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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Feb 01. 2024

육아서적을 통해 얻은 것은….

‘2019년의 기록’

아이가 태어난 후 정신없는 1년을 보내고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다음 해 복직하면서 바로 보내면 적응기간을 갖기가 힘들다는 표면적인 이유 뒤에는 나만의 시간을 좀 가져보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절박한 욕망이 있었다. 아이가 생각보다 어린이집에 적응을 빨리해서 급격히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자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적 심적 여유가 생긴 것도 있었지만, 아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맡겼다는 일종의 죄책감이 도서관 육아서적 코너 앞을 서성이게 만들었다. 몇 달간 수십 권의 육아서적을 읽으며 결국 깨달은 건 육아에 왕도는 없다는 그 뻔하디 뻔한 진실이었다.

그렇다고 소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육아 서적을 읽으며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내가 육아의 방향을 정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나의 마음을 울린 육아책도 있었고 몇 장 읽다가 덮어버린 책도 있었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들은 주로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해요'라는 식의 매뉴얼을 들이밀며 마치 내가 무언가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조장하는 책들이었다. 나에게 나도 알지 못했던 반항기질이 있었나 보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 넘치는 글들을 보면 '어떻게 모든 애들한테 똑같이 효과가 있을 수 있지?'라는 반감이 먼저 생겼다. 특히 '엄마표 영어'를 필두로 '엄마표 놀이' '엄마표 독서교육' 등 엄마의 역량을 너무나 강조하는 그런 책들이 그랬다. 호기심에 몇 권 빌려서 읽어보면 항상 찝찝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에 똑같이 따라 하고 싶진 않지만 막상 아무것도 안 하려고 보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게 맞지 않는 옷임이 분명한데도 모두가 입는 데 나만 안 입자니 영 마음이 불편해 주춤거렸다. 그렇게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던 시기에 '엄마 심리 수업'이란 책을 읽었다. 지금 기억하는 그 책의 메시지는 이렇다.


엄마의 무의식이 아이를 키운다. 완벽한 엄마보다는 오히려 부족한 엄마가 아이를 더 건강하게 잘 키운다. 완벽한 엄마는 자꾸 아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아이가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부족한 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의 무의식은 아이에게 낙인이 돼서 아이의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SNS에서 빛나는 완벽한 엄마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한,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을 대변하는 글 같은 느낌이랄까.


‘엄마가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엄마가 부족할수록 아이는 더 자생력이 강한 아이가 될 거야.‘


얼마나 마음에 큰 위안이 되는 말인가. 무엇보다 '자생력이 강한 아이'는 내가 바라는 내 아이의 모습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루는 어떤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마음에 와닿은 내용이 있었다.(혹시 이 책을 알고 있는 분이 있다면 제목 알려주세요!)


우리는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길 바라지만 정작 아이들이 그런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키우면 안 되겠구나, 내 나름의 방향을 잡아야겠구나 다짐한 순간이었다. 내가 바라는 아이의 모습을 나열해 보았다.


독립심, 자발성, 융통성, 협동심, 소통, 도전정신, 경제관념.


