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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Nov 22. 2019

소나무는 말이 없다

모형이 되어,

누항(陋巷)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웃만이 소공원'이다. 3층 높이의 소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조팝나무, 화살나무, 장미나무가 있고 어른 서너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정자가 공원의 전부다. 공원 양 옆으로 200평 정도의 공터에도 어른 정강이 높이로 자란 풀과 야생꽃이 피었는데, 이 곳은 땅 분양만 받고 집을 짓지 않아서 만들어진 자연공원이다.


소나무 주위로 낮은 초록색 쇠로 만든 울타리가 둘러있고 그 앞에 나무 팻말이 서있는데, 나무의 수령이 적혀있다. 소나무의 나이가 150년이라는 거다. 사람에 비하면 많아 보이지만 소나무 입장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소나무의 굵기는 울타리 때문에 직접 안아볼 수는 없지만 어른 두 명이 겨우 껴안을 수 있을 듯하다.


열두 시와 한 시 그리고 세 시를 향하는 굵은 가지 세 개가 있고 다른 쪽으로 자라는 가지들은 모두 잘린 모습이다. 시침 분침 초침 같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가지 셋을 쇠로 묶어두었기 때문인데, 디자인한 모습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족쇄 끝이 가지마다 살을 파고 박혀있다.


며칠 전에 시에서 공무원 한 사람이 인부 몇 명과 와서 겨울 준비를 했다. 소나무의 밑동부터 가지가 시작되는 시점까지 살구색 테이프로 칭칭 동여맸다. 소나무가 어는 것을 방지한다고 했다. 먼 산에서 자라는 소나무와 달리 동네에 사는 소나무는 옷을 입어야 한다. 봄에는 몸통에 링거를 달아두기도 했는데, 소나무는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는다.


소공원에 아침이 오면 새들이 모인다. 새들은 공원 어디엔가 몸을 숨기고 지저귀는데, 소나무에 오르지는 않는다. 소나무는 새들이 숨을 가지가 없다. 검은 쇠로 고정된 테이프를 칭칭 감은 소나무는 조형물 같다. 새들은 소나무 근처에 가지 않고 잡초와 조팝나무, 화살나무 아래에서 운다. 사람들은 소나무를 힐끗 쳐다보지만 소나무 아래에서 쉬지 않는다. 울타리로 접근을 막은 탓도 있지만 소나무 아래에 그늘이 없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있는 앞쪽 건물에 숯불구이집이 있다. 고기 구울 때 나는 연기를 밖으로 보내는 은색 연통이 있는데, 바로 소나무 앞쪽이다. 이럴 때면 소나무 아래로부터 위쪽으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고향집의 모습과 비슷하다.

고향에서는 지붕 위로 삐죽 솟은 연통에서 연기가 나면 밥 짓는 냄새가 났다. 이른 새벽 연기는 평소보다 더 뭉글거려서 바로 사라지지 않고 하얀 붓이 되어 어둑한 하늘에 수묵화를 그렸다. 집 뒤편에 소나무가 연기에 흔들릴 때마다 제 몸을 비틀기도 했다.

연기처럼 희미해져 가는 기억이다.


밤에는 소나무 아래쪽 조명에 불이 들어온다. 불빛은 소나무의 몸통 위쪽부터 세 방향으로 뻗은 가지를 향한다. 경건한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오싹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은 밤이면 소나무 근처에 얼씬도 않는다. 소나무에게 겨울옷을 입혀 둔 뒤로는 더 한산하다.              


자연스러워야 자연이다. 가지를 잘라내고 쇠사슬을 박아서 즐기는 소나무는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만든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동네 사람들은 소나무를 보며 혀를 찬다.

오늘도 소나무는 모형처럼 서있는데,

소나무는 이렇다 저렇다 아무 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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