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 먹고 근로사 할 것 같아서
결정했어, 조금 힘들게 살기로
저는 탈락했습니다.
오늘은 원주에서 문을 여는, 보훈공단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의 면접시험 발표날이었습니다. 이른 시간에라도 할 것이지, 기다리는 사람 생각은 안 하고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야 결과를 알 수 있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미리부터, "네가 안되면 누가 되겠냐? 걱정할 것 없다"라고 나에게 위로를 넘어 안심을 주던 차였고 스스로 생각해봐도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어?'라며 위안을 하던 차였습니다.
결과는 탈락. 구십여 명의 합격자 외에 대기자, 그러니까 합격한 이들 중에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경우 자격을 주겠다는 대기자가 합격자만큼이나 있어, 별첨으로 명단을 첨부했는데, 그 대기자 명단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국가 공단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통 똑똑한 것이 아닐 것인데 그들이 맞겠지. '내가 문제가 있어도 보통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반성을 하기도 했고, 합격자 명단을 눈이 빠져라 노려보며 아니! 어째, 저런 사람을 뽑으면서 나를 안 뽑을 수가 있지? 항변도 해보았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사실은 이 새벽이 오기까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아, 내가 그들이라도 나 같은 이를 뽑을 수가 없었겠구나! 하고 면접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원한 일은 요양보호사 일입니다. 보훈처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라 준 공무원이라는 말을 듣고 있어서 지금보다 좀 더 괜찮은 대우를 받고 싶어 도전했어요.
저는 이 일을 7년째 하고 있는데요. 이곳의 일들이 세상에 속속들이 알려지는 것을 요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알면서도 눈감고 들었어도 귀 막아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요, 제가 멍청하게, (어쩌면 정말 순진하게) 책을 출간하고, kbs아침 마당에 출연했다는 일로 자기소개서를 채웠습니다.
공인에 가까운 직원을 뽑는 게 그들에게 부담이 되었던 걸까요? 아니면 그들이 보기에 제가 정말 역량이 없어 보였던 걸까요?(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다른 시키실 일이 있나 봅니다. 일단은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지도.)
무튼, 저는 긴 시간을 모처럼 고민을 해보고 다시 오랜만에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제 글을 기다리고 있을 출판사 에디터님, 정말 미안합니다.)
몇 달 동안 글쓰기 외에 다른 생각들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좀 더 좋은 직장, 안정된 삶, '그러고 나면 글도 더 잘 써질 거야'라며, 다른 이들에게 글은 매일 조금씩이라도 써야 느는 것이라고 건네면서, 정작 저는 글쓰기를 안 했습니다.
제 독자들은 알다시피, 저는 꽤 많은 돈을 벌었던 때가 있었고, 사업 실패 후에는 노숙자로 살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파란만장 등등, 오랜 시간이 지나 출간하고 작가가 되었는데요, 잠시 제가 잊었습니다. 그 시간을요, 그 힘들었을 때를요, 다시는 돈을 좇아 살지 않겠다 다짐하던 때를 말입니다.
오늘 문득, 탈락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과거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초심이란 말도 떠올랐습니다. 한 어르신의 죽음을 보고 선택한 직업, 요양보호사. 이 일이 너무나 좋아서 어르신들과 즐거이 지냈고, 그런 내용으로 책을 냈지요. 사실 이만큼만 해도 더할 나위 없습니다.
책을 쓸 때 말입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주, 야간으로 일을 하는 중에 써야 했거든요. 그런데 몸은 힘든데 마음이 너무 기뻤습니다. 잠은 오지 않고 머릿속은 온통 글쓰기에 집중했는데요, 그 시간을 돌이켜보면 참 좋게 느껴집니다. 왜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출간 제의를 받고 수개월 노력하며 책을 완성했을 때, 제 심장의 박동을 직접적으로 느꼈다고 할까, 정말 제게도 뜨거운 심장이 있었구나 하는 자각 말이에요.
첫 책인데 인세가 제법 들어옵니다.(제법 책이 팔렸다는 뜻이지요, 다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일을 잠시 놓아도 여유가 있었어요. 그 때문일까요. 저는 7월 말일에 당당히 요양원에 사표를 냈습니다.
근 삼 개월을 쉬었는데요, 일 할 때 짬짬이 쓰던 글의 양보다 더 못 썼습니다. 시간이 많아서 글을 쓰는 건 아닌 게지요. 쉬면서 생각이 많아지니 글쓰기의 방향도 여러 갈래입니다. 역시도 생각을 많이 한다고 글이 써지는 건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생각은 하고, 또 하고, 더더 하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은 될까?라고 고민합니다.)
참, 제 책이 국가 어디 단체라고 했는데, (문화 무슨 부서라고 했어요) <2020 나눔 도서>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제 책을 국가에서 구매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하고, 또 리디북스, 웹툰 팀에서 제 책을 웹툰으로 제작한다고 해요, 내년 봄에 선보일 것 같습니다.(업계 최고의 계약금을 준다고 하는데 아직 입금은 안되었습니다. 초보 작가 입장에서 늘 돈 이야기는 어렵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했냐면, 오늘 제가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시험에서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입니다.)
거기에 대기자 명단에도 들지 못한 걸 생각하며, 사실 좀 상처도 받았지만,
아! 이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살지 말고 내 심장이 뛰는 일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물론 요양보호일을 할 때도 심장이 뛰지요, 제가 좀비는 아니니까)
'이제는 본격적으로 써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몇 달 놀면서 먹고살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책,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써서 먹고사는 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주된 일을 하며 부업쯤으로 생각한 글쓰기인데요, 그 부업이 지금 저를 살게 해주고 있으니, 아무래도 글쓰기를 하며 부업을 구하는 것이 제 심장을 펄떡펄떡 뛰게 하는 일이 아닐까, 그 삶이 후회 없는 인생이 아닐까, 하고.
글을 써서 먹고사는 일, 역시나 만만치 않은 일이지요. 뭐 그러면 어떨까요. 세상에 만만한 일이 어디 있으려고요. 그래서 결정했어요. 조금 힘들게 살아보기로요, 글쓰기를 본업으로 삼아볼까 하고요.
누군가 글러 먹었다고 해도 저는 글로 먹고
누군가 근로사를 걱정해주어도 저는 글로 살아 볼게요.
응원해주실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