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5일 원물오름
아무래도 금오름에서 너무 오래 살았나 봅니다. 원물오름 입구에 자리한 큰 연못 위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마름 꽃이 건빵 속 별사탕 같네요. 얼른 이온 음료를 마시고 정신 차려야지....
얼마 오르지도 않았거늘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좁은 탐방로가 벌써부터 하산길을 걱정하게 만듭니다. 까딱하다가는 엉덩이로 미끄럼 타고 내려와야 할 판이네요. 더 놀라운 것은 산담으로 둘러진 무덤을 이장하면서 탐방로 중간에 있는 상수리나무 허리째 잘려나간 풍경이었습니다. 산담에 쓰였던 돌들을 탐방로에 널브러둔 채 가버린 바람에 잠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네요. 떠나는 자리가 이리도 요란스러우면 단언컨대 이 묫자리의 후손들에게는 좋은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찜통더위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원물 조사를 중단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생태조사는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큰 이변이 없는 한 정해진 날짜에는 조사해야 한다는 생고집을 부려 결국 강행하였답니다. 이미 금오름을 하산할 때부터 장화 속 양말은 땀으로 흥건해 있고, 배낭의 어깨끈과 정수리에서는 쉰내가 나기 시작해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에 살짝 넘어갈 뻔도 했습니다. 하지만 9월 개화 식물 기록을 못 남기면 10월부터는 꽃이 많이 보이지 않는 데다, 오늘도 어렵게 시간을 낸 여러 조사원들에게 다시 날을 잡자 하기가 쉽지 않기에 이온 음료 한 병을 마신 기운으로 정상을 향했답니다.
어깨 높이까지 자란 풀을 헤치며 정상에 오르니 딱지꽃, 바늘엉겅퀴, 층층이꽃 무리는 억새와 같이 키 큰 풀에 잔뜩 웅크려있고, 두 달 전에도 길고 깊게 남아있던 자동차 바퀴는 더욱 선명해져 있네요. 누군가 정기적으로 오름 드라이브를 애용하고 있나 봅니다. 이러다 금오름처럼 오름 정상부까지 시멘트 길이 생기지는 않겠지요?
다행히 비구름은 서서히 물러가고,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묵직한 바퀴에 밟히고 또 밟히고 있는 풀들에게도 푸르른 가을 하늘이 다다르길 바라봅니다. (다음 달에는 이온 음료 없이 오름을 오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