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6코스(2025.04.05.)
한 달에 한 번, 올레길을 걸어보자고 약속했습니다. 느리게 걸어도 무심히 기다려주는 벗과 함께.
제주 시내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쇠소깍 다리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10분. 오늘은 쇠소깍에서 서귀포 시내 중심에 있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까지 구간인 올레 6코스를 걷기로 했습니다. 신록의 녹나무 잎과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왕벚꽃 그리고 노랗게 익어가는 하귤은 서귀포이기에 가능한 가로수 수종이겠지요. 올레길 코스 안내도를 살펴보고 시작점 스탬프를 찍지 않아도 언제 어디에 내가 서있는지 알 수 있는 시작점이네요.
백록담 남쪽에서 시작된 효돈천은 쇠소깍에 이르러서야 청천(晴天)이 풀려납니다. 계곡물은 산을 가르고(산벌른내) 굽이굽이 돌아서(돈내코) 호수처럼 잔잔한 못과 주름진 병풍바위들이 이어진 쇠소깍을 만들었습니다. 풍덩풍덩 물 위로 튀어 오르는 숭어 떼와 작은 배를 타며 민숭민숭한 계곡 체험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몇십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는지 가름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이 느껴집니다.
10.1km 길이의 올레 6코스는 해안도로와 바닷가 숲길이 이어지다가 서귀포 시내인 제주올레 여행자센터까지 약 3~4시간이 걸리는 코스입니다. 올레길 초반에는 쇠소깍과 게우지코지(생이돌)처럼 효돈 9경 ‘트멍길’과도 이웃입니다. 걷는 도중에 짧게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였지만 유채, 갯무, 제비꽃, 염주괴불주머니 등 봄을 알리는 아기자기한 꽃들이 있어 맑게 웃으며 걸었답니다. 물론 도시락으로 싸고 간 김치볶음밥과 삶은 고구마, 양갱 등 배를 채울 먹거리가 가방 가득했던 것도 한몫했지요.
멀리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섶섬, 문섬), 바닷가 숲길에 숨어 뿜어져 나오는 거친 용천수와 폭포(소정방), 갯바위가 만들어 낸 진귀한 바다 풍경(소천지) 덕에 ‘놀멍 걸으멍 먹으멍(놀다가 걷다가 먹다가)’ 뭉그적대다 보니 5시간이나 걸려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유명 관광지인 정방폭포, 서복전시관, 허니문하우스 전망대 길, 이중섭미술관(2027년 2월까지 공사 기간이었지만),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스치듯 지나쳤음에도. 번잡한 곳은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나도 모르게 발동했나 봅니다.
올레 6코스 종점인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주변에는 후박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습니다. 부둥켜안으면 족히 한 아름은 될 만큼 튼실하고 늘 푸른 잎이 풍성한 상록수입니다. 시작점에서 자라는 하귤에는 호랑나비가 알을 낳고, 끝점에서 차도를 마주하고 있는 후박나무는 청띠제비나비가 알을 낳습니다. 올레 6코스, 참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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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자신의 속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이 단순한 취미일 수만은 없다.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러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소유, 법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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