우리 부부는 아이가 스무 살이 넘으면 자립을 시키는 게 목표다. 꼭 대학 진학이 아니어도 좋다. 뭔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설 준비가 돼있었으면 좋겠다. 4차 산업혁명이 오고 있다고 한다. 부모 역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라 조언을 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일찍부터 자기 일은 스스로 하는 법을 가르치고 변화에 금방 적응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기르며 경제적인 관념도 심어주고 싶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주변 사람들과 연대하고 소통해야 하니 그런 능력도 가졌으면 좋겠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아이 경제교육과 관련된 책을 읽다 보니 여러 책에서 공통적으로 추천한 교육 방법이 있다. 바로 집안일이다. 노동의 가치를 깨닫는 귀중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래서 간단한 것부터 시도해 봤다. 집에 들어오면 신발을 혼자 벗도록 연습을 시켰다. 처음엔 바로 안되면 짜증을 내며 엄마에게 해달라고 했다. 그래도 꾸준히 '충분히 할 수 있어'라고 다독이며 스스로 벗도록 도와주었는데 요즘엔 혼자서도 잘 벗는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기 전이나 밤에 씻으러 가기 전에 장난감과 책을 정리하는 것도 아이의 일과가 되었다. 처음엔 놀이처럼 잘하더니 요즘은 제법 뺀 질대서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그래도 끝까지 아이가 정리할 때까지 기다린다. 엄마 손으로 하는 게 더 빠르고 깔끔하지만 아이의 성장에 중요한 과정이라고 믿으며 인내한다. 집안일은 처음부터 잘하기가 힘들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는 화를 낸다. 여기서 그만두면 아이가 오히려 엄마에게 더욱 의존할지 모른다. 이 과정을 이기고 스스로 해내게 되었을 때 아이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처음엔 잘 못해도 괜찮아. 여러 번 하다 보면 잘할 수 있어.'라는 실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생각해 낸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여행이다.

이건 사실 필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우리 부부는 정말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국내 이곳저곳을 참 많이도 다녔다. 이제 1박 2일 짐을 꾸리는 것은 크게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 물론 매번 무언가를 빠트리고 짐을 싸지만, 그게 없다고 정말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대부분 여행지에서 대체품을 구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는 19개월 아이를 데리고 2주간 스페인에 다녀왔다.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특히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주 놀라워한다. 막연히 느끼고 있었지만 이 여행을 통해 또렷이 인식하게 된 듯하다.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말이다. 너무나 고생스러웠지만 우리는 똘똘 뭉쳐서 문제상황을 해결했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우연한 만남들을 즐길 수 있었다. 나와 남편뿐만 아니라 아이도 낯선 환경과 사람들을 점차 즐기는 듯했다. 매장이나 식당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의 친절함에 수즙은 듯 내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웃었다. 때론 빤히 쳐다보며 그 사람이 자기를 보며 웃어주길 기다리기도 했다. 비행기, 파도, 버스, 기차에 매료되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야기했다. 물론 온전한 단어가 아니라 엄마아빠만 알 수 있는 일종의 제스처와 소리로 말이다. 일상에서는 대화의 소재나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안부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화의 대부분이다. 여행 동안에는 보다 근본적인 대화들이 오간다. 우리가 지금 함께 보고 듣고 맛보는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가 지금 느끼는 것들에 대해, 우리의 행복에 대해,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바라보고 경험하는 것들이 다르다 보니 아이와 나누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더 다채로워진다고 할까. 


아이가 자라면 우리는 함께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함께 예기치 못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경험과 변수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도 우리도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독립심, 자발성, 융통성, 협동심, 소통, 도전정신, 그리고 경제관념까지(여행 경비는 여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길러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자랐을 때 그 여행의 경험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기억하지 못할 뿐, 아이의 무의식 어딘가에는 남아 좋은 토양이 되어줄 것이다. 차곡차곡 쌓인 토양 위에 멋진 열매가 맺히기를…!




****이 글을 쓰고 몇 년이 흘렀지만 두 가지 방식은 여전히 아이를 기르는 데 가장 큰 틀입니다. 이제 아이에게는 하원하면 가방 정리하고 벗은 옷은 빨래 바구니에 넣어놓고, 다 먹은 그릇은 싱크대에 갖다 놓으며, 아침에 혼자 양치하고 세수하는 능력치가 추가되었습니다. 엄마 아빠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환경에 두려움이 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이제 여행지에 가면 20달러 정도 되는 돈으로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을 구매하는데, 함부로 쓰지 않고 끝까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아주 대견하답니다.

비록 아직 한글 까막눈이라 엄마 속을 터지게 할 때도 있지만 처음 아이에게 바라는 역량을 적었을 때 한글을 빨리 습득하는 능력을 빠트린 이 엄마의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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