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다. 하루 산책(冊) 백서른네 번째

초원의 나비

by 나비할망

일본에서 곤충을 조사하는 청년 세 명이 제주를 찾았다(Hashiguchi Katsuhiro, Tanishima Koh, Yoneyama Daichi). 그들은 수서곤충, 소똥구리, 나비 등을 조사한다고 한다(이중 한 명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다). 심지어 봉사활동으로 일본 나비보전협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풀 베기 활동을 일 년에 수차례 참여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일본에는 이런 활동을 하는 청년이 많다고 덧붙인다.

며칠 전 일본 나비보전협회에서 제주를 찾는 대학생들에게 도움을 바란다는 메일이 왔다. 일본 나비보전협회는 2017년 석사 과정에 진학하며 전공 주제를 나비로 정한 후, 나비 조사와 여러 활동들을 배우기 위해 방문했던 곳이다. 당시 나카무라(中村) 사무국장은 일본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흰점팔랑나비와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보전 활동과 모니터링 현장을 데리고 가주었다. 오랫동안 오름과 곶자왈을 누비며 야생화를 보러 다니긴 했어도 나비는 고사하고 곤충 조사 개념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일본 나비보전협회에 다녀온 것이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빚을 갚을 기회가 왔다.


나카무라씨가 부탁한 청년들과 함께 원물오름에 올랐다. 흰점팔랑나비 애벌레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을 물어왔던 터라 4월과 6월에 애벌레를 확인했던 곳을 찾은 것이다. 원물오름은 2년쯤 전까지 말을 방목했던 곳이었고, 오름 능선에 남아 있는 무덤, 수서곤충을 관찰할 수 있는 연못이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좁고 미끄러운 숲길을 십여 분 올랐다.


숲길이 열리며 촘촘한 억새 사이를 비집고 자라고 있는 딱지꽃을 발견하자 혹시나 하는 맘으로 이파리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애벌레를 찾을 수 있었다. 학생들 입에서 ‘역시!’하는 감탄이 쏟아졌다. 흰점팔랑나비는 봄에는 양지꽃, 여름에는 딱지꽃에 알을 낳고 기주 식물(애벌레 먹이식물) 주변에는 어느 정도 흙이 노출되어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알을 한 곳에 많이 낳기보다는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드문드문 낳기 때문에 초원 경관이 거의 사라진 일본에서는 멸종에 이를 수밖에 없는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다. 생물 보전지구를 만들 때는 여러 개의 작은 패치(조각난 경관)보다 적은 수의 큰 패치가 개체군을 유지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상부 능선에 길게 이어진 딱지꽃 군락과 개엉겅퀴 꽃 무리, 그리고 진분홍 꽃을 찾아 날아온 호랑나비, 굴뚝나비, 남방노랑나비, 큰멋쟁이나비, 제비나비 등이 흡밀하는 모습을 보자 청년들의 눈과 입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원물오름 정상 능선은 나비 성충과 애벌레가 먹을 수 있는 풀들이 눈에 밟히게 많이 남아 있는 경관이다. 청년들은 가방을 내팽개치고 한동안 나비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이곳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민망할 정도로 여러 번 반복했다.


일본에서는 더 이상 이런 풍경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동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깊고 커다란 바큇자국을 쏘아보며 분노의 언사도 주저하지 않는다. 곰솔과 삼나무의 어린 나무들이 마치 진격의 거인처럼 성큼성큼 풀숲을 침범한다고 했더니 풀 베기 하러 해마다 오고 싶다고까지 말한다. 멀리 숲으로 변한 오름과 곶자왈을 바라보며 거듭해서 이런 초원은 지켜야 한다고 한다. 복원보다는 보전이 쉽다며......

그들이 꾸준히 초원 경관 복원 활동을 하고 있는 곳 중 일부는 더 이상 흰점팔랑나비를 볼 수 없는 곳이 생기고 있노라면서, 늦기 전에 이렇게 넓은 금싸라기 초원은 지켜줘야 한다고 한다. 몇 곳 남지 않는 작은 패치들을 가까스로 보전하고 있는 일본의 초원 환경이 흰점팔랑나비 멸종에 이르게 한 것이라며, 나비 보전 활동을 하자고 한다. 아쉬움, 애석함, 분노 등이 절절한 그들의 땀에 젖은 눈빛 앞에서 나의 말문은 점점 닫혀만 갔다.

“초원 경관 보전을 위한 활동”

세 청년이 남기고 간 강한 여운이 가슴 한편을 묵직하게 한다.


적어도 원물오름에 올라오는 오프로드 차량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원물오름(어쩌면 동광목장) 소유주를 알고 있는 이들은 그들에게 전해주길 바란다. 감낭오름 아래 자락까지 이어지는 오프로드 차량 바큇자국의 시작점을 막아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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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나비는 숲의 어둠과 사바나 초원의 눈부신 빛을 개선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 빛이 화려하다. 200가지의 다른 종류가 고유의 숙주식물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곤충들이 피하기 때문에 혼자 지내는 편이다. 그들의 모든 숙주는 쿠마린이라는 독소를 만든다. 이 독소는 식물을 뜯어 먹으려는 대부분의 동물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지만 호랑나비의 조상에게 일어난 진화론적 변화에 패배하고 말았다. 먼 옛날에 이행한 증거가 그들의 DNA 속에 남아 있다. 모든 호랑나비는 쿠마린을 파괴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일부 구조는 변했어도 독소를 공격하는 작은 부분은 수백만 년에 걸쳐 변하지 않았다. 고대의 어떤 곤충에서 일어난 단 한 번의 돌연변이가 진화라는 성채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수백 가지 새로운 종류의 나비가 진화해 새롭고 다양한 환경을 활용하게 되었다.

- 진화하는 진화론, 스티브 존스 -


잘 생긴(본인들이 하는 말이다) 일본 청년
선명한 바퀴 자국
개엉겅퀴와 딱지꽃 무리
흰점팔랑나비 애벌레집과 애벌레
흰점팔랑나비 2025년 4월 퐐영
암끝검은표범나비
제비나비
호랑나비
호랑나비 짝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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