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2일 도너리오름
이른 아침, 오름 정상 위로 서로 다른 하늘길을 그리며 벌매와 솔개가 유유히 활공합니다. 그 아래에서는 매, 노랑턱멧새, 섬휘파람새, 박새, 동박새, 방울새, 멧비둘기, 검은이마직박구리, 까치, 때까치, 꿩 등 저마다의 음역대로 가을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가 경쾌하네요. 풀잎에 맺힌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은 탓일까요. 남방노랑나비와 극남노랑나비, 네발나비, 줄점팔랑나비, 작은주홍부전나비, 암먹부전나비, 남방부전나비, 소철꼬리부전나비가 차례로 날아올랐지만, 더 이상의 새로운 종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길 위에서 고요히 잠들어 있던 뾰족부전나비 수컷 한 마리를 마지막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생태조사를 하면서 생김새가 워낙 투박해 사진에만 담고 손이 가지 않았던 열매였건만, 마치 약장수의 구수한 말투처럼 약효를 강조하는 새 박사님의 강압적(?)인 권유에 못 이겨 오늘 처음 꾸지뽕나무 열매의 맛을 알았습니다. 새보다 나비 출현 종수가 적다는 사실에 괜히 새들의 먹거리를 빼앗고 싶은 소심한 반항이었는지도 모르지요. 비록 산뽕나무 그것(오디)의 달큰한 향과 맛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울퉁불퉁하고 곰팡이 핀 듯한 겉모습과는 달리 고소하면서도 독특한 식감이 괜찮았답니다.
방목했던 말들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도너리오름 아래 자락은 2차 천이의 첫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말에게 짓밟히고 먹히면서 키 작은 풀들과 흙더미만 남아있던 황폐한 지면에는 어느새 망초, 만수국아재비, 나도공단풀, 비름, 도깨비바늘 등 한 두해살이식물로 가득 찼습니다. 암반이나 용암지대에서 선태류와 지의류로 더디게 시작하는 1차 천이에 비해, 2차 천이 속도는 이곳 도너리오름처럼 놀랍도록 빠르게 진행된답니다. 휴식년제 오름으로 출입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조차 허리 높이 이상으로 자라난 풀과 나무에 가려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지경이니까요.
천이가 진행되고 있는 공간 중, 바람과 동물의 도움으로 오름과 주변 환경에서 유래한 씨앗과 매토종자 중 어떤 식물들이 어떤 순서로 정착하는지 식생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2*2m의 방형구를 만들어 관찰 중입니다. 흥미롭게도 한해살이풀 사이로 자귀나무가 발아해 키가 부쩍 자란 데다, 가을이 깊어지니 꽃향유도 싹을 틔워 천이 첫해부터 외래종과 자생종 사이의 긴박한 경쟁 구도가 펼쳐지고 있네요. 나름의 생태계 질서가 차곡차곡 새겨지고 있는 셈입니다. 과연 한 두해살이식물로 가득한 풀밭의 경관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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