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직장을 옮겼다. 요양원이었다.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일곱 명의 치매어르신들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셨다는 말처럼, 어르신들이 삶의 방랑을 끝내고 왔던 곳으로 돌아간 것이면 좋겠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할 수는 없다. 우리 영혼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내게 적확한 사실은 반짝이는 눈동자가 빛을 잃는 것은, 코에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죽음이라는 것이며, 죽음은 매번 낯설다는 것이었다.
삶이 끝나는 죽음의 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죽음을 맞고 각각의 이별을 남긴다. 삶에서 다정과 기억되는 경험이 있듯 죽음에도 유정과 그리움이 있다. 떠난 일곱 분이 남긴 이별은 나름대로 각각의 이별이었지만 유독 잊히지 않는 선물 같은 이별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가을 냄새가 스며들었고 한낮에는 다시 여름이 기세 등등, 고개를 들었다.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 가는 계절의 줄다리기가 팽팽했다. 구월의 첫날이었고 회사를 옮긴 후, 나의 첫날이었다.
입구 현관문에 사각형의 스핑크스가 붙어있었다. 스핑크스의 질문은 수수께끼가 아닌 네 자리의 숫자였다. 1, 0, 0, 4였다. 버튼 네 개에 두꺼운 유리문이 순순히 안을 허락했다. 그곳에는 방마다 서너 명의 노인들이 같은 모양의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는데, 몸의 방향은 제각각이었다.
나는 한분 한분 손을 잡고 첫인사를 드렸다. 그중, 한 노인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노인들의 시선이 텔레비전을 향할 때, 이 분의 얼굴은 텔레비전 아래에 앉아, 텔레비전 보는 사람들을 향한 모습이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였다.
노인은 초등학생 정도의 작은 체구였다. 다리를 잔뜩 구부리고 두 무릎이 가슴에 닿아있었다. 양쪽 옆구리엔 코가 검은 곰 인형과 코가 사라진 강아지 인형을 끼운 채였다. 노인은 자동차 앞이나 뒤쪽에 붙어 고개를 출렁이는 인형처럼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머리를 움직였다.
대화는 어렵지만 아! 아? 같은 한마디로 당신의 요구를 표현한다고 했다.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다리가 굳어져서 펴지지 않기 때문에 기저귀 교체할 때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한 요양보호사가 덧붙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노인은 앉아있는 모습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ㅡ 그럼 이분은 이 자세로 얼마나 계시는 건가요?
오십 대 중반의 여자 요양보호사가 대답했다.
ㅡ 혼자 똑바로 앉지를 못하세요. 이렇게 앉아 계시다가 식사하실 때만 휠체어에 태워드려요. 자주 옆이나 앞으로 쓰러지기 때문에 소파에 앉을 수도 없어요. 벽에 기댄 채 이리 앉혀드릴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두 눈을 맞추고 한동안 그 노인을 살펴봤다. 처음엔 이리저리 움직이던 노인의 눈동자가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까만 눈동자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노인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며칠 그분을 관찰했다. 할아버지는 말을 잘하지는 못 했지만 잘 들을 수 있는 청각은 유지하고 있었다. 치매 진행도 초기 상태였다. 대화 내용을 대부분 이해하신다는 것과 '아'라는 한 단어 말에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억양과 톤이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약간의 받침이 필요했지만 소파에서도 충분히 지낼 수 있었다.
텔레비전 아래를 떠난 노인은 푹신한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이 아닌 텔레비전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짧은 한 글자 단어를 사용하지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노인이었다. 용변을 보면 빠른 시간 안에 기저귀를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렸다.
ㅡ 어르신?
ㅡ 아!
ㅡ 소변보시면 제게 알려주실 수 있어요? 축축하게 계시면 좋지 않으니까요.
ㅡ 아~
ㅡ 그럼 만약 용변을 보시게 되면 이렇게 손을 들어주세요. 그럴 수 있을까요?
나는 한 손을 쭉 펴서 노인을 향해 손바닥을 보이고 살짝 흔들었다. 짧고 마른 어르신의 손도 따라 올라왔다. 팔을 쭉 펴지는 못하고 손만 들어 올리는 시늉 정도였지만 가능성이 보였다.
다른 요양보호사들은 괜한 일거리를 만든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는데, 과연 일이 어찌 될지 궁금하기도 한 표정들이었다.
