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눈이 올 것 같은 하늘 아래 눈송이처럼 날리는 사람들을 피해 그는 급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커피라는 글자만 보고 들어온 상점은 도넛을 파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도넛을 팔면서 커피까지 판매하는 가게였다. 그는 다시 나갈까 고개를 돌리다가 그냥 테이블에 앉았다.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보였다. 그는 사람들과 몸이 닿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결벽증 환자였다.
현수는 가방을 열고 물티슈를 꺼내서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테이블의 이쪽에서 저쪽 모서리까지 빠짐없이 닦고 있을 때 동그란 우주선 모양의 플라스틱이 징징거렸다. 그는 테이블을 닦던 물티슈로 호출 벨을 감싼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 두 개로 둥근 벨의 끝부분을 잡고 있었다. 커피를 건네는 아르바이트생의 눈빛이 익숙했다. ‘별꼴이야 정말’이라는 눈빛,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거리에 멍한 시선을 두고 있을 때였다. 한 꼬마가 네온사인의 빛을 한 몸에 받은 채, 진열된 도넛 앞에서 미동도 없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유리창에 얼마나 가까이 붙었는지 녀석의 코가 유리창에 밀려 들창코로 보일 정도였다. 평소의 그는 다른 사람 일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었지만 녀석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꼬마는 대략 예닐곱 살 정도 돼 보였다. 추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옷을 입었다. 머리는 언제 깎았는지 귀를 모두 덮을 정도로 덥수룩했다. 꼬마는 노숙자로 보기엔 너무 어렸고 보호자가 있다고 생각하기엔 그 행색이 누추한 모습이었다.
녀석은 십 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도넛을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이 눈빛으로 도넛의 가운데를 먹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때, 녀석의 얼굴이 갑자기 그를 향했다. 녀석과 눈빛이 마주치자 현수는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 그는 생각했다.
그가 꼬마의 시선을 피해서 딴청을 피우다 다시 녀석을 봤을 때 녀석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눈으로 도넛을 먹는 중이었다.
“먹고 싶니?”
그가 말했다. 그는 꼬마에게 말을 건네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냥 녀석을 못 본 척하고 갈 길을 갔어야 했다. 그게 평소의 그였다.
가까이에서 본 꼬마의 모습은 유리창 안에서 본 것보다 더 처참했다. 녀석은 한 겨울에 발목이 드러난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발은커녕 한쪽 끝이 덜렁거리는 슬리퍼를 신은 채였고 심지어 녀석의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녀석에게 도넛 6개가 든 상자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도넛 상자를 받아 든 녀석은 동그란 눈을 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먹고 싶었던 거 아냐? 어서 먹어.”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녀석은 상자를 열고 도넛을 물끄러미 봤다. 그러고는 다시 상자 뚜껑을 닫았다.
조바심이 난 건 그였다.
“왜 안 먹어? 좋아하는 맛이 아니니? 바꿔줄까?”
그는 꼬마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녀석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고……. 동생들하고 같이 먹으려고요.”
이은철, 녀석의 이름이었다. 녀석은 키가 작아서 예닐곱 살로 보였는데 실제는 아홉 살이었다. 은철에게는 동생이 두 명 있었고 할아버지와 산다고 했다. 그는 녀석에게 도넛 한 상자를 더 쥐여 주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은철의 뒷모습만으로도 녀석이 기뻐하고 있음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그가 상상하지도 못 한 일이 일어났다.
그는 녀석을 다시 불러 세웠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은철의 팔목을 잡고 사람들 사이로 급하게 사라졌다.
현수는 두툼한 겨울옷을 은철이네 식구에 맞춰 샀다. 신발가게에서는 녀석의 검은 발을 본 점원이 은철이 미리 신어보는 것을 꺼려해서 약간의 소란이 일기도 했다. 은철과 그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찜질방이었다. 그는 사양하는 녀석의 손을 잡았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사람의 손이었다. 작고 따스했다.
그와 함께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아이가 현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저씨……가 산타 할아버지……아니세요?”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목욕탕에서 간간히 현수와 은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이후 그는 꽤 오랜 시간 카드 할부금을 갚아야 했다.
현수는 가끔 녀석 생각을 한다. 사실 자신이 은철에게 더 큰 선물을 받았다고. 어쩌면 녀석이 산타클로스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는 한다.
그날 이후로 현수의 결벽증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현수는 사람들이 붐비는 12월의 거리를 걸으며 크게 외친다.
“은철아! Merry Christmas~”
(사진 pixabay, JillWelling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