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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Dec 08. 2020

작고 가까운 곳에 숨겨놓았다고,

이미 그곳에

지난여름에 작은 사찰에 들렀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두어 시간 동안, 꽤 이름난 계곡의 둘레길 산책을 마친 뒤에 근처에 있던 이정표를 발견하고 나선 길이었다. 절 바로 아래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었기에 잠시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별 기대 없이.

주차를 하고 절 입구까지 경사가 조금 있는, 평지에 가까운 길을 걸었다. 십 정도였지만 흡연으로 인해 헐떡이는 내 폐를 생각한다면 정상인은 오 분 안에 주파할지도.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90도에 가까운 경사, 한쪽으로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끼고 있는 암벽을 돌아 이무기처럼 꿈틀거리며 저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계단, 한참 동안 목을 꺾고 올려다봤다.

눈이 만들어낸 걱정과 달리 금세 오를 수 있었다, 땀은 조금 났지만.  


대웅전이라 부르기 민망한 작은 불당 한 채와 스님이 머무는 곳, 별 채 한 동이 다였다. 암자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작은 사찰이었다. 엷은 햇볕을 머금은 흙마당에 빗자루질 흔적이 선명했다. 불당 앞쪽에는 두 개의 돌 해태상이 보였는데 왼쪽에 서있는 돌조각의 깨진 머리 귀퉁이에 손톱만 한 들꽃이 피어있었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이라도 난 걸까. 조그만 들꽃은 쉬지 않고 제 몸을 흔들었다.

마침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이 불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몇몇 사람들이 근처에 있었는데, 누구도 말이 없었고 누구도 말할 필요가 없는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한동안 절 앞의 풍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작은 사찰이었기에 감동은 더 컸다.

정방사, 충청북도 제천


교회 입구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몇 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 앞을 막아선 것이 보였다. 입구를 막은 이들은 센터 입소자들이었고 그들에게 붙들린 사람은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그들 모두는 얼마 전까지 길 위에서 얼굴을 마주하던 사이였다.

남자는 제 몸만 한 가방을 짊어진 채였다. 그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있었다. 그가 쓴 검정 뿔테 안경다리 한쪽에 하얀 반창고가 돌돌 감겨있었는데, 코 끝에 걸린 모양새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움직이면 금세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연신 중지 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켜 렸다.

사내가 말했다.

- 왜 못 들어가게 합니까?

그를 막아선 무리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 어유, 원. 냄새가 나도 어지간히 나야지. 좀 씻고나 올 것이지. 그래 갖고는 못 들어가요.

다른 수문장이 말했다.

- 아주, '나 노숙인이다'하고 냄새로 말하는구먼. 이 양반아! 예배당 내려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셔. 오늘은 외부 봉사자들도 예배에 참석한다는데 그 꼴로 어딜 들어가겠다는 거야.

성경을 손에 든 남자가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 허허, 재밌네. 노숙인을 섬기는 교회라더니 노숙인은 냄새가 나서 출입금지라고?

그는 손끝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며 돌아섰다.


그는 태산을 품은 태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원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태산인데, 출생신고를 대신해주던 친척이 그만 태성으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오십 대 중반의 태성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는 학교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대신에 할아버지께 한문을 배웠다고 했다. 논어, 사서삼경 등이었다. 과거시험을 볼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서책 한 장을 외우지 못한 날은 밥을 굶겼다며 태성 씨는 머리를 흔들었다.


남자는 한문을 잘 썼다. 마치 한석봉의 글씨 같았다. 추사 김정희든지. 나는 눈앞에 한석봉 선생이나 김정희 선생의 작품이 있다고 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테지만, 그가 수성 사인펜으로 모서리가 너덜거리는 공책에 써 내려가는 한문은 옛 선생들의 글자처럼 보였다.


그는 찬양 또한 범상치 않게 불렀는데 성악가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여기저기 아프고 깨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얼마 안 가 목사님 눈에 띄었다. 주일날에 그는 성도들 앞에 서서 특송을 불렀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유달리 컸다.

그에게 성가대에 들어올 것을 청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 길에서 지내는 놈이 무슨 성가대요? 안 그래도 냄새난다고 예배도 겨우 참석하는 판인데.

