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불

'한ㆍ일 위안부 합의' 헌법 소원 각하 결정에 아쉬움을

by 고재욱

꽃불


아직 별이 남아있는 시간에
가늘고 긴 칼의 춤이 시작됐다
산 넘어 아침 해도 몸을 숨긴 시간,

옆집 아비는 어린 딸 막아서다
온몸에 붉은 진달래가 피었고
옆집 어미는 두 딸을 서슬 퍼런 거짓말에 바치고
산 중턱 오래된 자작나무에 줄을 걸고
자작자작 타버렸다

뒤란 큰 옹기 속에 작은 소녀는
항아리 가득 찬 숨소리마저 틀어막고
절벽 같은 가슴 감싼 채
시간이 흐르기만 빌고 빌었다

말 못 하는 누런 짐승도 흰 눈동자 뒤집고
바짝 세운 털 사이로 애꿎은 꽃바람만
갈 곳을 찾지 못한 그날,

산 여기저기 소녀들의 낯빛 닮은 꽃들이 피어나서
산 이곳저곳 퍼렇게 붉게 아우성치던
커다란 옹기 속에 작은 소녀가 견뎌낸 그 봄,

흘러내린 눈두덩이 아래
백 아홉 개를 넘긴 주름으로
이 하나 없는 잇몸으로도 기억하는 그날,

그녀가 전하는 그 시절의 피멍 든 산은
고스란히 노인의 몸에 남아서
검은 버섯 꽃을 피웠고
그 마음 다 안다는 듯이
산천은
이 봄에
앳된 소녀들을 잊지 않고 불러내서
천지 간에
꽃불을 밝히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