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초록뿐입니다. 흰 꽃도 초록 숲에 파묻히고, 흰 꽃에 빠져있는 작은 풀벌레마저 ‘초록초록’하고 꽃가루를 먹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보름 전까지만 해도 산철쭉과 붉은병꽃나무로 핑크빛을 띠던 산등성이가 짙푸른 여름으로 고속 질주합니다.
한낮은 30도를 넘나들어 그런지 산행 중에 걸려 오는 전화기 너머로 더위 걱정이 가득합니다. 오히려 초록 숲과 솜사탕 구름, 서글서글한 바람 덕에 피서지에 와 있는 듯하네요. 어쩜 올 때마다 이리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
한라산 아고산대 대표 습지식물 중 하나인 큰방울새란이 옹기종기 피어있고, 때맞춰서 도시처녀나비들도 든든하게 배를 채웁니다. 6월의 한라산을 보여주는 생태 사진으로는 이만한 게 없지 싶네요. 눈 소식이 많았던 지난겨울을 무사히 잘 넘겼는지 올해는 도시처녀나비들도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눈이 40cm 쌓이면 영하 20도이던 지표 기온이 영하 1도(영상 1도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로 오른다는 글을 읽고는 올해 한라산 아고산대 나비 출현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선두 주자인 도시처녀나비는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많아졌습니다.
지난 2년간 제주조릿대를 베어냈던 자리에는 새순이 올라오면서 아고산대 나비들이 알을 낳는 작은 풀들이 설 자리를 다시 매우고 있습니다. 베어낸 제주조릿대를 흩뿌렸으면 좋았을 것을 뭉텅이로 모아놓아서 원형탈모 증상을 남긴 후처리와 딸랑 2년 하고 ‘종다양성 회복을 위한 조릿대 제어사업’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 반 기대 반입니다(여기서 종다양성은 아마도 식물만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저기 현수막을 걸어놓고 나름 무언가를 했다고 치부하는 우리네와는 달리 부지런히 짝짓기하고 가까스로 남아있는 키 작은 풀 사이에 알을 낳아 천년만년 후손을 이어가는 나비들이 있어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이 짜릿해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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