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다. 하루 산책(冊) 백서른두 번째

보리수나무와 산철쭉

by 나비할망


거친 숨을 뱉어내며 가까스로 깔딱고개를 벗어나니 은은한 보리수나무 꽃향기에 자지러집니다. 안 그래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데 꽃 핑계로 쉴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네요.


한라산 영실코스 초입, 가파른 숲길을 30분 정도 오르면 오백장군들이 호위하는 커다란 분화구와 멀리 산방산 앞 바닷가 풍경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 끝에 이릅니다. 늘 이맘때면 녹음이 우거진 절벽 바위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낚아채는 주인공이 코끝을 자극하곤 하는데 바로 보리수나무 꽃이랍니다. 붉은병꽃나무, 좀갈매나무 꽃과 벗하면서 해발 1,600m 직전까지 이어지는 베이지색 꽃향기는 가파른 산행길에 발길을 붙들며 잠시 땀을 식혀가라 유혹하곤 하지요. 물론 가을에는 붉게 익는 열매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준답니다.


해발 1,600m를 벗어나면서부터 영실 탐방로의 허리라 할 수 있는 구상나무숲이 이어집니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유독 색색의 구상나무 열매가 풍성하게 열렸습니다. 구상나무숲에는 이맘때 면 꽃을 피우는 섬매발톱나무, 홍괴불나무, 마가목, 산개벚지나무, 노린재나무 등이 사이좋은 이웃들이 함께 합니다. 몇몇 나무꽃에는 털파리과 곤충이 다글다글 모여있고, 이미 사망한 녀석은 잽싼 개미 녀석한테 잡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지요. 산에는 벌 대신 파리가 꽃의 수분을 도와주고 있네요.


벌써 열흘 전에 산철쭉제를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거늘 선작지왓의 산철쭉은 지금이 절정입니다. 구름이 저만치 양보해 주었더라면 핑크빛 선작지왓이 훨씬 더 몽글거렸을 것 같은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때늦은 산행에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꽃향기에 취한 산행이라 그런지 달력은 이미 여름으로 향했거늘 자꾸만 봄을 그리워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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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식물의 성적인 완성이며, 존재의 절정이다. 그래서 꽃은 스스로 자지러진다. 꽃에는 그리움이 없다. 꽃은 스스로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워하게 한다.

- 라면을 끓이며... 중... 잎, 김훈 -


#한라산 #영실 #보리수나무 #산철쭉 #오백장군 #도시처녀나비


보리수나무  DSC_9663.jpg 보리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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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나무 DSC_9685.jpg
보리수나무  DSC_968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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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병꽃나무 DSC_9901.jpg 붉은병꽃나무
좀갈매나무  꽃  DSC_9924.jpg 좀갈매나무
죽은 구상나무  DSC_9912.jpg
구상나무 열매  DSC_9748.jpg
구상나무 열매 DSC_9884.jpg
구상나무 열매 DSC_9753.jpg
구상나무 열매
섬매발톱나무  DSC_9889.jpg
섬매발톱나무  털파리류  DSC_9763.jpg
섬매발톱나무
홍괴불나무 DSC_9897.jpg 홍괴불나무
마가목 DSC_9909.jpg
산개벚지나무 DSC_9853.jpg
노린재나무  털파리류 DSC_9723.jpg
마가목 산개벚지나무 노린재나무
털파리과  DSC_9848.jpg
털파리과 - 개미가 끌고 가는 죽은 DSC_9691.jpg
털파리과
산철쭉 DSC_978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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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지왓과 산철쭉
도시처녀나비 DSC_9842.jpg 도시처녀나비
바위미나리아재비 DSC_9822.jpg 바위미나리아재비
설앵초 DSC_9795.jpg
설앵초 DSC_9827.jpg
설앵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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