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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육아휴직 생활

엄마는 방황 중

by Jade

육아휴직 7개월 차.

작년에는 육아휴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여행과 발리살이를 떠난 터라 한국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여행 준비로 바쁘고 낯선 장소에 적응해 가느라 나의 처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긴 겨울 동안 유치원에 가지 않는 아들을 옆에 끼고 하루 종일 붙어있느라 여유가 없었디. 빨리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해서 다시 혼자 있을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다는 대견함보다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는 기쁨이 더 컸다.


3월 초만 해도 1학년은 하교 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4시간 남짓.

주 3일은 아들 등교시켜 놓고 잠시 한숨 돌린 후에 10시 수영강습을 받으러 부리나케 뛰어나간다. 대부분 넋놓고 휴대폰 보다가 촉박하게 나가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도 수영강습을 신청했다가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위치도 문제였고 재미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하루 이틀 빠지다가 결국 발길을 끊었다.다행히 이번에는 단지 안에 수영장이 있어서 5분이면 갈 수 있고같이 시작한 짝꿍이 있어서 중간중간수다를 떨며 지루하고 힘든 발차기 연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제 겨우 팔 돌리기를 나가는 햇병아리 수준이지만 반대편 레인에서 잘 돌아가는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연습을 하는 마스터반 선배님들을 보며 나도 저기까지 가고 싶다는 소망을 수줍게 품었다. 음파 발차기를 하며 두 바퀴만 돌아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데 마스터반 할머니들은 어쩌면 그렇게 쉬지도 않고 몇 바퀴씩 도는지 남몰래 존경을 눈빛을 보내곤 한다. 초반에는 씻고 집에 돌아오면 아들 하교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다. 그래서 허겁지겁 밥을 차려 먹고 정문 앞으로 달려가곤 했다. 중반부터는 아들 혼자 정문 앞 상가에 있는 책방에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의 여유 시간을 확보했다. 방과 후 수업까지 있는 날이면 오후 세시까지 집에 있을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침대에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겠지만 요즘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이를테면, 아들 다니는 책방에서 성인 독서모임도 운영한다고 책방지기 선생님이 함께 하자고 권유하셔서 참여하는 중이다. 매일 정해진 분량을 읽고 단톡방에 인증을 하는 방식이다. 주말에 친정에 다녀오느라 흐름이 깨져서 놓친 부분을 따라잡느라 아이 재우고 나와서 책을 읽기도 했다. 독서모임에서는 내가 스스로 골라 읽지 않았을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쇼핑앱도 유튜브도 모두 내 취향에 맞는 물건과 콘텐츠를 추천해 준다.

책도 내 입맛에 맞는 책만 펼쳐든다. 나이가 드니 사람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와 잘 맞는 사람만 만나게 된다. 그리고 관계가 오래되다 보니 이견이 생길법한 대화는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피하게 된다.

이질적인, 용해되지 않은 이물감이 느껴지는 생각과 충돌할 일이 없어졌다.

책을 인증하며 사람들이 올려놓은 감상평을 보면 흥미로웠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자기 경험과 처지에 따라 공감하는 부분이 달랐다. 같은 부분을 놓고도 해석이 엇갈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질감이 나쁘지는 않았다.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구절 중에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읽을 때는 무심코 넘겼는데 지금 하고 있는 모든 노력들이 어쩌면 그런 증명의 일환일지도모르겠다. 남편이 출근할 때 문 앞에 아들과 나란히 서서 배웅을 해준다.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은 남편에 대한 존중을 담아.

남편이 도맡아 하던 청소와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스타일대로 옷을 탈탈 털어 건조대에 말리는 일이 늘었다. 원래의 나였다면 몽땅 건조기 안에 집어넣고 버튼 하나 누르고 끝이었을 텐데.

요리를 하는 시간도 늘었다.

주말마다 식단이라는 걸 짜기 시작했고느리고 투박한 손으로 매일 저녁을 차렸다. 밥을 자주 하다 보니 햇반 소비량이 급감했다.

살림이 적성에 맞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해내고 있다.

적어도 남편에게 '이 정도면 내가 집에 있는 것도 괜찮지?'라고 증명할 정도로는.

아들은 엄마가 집에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일부러 아빠가 퇴근했을 때 다시 한번 아들에게 물어봤다.

"엄마 일하지 말고 집에 있을까?"

"응.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좋아. 계속 같이 있자."

"근데 그러면 돈을 펑펑 쓸 수 없어. 하고 싶은 것도 조금밖에 못하고, 여행도 조금밖에 못 가고."

"펑펑 안 써도 괜찮아. 엄마랑 있고 싶어."

아들을 꼭 껴안으며 남편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증명이 되지 않았어?'라는 눈빛으로.


사실 남편은 내가 원하면 언제든 퇴사를 해도 된다고 말해왔다.

그 모든 증명은 남편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일지도.

선뜻 퇴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어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번아웃이 올만큼 힘들었던 적이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직장보다 육아에서 오는스트레스가 더 컸다. 퇴사를 하고 싶은데 누구나 납득할 만한 그런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정작 나 자신조차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고,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서 이룬 꿈이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무뎌졌는지.

아들이 가끔 엄마는 꿈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엄마는 이미 꿈을 이루어서 더 이상 꿈이 없다고, 그래서 새로운 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퇴사를 할 거라면 적어도 그럴듯한 새로운 꿈이라도있어야 할 텐데,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살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 말고는.

육아 휴직이 아니라, 살림과 육아가 전업이 되면

아이의 성공을 통해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진 않을까?

그 모든 꿈을 과거에 두고 나오면 홀가분할까, 후회가 될까.


얼마 전에 아들이 내 손가락에 실을 묶어 반지처럼 끼워준 적이 있다.

"남자가 여자한테 반지를 끼워주면 결혼하자는 뜻이야. 엄마랑 결혼할 거야?"

"응."

뭔가 예전보다 시큰둥한 대답에 재차 물었다.

"정말 결혼할 거야?"

"근데 엄마 할머니 되지 않아?"

아들이 나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충격을 받은 게 아니라 ‘할머니'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서 대뜸 말했다.

"엄마는 예쁜 할머니가 될 거야."

아들이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엄마 새로운 꿈을 정했어. 엄마는 예쁘고 재밌는 할머니가 될 거야."

아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예쁘고 재밌는 할머니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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