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할망의 관찰 일지 – 올레10코스(1편)

2025년 10월 20일

by 나비할망

비 예보가 많았던 9월엔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했습니다. 가을이 맞나 싶은 10월 어느 날, 지난 8월에 걸었던 9코스에 이어 미뤄둔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봄볕처럼 따사로운 온기와는 달리, 모래 먼지를 한 움큼 안고 달려드는 바람이 제법 사납습니다. 앞사람의 모자가 하늘로 날아오르는가 하면, 걷는 내내 응큼하게 실눈을 뜨고 다녀야 할 정도였지요. 그러고 보니 태풍한 번 제대로 오지 않았던 기이한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10코스는 중간에 ‘Geo Trail’ 구간이 있을 만큼 제주의 해안 풍경 중에서도 지질학적 개성이 뚜렷한 해안 길입니다. 첫 번째 지질트레일 장소는 화순해수욕장, ‘사계 금모래 해변’입니다. 1960년대에는 금을 캐보겠다며 삽을 들이댔던 곳이죠. 이제는 어엿한 20대 중후반의 청년인 아이들이 어렸을 적, 갈대숲 가장자리를 따라 민물 속을 걸으며 족대로 물고기를 잡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때의 개울은 이제 시멘트 구조물과 방지책으로 단정하게 가둬지고, 칼로 자른 듯 반듯한 방파제가 구불구불하던 물길을 동강 냈습니다. 아직도 해안 정비(?)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는지 방파제와 인공 해수욕장 너머로 포클레인 두세 대가 부지런히 흙 다듬기 작업을 하고 있네요. 70여 년 전에는 금이 안 난다며 사업을 접었는데, 지금은 바다를 메우는 일이 금이 되는 세상인가 봅니다.


썩은다리 탐방로를 지나면 작고 아담한 소금막이 나옵니다. 순비기나무의 꽃과 열매가 줄 맞춰 어깨동무한 채 바닷바람을 맞고 있네요. 2년 전 사구 조사를 왔을 때와는 다른 길로 걷다 보니, 그때 보았던 기암괴석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신 “소금막 일대는 제주도에서 가장 젊은 용암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약 5천 년 전 병악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에 의해 형성되었다.”라는 안내문과 사진들이 발길을 붙듭니다.

매립된 사구가 무너지고 있는 황우치 해안에 서서 카나리아 야자수 너머로 병풍처럼 서있는 산방산을 잠시 우러러봅니다. 썩은다리 능선에서 봤을 때보다 주상절리의 세로줄이 한층 또렷하네요. 80만 년씩이나 먹었으면서도 저리도 곧고 반듯하다니, 너무 대쪽같은 것 아닌가요? 세월을 비껴가는 비결이 궁금하네요. 소금막의 용암바위도, 산방산의 세로 주름도, 용암이란 녀석은 참 요물입니다. 고집스럽지만 아름답고, 제멋대로 개성있게 시간을 버티는 요물.


길게 휘어진 검은 모래 해안과 화산재가 쌓인 퇴적층 위를 지나 황망대에 오르니, 지나온 길이 한눈에 펼쳐입니다. 전체 15.6km 중 고작 3km 남짓 걸었을 뿐인데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요물들에게 홀려 너무 간세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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