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종종 묻곤 한다.
“넌 꿈이 뭐야?”
지난 1년 동안 아이의 대답은 둘 중 하나다.
“전 꿈이 없는데요.” 이거나,
“부자가 되고 싶어요.”
남편과 단 둘에 있을 때,
남편에게 말했다.
나: 어떻게 꿈이 없지? 난 어릴 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았는데.
남편: 없을 수도 있지. 나도 꿈이 없었어. 지금까지 살면서 이룬 건 그저 다른 사람들의 기대 때문이었어.
나: 늦바람이 무섭다던데. 갑자기 막 꿈을 찾겠다며 나가는 거 아냐?
남편: 그럴 리가 없어. 난 그냥 매일매일 놀고먹는 게 좋아.
나: 예전에 J가 나한테 은퇴 후에 연기에 도전한 분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 너도 해보라고. 좀 생뚱맞다 싶었는데… 나중에 은퇴하면 정말 작가든 배우든 도전해 볼까? “
남편: 작가는 집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괜찮은데 배우는 안돼. 늦바람이 무섭다고.
나: 무슨 유명 배우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 연극배우를 할 수도 있고 단역 배우를 할 수도 있고. 작가가 되기에는 재능이 없을 수도 있잖아.
남편: 배우야 말로 재능이 필요한 거 아니야?
나: 그렇지. 근데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남편: 아무튼 안돼.
사실 정말 배우에 뜻이 있어서 꺼낸 얘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이 반대하니까 진짜 한 번 해볼까?라는 마음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꿈이 많았던 만큼 아버지의 반대도 많았다. 나름의 방식으로 투쟁하며 꿈을 키우기도 했다. 남편이 어깃장을 놓는 게 되려 마음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아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사람에 따라서는, 가슴이 뛸 정도로 뜨겁게 하고 싶은, 혹은 되고 싶은 뭔가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그냥 하루하루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게 삶의 목적일 수도 있다는 것.
현실주의자에 가까운 남편과 달리,
나는 늘 뭔가를 이루고 싶다거나, 뭔가가 되고 싶은 쪽이었다. 권력, 명예 이런 것을 추구한다기보다는, 나를 설레게 하고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런 것들을 꿈꾸는 몽상가이지 않을까.
동반 은퇴를 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매일 놀고먹고 여행 다니며 살고 싶다는 남편.
은퇴를 원하면서도 제2의 직업을 뭐로 할지 고민하고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나.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꿈이 없다는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꿈이 없다는 게, 꼭 나태하고 무기력해서 그런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의미 있는 일을 이루거나,
꿈꾸는 직업을 가짐으로써 행복한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