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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Jun 06. 2020

우울아! 어디 가지 말고 딱 그 정도에서만 잘 지내자

나는 우울증 환자다

나의 독자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 하나, 나는 우울증 환자였다. 사실은 지금도 나의 우울증은 치료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다. 7년째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사람 만나는 일을 힘들어하지 않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요즘은 첫 책 출간을 했다.

(막간 홍보는 자주 짜증 나지만 그렇다고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니까.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웅진 지식하우스>, 광고 끝.


나는 우울증을 치료한 것은 아닌데, 더는 우울증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나는 우울이 시작될 때 바로 알아차리고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이란 감정이 더 이상 나를 좌지우지하지 못한다. 생각을 위한 생각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경우에, 울적해지면 그 우울한 감정이 만들어낸 생각이 끝없이 떠올랐다. 그러면 그 생각에 빠진 나는 세상과 담을 쌓은 채 내 속으로만 파고들었다. 달팽이처럼 껍질 속으로 숨어든 것이다. 습성도 달팽이와 비슷했다. 낮에는 웅크렸고 밤이면 잠들지 못한 채 세상이 나를 버렸거나 내가 세상에 등 돌렸다는 생각으로 뒤척였다. 한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이 사라지지 않고 갑자기 허공에 나타나 내 심장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대개 깊숙이 박혀오는 말들은 날 잘 안다는 사람들의 그것이었다. 그들은 내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는데, 그렇기에 어떤 말을 해야 내가 아파하는지 아는 듯했다. 그들은 나의 예민하고 아픈 곳만 골라 잘도 찔렀다. 실제 그랬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일 뿐.


나는 산책을 즐긴다. 등산을 하지는 않는다. 걷는 걸 좋아할 뿐이다. 내가 사는 작은 동네에는 4년 전에 이사를 왔는데, 집 근처에 무난한 산책로가 있다. 길 한쪽에 냇물이 흐르고 맞은편에는 논밭이 있는데, 좁은 길 옆으로 수 킬로미터에 걸쳐 키 큰 벚나무가 이어진다. 봄이면 하얀 꽃비가 내리는 길을 나는 수년 째 걷고 있다. 활짝 핀 벚꽃을 카메라에 담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으며 산책을 하는데 보통 왕복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걷는다. 딱 그 정도다. 아주 특별할 것 없는 집 앞 산책로. 나쁘지 않은 정도의 길을 나는 몇 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걸었으니 횟수를 세어보면 수백 번이 넘을 것이다. 그런데 이년 전 어느 봄날에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그 평범한 산책로에서 말이다.


그녀와 함께 봄 소풍을 계획 중이었다.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 걷기에 좋은 길, 데이트 코스, 봄 소풍....

그때 기막히게 아름다운 길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 와우! 여기 정말 멋지다.

- 그러게. 어디지.

우리는 한 블로그에 포스팅된 아름다운, 환상적인 길에 대한 내용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 어랏, 여기...... 우리 집 앞인데......

그랬다. 그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너무나 가보고 싶은, 그녀의 손을 잡고 걷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 그 길은 바로 내가 자주 걷던 산책로였던 것이다.

- 여기가 이렇게 예쁜 곳이었어?

몰랐다. 코앞의 산책로가 이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유가 뭘까. 나는 왜 몇 년간 이 길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을까.

우리가 보았던 사진은 드론으로 촬영한 거였다. 하늘 높이 오른 드론이 하얀 꽃길로 이어진 길의 전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길의 처음과 끝, 큰 나무와 작은 나무의 어울림이 한눈에 들어왔다. 꽃길 사이를 걷는 사람조차 자연스러운 풍경.

벚나무 아래에서는 그 큰 나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나무들의 어울림도, 가지 사이를 지나는 바람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저 눈앞에 보이는 꽃이 다였다.

