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한강을 사람들이 건너고 있었다. 군데군데 퍼런 강물이 얼음 밑에서 피멍처럼 맺혀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큰 눈송이처럼 얼음 위로 쏟아졌고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른 채 앞사람의 그림자만 쫒아가는 사람들의 긴 행렬은 끝이 없었다.
소 한 마리가 제 몸만큼이나 많은 짐을 등에 지고 주인의 손에 잡혀서 얼음 위를 걷는 것이 보였다. 소는 몇 걸음을 걷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몇 번 그 모습을 반복하던 소는 결국 바닥에 주저 않았다. 고삐를 잡은 사내의 손이 팽팽했다. 뒷다리를 버둥거리던 소가 주인의 힘에 이끌려 막 중심을 잡고 일어설 때였다. 소가 밟고 있던 얼음 주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 얼음은 동그란 구멍을 만들며 조각조각 났고 소는 두 개의 앞발을 얼음에 걸친 채 버둥거렸다. 주인은 급하게 고삐를 당겼지만 소의 무게와 그보다 무거울 것 같은 소가 짊어진 세간살이는 강물 속으로 빠져가기만 했다. 결국 사내는 고삐를 놓고 말았다. 깨진 얼음 사이로 공기방울이 보글거렸다.
사람들은 흥남부두로 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미군이 피란민들을 배에 실어 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여동생의 조막손을 꽉 쥐었다. 마지막 남은 피붙이는 내가 꼭 지켜낼 거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났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람들 틈에 끼어 한참을 걸었다. 여동생의 숨소리가 쌕쌕거렸다. 잠시 쉬어야 할 모양이었다. 다섯 살 배기에게는 힘든 길이었다. 우리는 길섶에 앉았다. 맞은편 길가에 묘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소 한 마리가 쓰러진 주인의 손에 붙들려 오도 가도 못하고 커다란 눈동자를 희번덕거렸다. 주인은 죽어버린 모양이었다. 아무도 죽은 주인의 손에서 소를 구해주지 않았다. 소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전쟁 중에 나는 부모님을 잃었다. 폭격을 맞고 허리 아래가 사라진 아버지는 마지막 눈을 감기 전에 어린 여동생을 내게 부탁했다. 나는 여동생을 지켜야 했다. 그게 내 일이었다. 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 열다섯이면 아직 애잖아요.
- 내 또래의 아이들 중에는 학도병으로 참전한 애들도 있었으니까 아주 애들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득해졌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듯보였다.
우리는 삼마치 고개를 넘고 있었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득 메워서 온 산이 하얀 진달래가 핀 것 같았다. 앞서 걷던 사람들로부터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서쪽 하늘에서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풀숲에 몸을 숨겼다. 미군 비행기인지 중공군의 그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여동생을 품에 안고 잔뜩 몸을 웅크린 채 하늘을 쳐다봤다. 몇 대의 비행기가 사람들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숲 속으로 몸을 숨겼다. 비행기 앞쪽에서 노란 불꽃이 일었다. 낮게 날며 사람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는 비행기의 꼬리 부분에 미군임을 나타내는 성조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한 남자가 풀숲에서 뛰어나와 비행기를 향해 두 손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미군 비행기에게 우리는 적군이 아님을 밝히는 것 같았다. 남자의 앞쪽부터 두 줄의 흙들이 높게 튀어 올랐고 흙먼지가 지난 뒤 남자는 바닥에 힘없이 꼬꾸라졌다.
여기저기에서 흰옷을 붉게 물들인 사람들이 '왜 미군이 우리를 죽이냐'라고 울부짖었다.
삼마치 고개가 붉은 진달래 색으로 온통 물들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미군은 피란민 폭격 사건을 부인하고 있다.
- 아니 왜? 미군이 우리 피란민을 죽인 거예요?
할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고 그때를 회상하는 듯했다.
-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물밀듯이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공군들이 피란민으로 위장했다는 정보가 있었다고 하더군. 국군이든 미군이든 중공군이든 피란민의 목숨에 누가 신경이나 썼겠나.
- 그래도 할아버지는 그 난리 통에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정말로요.
- 겨우 목숨을 부지했지만 진짜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몰랐지. 더 끔찍한 불지옥이...
흥남부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전차와 군용 차량들을 따라 군인들이 줄을 지어 배에 올랐다.
열다섯 살의 사내아이는 동생을 붙들고 있던 손에 더 힘을 주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배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배 앞에는 총을 든 미군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이미 배에 탈 수 있는 인원이 다 찼다며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미군과 우리 정부가 당초 예상한 민간인은 4000명이었다. 미군은 실제로는 10만 명의 피란민을 구해냈다. 하지만 배에 오르지 못하고 남겨진 사람들도 그에 못지않았다.
무려 8,000여 개의 포탄이 캄캄한 밤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퍼붓는 광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고 남겨둔 400톤 분량의 다이너마이트, 1000파운드 포탄 500개도 폭격을 맞아 폭발했으니 그날 밤 흥남부두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많은 사람들이 흥남부두나 시내에서 희생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날 밤 나는 많은 사람을 철수시킬 수 있었다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 그리고 마지막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현봉학 박사)
1950년 12월 24일 미군은 흥남부두를 폭파했다. 적군의 부두 접근과 남하를 막기 위해서였다.열다섯 살의 사내아이와 그의 다섯 살배기 여동생은 결국 마지막 배에 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여동생을 지켜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정부에서 발표한 흥남부두 철수작전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이다. 군사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실제 그 현장에 있었던 할아버지의 말씀에 조금 더 무게를 싣고 싶다.
흥남부두는 비명과 통곡, 지옥, 아비규환이었다고 말이다.
수많은 죽음을 마주한 할아버지의 삶은 어떠했을까.
기억을 떠올리던 할아버지의 얼굴은 평안해 보였지만 눈빛은 슬프기만 했다.
그 힘든 시절 견뎌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