데 저는 꽃만 피고 떨구기를 반복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매 없이 꽃 피우기에만 열중한 거였어요. 책장에 쌓여가는 책들에 흐뭇해하고 수집한 문장들로 만족하면서 말이에요. 정작 열매는 맺지 못하고 제 발밑에 떨어진 어린 꽃봉오리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죠.
오늘 주문한 책장이 도착했어요. 방 여기저기 쌓여있던 책들을 정리했어요. 구경만 하던 벽에 핀 종이꽃들도 살펴봐야겠어요. 꽃만 피다 또, 똑 떨어지기 전에요.
자신에게 맞는 물 주기 간격을 꼭 찾기를 바라요. 그 대상이 글이든 삶이든 사랑이든지요. 그래서 주렁주렁 열매도 맺히기를 바라고요.
저 책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어요
종이꽃, 열매를 맺고 말겠어요~
사람들은 잘 안될 거라고 했지만 작은 화분에서도 열매는 맺혔어요. 기적이 뭐 별거일까요. 방울토마토 열매가 맺히는 일이, 경험해보지 못한 하루가 시작되는 일이, 우리 삶의 작은 이야기들이 글꽃으로 피고 글 열매로 맺히는 일이, 이 시간에 제가 글을 쓰는 일이 제게는 다 기적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