그 경험 이후에 나는 가끔 근처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제법 높이 올라가서는 산 아래를 본다. 아파트와 원룸이 많은 동네다. 칸칸이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 문득 그들의 창과 방패를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 이만큼 떨어져 보니 사람들의 창은 무디고 방패는 조악하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며칠 전에 새 식구를 들였다. 달팽이 세 마리다. 손톱 정도의 크기일 거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기 주먹만 한 녀석들이다. 녀석들의 어마 무시한 크기에 비해 주문한 어항 비슷한 플라스틱 상자가 너무 작아 보였다. 하룻밤을 지내는데 영영 그게 걸렸다. 마음속에서 하얀 날개를 펼친 쪽이 외쳤다. '너무 좁잖아. 이건 동물 학대라고.' 검은 날개도 가만있지 않았다. '한낱 달팽이일 뿐이야. 네 걱정이나 하라고.'

결국 나는 다음날 원래 집보다 네 배쯤 크고 투명한 통을 달팽이에게 마련해주었다.


얘네들은 한 몸에 암, 수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마리만 있으면 알을 낳아도 부화가 안된다고 한다. 세 마리나 되니 알을 낳고 부화할 것이다. 그런데 한 번에 낳는 알이 수십 개라는데, 앞으로의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혹시 백와 달팽이 키우실 분은 주저 말고 연락 바랍니다.)

나는 무척 예민한 성격이다. 그래서 여자 친구는 달팽이를 보자마자 걱정을 했다.

- 쟤들 밤에만 움직인다는데 사각~사각~ 소리도 낼 걸, 아마도.

- 엥, 정말? 그러면 안되는데......


다행히 녀석들과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달팽이들은 내가 잠든 밤에 깨어났고 내가 일어나면 흔적도 없이, 아니 상추 찌꺼기와 똥을 여기저기 싸질러놓고는 야자수를 잘라서 그 속을 파놓은 동그란 집 안으로 들어가서 꼼짝도 안 했다.

달팽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다정하게 아침인사를 해도 요지부동. 졸지에 달팽이 집사가 된 나는 습도 80%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세 번씩 녀석들의 서식지에 물을 뿌리고 매일 아침 똥을 치우고 곧 야자수로 만들었다는 바닥재를 교체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니. 소리 없는 녀석들의 무언의 협박은 가볍지 않았다. 내 집에 온 녀석들을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열정적인 달팽이 집사가 되어가는 중이다. 얼굴 보기도 힘든 녀석들을 위해서.


이틀쯤 지나자 새로 온 환경에 익숙해진 녀석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쩍쩍, 사각사각. 녀석들의 점액질 가득한 몸이 투명한 벽에 붙고 떨어지는 소리였다. 상추를 갉아먹는 소리도 함께.

한동안 잠잠했던 불면이 녀석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며칠 동안 누구에게 녀석들을 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땅히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 조금 더 지내보지 뭐'라고 다짐을 했다. 그날 밤이었다. 녀석들이 움직일 시간이 지나고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 죽은 건가? 내가 습도 조절을 못 한 탓일까? 상추가 상했나? 등 별의별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쩍쩍, 사각사각, 녀석들의 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달팽이가 살아있다! 이상한 건 녀석들이 내는 소리가 더는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밤에 나는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잤다. 녀석들의 자장가를 들으며.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때 죽지 않아서 고맙다고. 살아주어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울한 감정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내 마음을 가감 없이 노트에 적는다. 그러고는 노트를 덮고 커피 한 잔을 마신 다음 다시 노트를 펴고 내 우울을 내려다본다. 그러면 느껴진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산책길의 아름다움을 길에서 벗어나고서야 알아차린 것처럼, 산 정상에 서서 산아래 작은 사람들의 무딘 칼과 조악한 방패를 보는 것처럼, 별일 아닌 일에 호들갑인 내 감정이 한눈에 드러나는 것이다. 우울증이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단치 않다는 걸 알아버린 지금, 어쩌면 우울이 나를 계속 쓰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밀려와도 조금만 고개 들면 흔들리지 않는 수평선이 보일 테니까. 우울아! 어디 가지 말고 딱 그 정도에서만 잘 지내자.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언제쯤이나 깨어날 것인지. 여태 꿈적도 않고 있다.

달팽이 특대형 집, 녀석들은 야자수 집 천정에  붙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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