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할망의 관찰 일지 – 올레10코스(2편)

2025년 10월 20일

by 나비할망

10코스는 성격이 확연히 다른 오름인 산방산과 송악산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듯 묘하게 다른 풍경의 산방산, 바위라기엔 흙빛이 더 짙은 사계 해안의 퇴적층, 그 퇴적층을 만들어낸 송악산까지. 그야말로 ‘지질 트레일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지요. 80만 년 전, 3천800년 전이라는 상상조차 버거운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하늘멍, 물멍에 이어 땅멍, 바위멍에 빠져 묵직하게 올라오는 다리의 피로도 잊게 됩니다. 이런 풍경을 공짜로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발자국 화석 유적지 출입 금지(현수막), 무너지는 퇴적층으로 접근 금지(금줄), 농작물 채취 금지(안내판) 등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이쯤 되면 “그럼 뭘 해도 되는 걸까?” 싶지만, 대신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답니다. 일제 강점기 전장의 중심이었던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터, 그리고 4.3 유적지인 섯알오름 학살터. 안내판의 설명문을 마치 추도식을 하듯 꼼꼼히 읽어 내려 갑니다.

섯알오름 학살터로 이어지는 해송길에서, 20여 년 전 4.3기행으로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길가에 흘려 두었다는 고무신 한 짝, 마치 젓갈처럼 절여진 죽은 이들, 지금도 그 장면이 눈앞에 선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 시절 질퍽거리던 흙길에는 당시 죽은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와 추모비, 제단, 탐방로로 단정히 다듬어져 다크투어 유적지로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알뜨르비행장 주변은 뜻밖에도 생명으로 가득합니다. 감자꽃과 고구마꽃이 한창이고, 월동무밭에는 해충을 막기 위해 하얀 망사가 덮여 있습니다. 양배추밭에는 해충을 유인하고 천적도 자랄 수 있도록 수수 울타리가 자라고 있네요.


마을이 가까워집니다. 콜라비 모종이 자라고 있는 밭담과 시멘트길 사이, 흙이라고는 한 톨도 보이지 않는 틈에서는 참깨꽃이 피었습니다. 아마 작년에 수확한 참깨를 돌담에 걸쳐 말렸던 자리에 떨어진 씨앗이 싹 튼 것이겠지요. 흙 한 톨 보이지 않는 틈바구니에서 여리디여린 꽃과 줄기가 따가운 여름 볕을 어찌 견뎠을까요?

“트멍에서 자랑 잘도 아꼽다이.(틈 사이에서 자라나 참 귀엽다.)”

과연 저 콜라비밭 주인은 참깨를 수확할까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풍경을 지나 종점을 코앞에 두고 괜히 혼자 내기를 걸어봅니다. “한다, 안 한다, 한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동안은 ‘참깨 멍’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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