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Jun 03. 2024

우주의 기운아 모여라!

며칠 전에 남편이 말했다.

“너의 능력은 정말 대단해.”

“뭐가? 내 능력이 뭐?”

“네가 김칫국 마실까 봐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 얘기할 것임을 알면서 꼭 뜸을 들인다.

입이 근질근질한 게 뻔히 보이는데.

그래도 내가 더 안달 난 척 살살 구슬려 본다.


“아~무슨 얘긴데~어서 말해봐! 궁금하다고~“

“우리 계획이 앞당겨질 거 같아.”

“계획? 무슨 계획? 우리 동반 은퇴하는 거? 아님 차 바꾸는 거? 요즘 코인이 잘 돼? 계획이 한 둘이어야지. “

“이럴 거야? 네가 해외 나가서 살고 싶다며!”

“아 그 계획? 갑자기 그게 왜?”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되는 남편을 따라 동반휴직을 하고 떠나는 건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몇 년 동안 남편을 들쑤셔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자기 직군은 자리가 없다는 얘기뿐이었다. 웬만하면 나의 소망을 이루어주고 싶어 하는 남편이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김칫국 마시지 말라고 하면서도 희망 섞인 소식을 물어오곤 했다. 앞으로 6년쯤 뒤에는 잘하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6년 뒤 벌어질 일은 그 회사 CEO도 모를 테지만, 남편은 눈치가 빠르고 판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김칫국 마시지 말고’라는 남편의 경고 따위는 바로 제쳐두고, 나의 머릿속에는 이미 6년 뒤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실현 가능성이 적은 한낮 예측이라는 걸 모르는바 아니었지만, 참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는 그게 늘 선명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정말 그 일이 이루어질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남편은 늘 내가 ‘바라는 대로’ 뭔가를 이루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계획’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니! 고객사에서 자꾸 태클을 거는데, 그게 오빠 직군이 해외에 나갈 필요성을 좀 더 부각하는 모양이다. 승자의 미소를 얼굴 가득 드리운 채 말했다.


“거봐. 온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모여들고 있다고.”

“우주의 기운 같은 별 이상한 소리를. 암튼 너무 앞서가지는 말고.”

“우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잘 봐봐. “


친구들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박장대소를 하는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나 이 말 아는데! 학교 다닐 때 엄마가 맨날 이야기했어.”


그때 생각났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해대던 그 말이 학창 시절에 유행했던 ‘시크릿’이라는 자기 계발서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나왔다는 것을!


원하는 걸 시각화해서 매일 떠올리면 실제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정작 학창 시절엔 따라 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간절했던 대입과 임용시험을 앞두고도 번번이 실패했는데, 이제 마흔을 앞두고서야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체득되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어쩌면 그때는 간절함만큼이나 두려움과 불안이 커서 온전히 믿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은 삶에 안정감이 생겨서 긴 호흡으로 내가 바라는 삶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게 가능해졌을 것이다. 실은 남편을 따라 해외에 나가 사는 것뿐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내가 머릿속으로 늘 떠올리는 목표가 하나 더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꿈이 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