- 그럼 여기 센터에 입소하시면 어때요? 예배 참여나 성가대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요.

- 잘 모르시네, 나같이 길거리 생활에 이력이 난 사람들은 이런 센터에서 못 지낸다니까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거 딱 질색이라.

그는 몇 번의 센터 입소 권유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힘든 일이 없는 게 아니지만 길거리 생활이 좋다고 덧붙였다.


그의 과거에 대해서 자세하게 듣지는 못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날마다 있는 아침 예배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주일예배는 빼놓지 않았다. 더 이상 그의 출입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사정 이야기, 냄새 때문에 예배당 출입을 금지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 담임 목사님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 옷에 똥을 싸고 와도 예배할 수 있도록 하세요. 그게 싫은 분은 다른 교회에 나가세요.

목사님은 분명한 태도를 보였고 다들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후로 냄새 때문에 예배당 출입을 막은 일은 없어졌다. 태성 씨는 꾸준하게 주일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 목사님! 노숙자를 섬긴다는 교회에서 노숙인이 센터에 입소하지 않았다고 해서 성가대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정은 이상합니다. 꼭 육 개월을 채워야 성가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이분들은 한시라도 어디엔가 마음을 붙일 곳이 필요한 게 아닌가요?

나는 태성 씨에 대해 목사님께 말했다. 그가 찬송을 좋아하고 성가대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고. 목사님은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태성 씨를 찾아서 거리로 뛰어나갔다. 이번 일로 그가 기뻐하기를 바라며.


- 노숙인들은 언제 떠나버릴지 알 수가 없어요. 성가대는 최소한 육 개월은 교회 출석을 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지요.

성가대를 이끄는 지휘자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예배당 천정에 부딪혔다가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메아리가 들리는 듯했다. 안돼, 안돼, 안돼.

- 그럼, 그렇고 말고. 하루 나왔다가 다음 주에 사라지고 들쭉날쭉하면 아무 연습도 할 수 없어요. 이게 유지가 안 되는 거예요. 세상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린다는 게 보통일인가요?

- 아무리 노숙인을 섬기는 교회라 해도 몇 개월, 아니 육 개월은 지나고 나야 그가 꾸준히 참여할 것이 보일 테고 역시 성가대는 몸과 마음이 준비가 돼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어요? 저도 그 형제님을 성가대에 들여보내는 건 반대입니다.

반주자도 거부의사를 표했다. 목사님은 더 이상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다.


- 성가대는....... 아무래도 조금 더 교회 출석을 한 후에 가능하겠어요. 죄송해요.

어색한 표정의 내게 남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손을 내게로 뻗었다. 그의 손은 내 어깨 위에서 멈칫하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손톱 끝에 둥그렇게 검은 때가 끼고 손가락 마디가 툭툭 튀어나온 손으로 그는 성경책을 아무렇게나 펼쳤다.

- 오! 오늘은 시편일세.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시편 97:7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경 한 구절을 읽었다.

그의 등에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산악인의 것보다 큰 배낭이 매달렸고 그가 입은 옷을 쥐어짜면 구정물이 흐를 것 같았는데, 그의 입은 찬양을 하괜찮다고 미소를 보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태성 씨는 영등포 쪽방촌을 떠났다. 따로 작별인사를 하지는 않았는데, 그가 흥얼거리던 찬송의 조각들이 한동안 골목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성가대의 몇몇은 '역시 그렇지'라고 했고 몇몇은 '역시 그랬어'라고 말했는데, 태성 씨가 떠난 일이 그렇다는 것인지, 그를 받아들이지 않은 일이 그랬다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가끔 태성 씨를 생각한다. 그가 길 위에서 흥얼거리던 찬송, '실로암'.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주님 맘 속에 사랑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기대 없이 찾은 '정방사'에서 본 풍경처럼 길 위에서 만난 태성 씨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가끔 그의 목소리 귓전에 맴돈다. 그가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삶은 크고 먼 곳이 아니라 작고 가까운 곳에 희망을 숨겨놓았다고, 씨앗은 이미 우리 발밑에 떨어져 있다고, 곧 꽃을 피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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