할아버지의 손은 곧잘 올라왔다. 그 덕에 내 일이 좀 바빠지긴 했지만, 그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 생각하니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했다. 그건 내가 출근하지 않을 때였는데, 그날에는 할아버지의 손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그였다. 그럼에도 노인과 나와의 수신호는 계속되었다. 몇 달이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 날, 여러 행사가 겹쳐서 아침부터 분주한 날이었다. 그날따라 면회객이 끊이지 않았고 외부에서 음악 봉사를 온 사람들이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한 시간 가량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ㅡ아, 아! 아? 아??
나는 할아버지의 짧은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손바닥을 들어 보이기만 했을 뿐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눈앞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먼저 보였다. 슬쩍 어르신을 돌아보고는 못 본 척 나는 등을 돌려버렸다. 그날 이후로 그의 손은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분에게 사과를 드려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름에도 못 들은 척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ㅡ 아아~
ㅡ 괜찮다고요?
ㅡ 아~
ㅡ 용서해 주시는 거예요?
ㅡ 아~
한 번의 회담으로 우리 두 사람은 화해했다. 우리는 20대 국회와는, 한일 양국과는 달랐다. 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화해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두 번 다시 손을 들지 않았다. 몇 번을 말씀드려도 그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애면글면하는 나를 본 몇몇 동료들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ㅡ 아마 선생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저러시는 것 같아요. 속은 말짱한 분이시니.....
나는 할아버지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ㅡ 어르신 저 때문에 이러시는 거라면 그럴 필요는 없으세요.
어르신을 돕기 위해 제가 있는 거랍니다.
ㅡ......
ㅡ 어르신?
ㅡ......
ㅡ 이제 저하고 말씀도 안 하시려고요?
ㅡ 아!
ㅡ 그건 아니시고...... 괜히 그러실 건 없는데 그러시면 알려주시지 않아도 제가 자주 봐 드릴 거예요. 아셨죠?
ㅡ 아~
그는 여전히 내게 호의적이었지만 내 설득은 소용없었다. 나는 다시는 할아버지의 손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40°가 넘는 열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 아지랑이가 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작은 몸이 더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는 사나흘 전부터 식사를 못하셨다. 노인들이 식사를 하지 않게 되면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을 나는 자주 보아온 터였다.
멀리 구급차의 불빛이 급하게 창문 안으로 쏟아졌다. 풀벌레 소리가 일시에 멈췄다. 나는 밤의 한기에 푸르르 몸을 떨었다.
ㅡ 어르신! 조금 있으면 여기 정원에 온갖 꽃이 핀다고 해요. 빨리 나으셔서 돌아오셔야 해요.
낡은 문고리 같은 어르신 손을 꼭 잡았다.
ㅡ 고..... 마..... 워.
구급 대원 사이에서 어르신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썰물 같은 목소리였다. 동료들은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모두들 잘못 들은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나는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잘 듣는 편이었다. 소리를 귀로만 들을 필요는 없었다. 노인들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몸의 여러 부위를 이용해서 말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눈빛이나 표정, 심지어 노인들은 말하지 않음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마음의 소리는 어떻게든 들리는 법이다. 들으려고만 한다면 말이다.
몇 개월이 지나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어르신이 더는 고생하지 않겠구나 생각했고, 당신께는 잘 된 일이겠구나 생각했고, 이제는 굽은 다리 편하게 펴시겠구나 생각했지만 이별은 늘 착잡했다. 텔레비전 아래, 쪼그리고 앉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벌레 먹은 싸라기눈이 내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떠난 지 일 년이 넘었다. 어쩌면 그분과 함께 걸었을 산책로를 혼자서 걸었다. 잔디밭 구석에 작은 노랑꽃이 바닥에 배를 깔고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한참을 그 앞에 앉아 눈을 맞췄다. 찬바람에도 바닥에 붙은 풀은 용케 꽃을 피웠다. 할아버지와는 이별을 했지만 영영 내 곁을 떠난 것 같지는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 그분은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은 잎사귀를 떨구고 제 몸에 물을 말리고 있다. 이제 겨울이 올 것이다. 곧 겨울이 오고 봄은 다시, 그 뒤를 따르고 있을 것이다. 키 작은 들꽃도 함께 말이다. 그렇게 우리도 들꽃처럼, 누가 봐주지 않아도 꽃을 피울 것이다. 누군가 찬찬히 바라보아주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