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원하 Oct 19. 2020

하코다테 . 1854

일본

한반도를 닮은 하코다테의 멋진 야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안개를 뚫고 미지의 세계를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독특한 경험만은 기억하고 싶습니다.

* 오늘은  기억  일본 여행 이야기꺼내려고 합니다. 언젠가 일본 여행이 부담스럽지 않을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한때 혜성같이 나타나 큰 인기를 얻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스타들이 있습니다. 여행지에도 그런 곳이 있죠.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도시 하코다테(函館, Hakodate)가 그러합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만날 수 있는 TV 여행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직항 노선이 생길 정도로 그 인기를 누린 곳. 이제는, 오래전에 직항기도 사라지고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코다테는 항구 도시입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2시간 반 정도를 날아 삿포로로 가서, 다시 기차로 2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만날 수 있죠. 1854년 미일화친조약에 의해 하코다테항은 시모다[下田]항과 함께 일본 최초의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했습니다. 신문물을 일찍부터 받아들인 이 도시 곳곳에는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죠.


세계 여러 도시에 트램이 있지만 이곳의 트램은 좀 더 독특합니다. 앤티크한 느낌과 아날로그 감성을 가득 품은 트램이 살고 있으니까요. 어감상으로는, 트램이라기보다는 꼭 노면전차라고 불러야 할 것 같죠.

(출처: 하코다테시 관광 홈페이지)

하코다테역에서 노면전차를 타고 세 정거장 정도를 이동하면 주지가이(十字街)역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하코다테의 상징, 모토마치(元町) 지역으로 걸어서 이동합니다. 모토마치 지역은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한 언덕들이 있는 동네입니다. 여러 언덕들 중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언덕은 하치만자카(八幡坂)인데,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이 언덕 아래와 위를 이어주고 있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풍경은 가히 하코다테로 여행 온 이유를 설명해 주기에 충분합니다.

하치만자카에서 바라본 풍경

언덕길 사이사이의 가옥들 중에는 오래된 서양식 집들이 많아 독특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언덕을 많이 다녀 잠시 휴식이 필요한 여행자들을 위한 아담하고 소박해 보이는 카페도 있죠. 카페 안은 여러 장식물로 가득합니다. 그중에서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일본 고양이 인형이 왠지 모르게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또한 카페 안의 큰 창문을 통해 바라다보이는 바깥 풍경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입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고즈넉한 마을, 그 마을 뒤로 멋진 배경을 만들어 주는 푸른 바다. 이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겠다 싶습니다.


언덕 위 풍경을 뒤로하고 베이 지구로 이동합니다. 예전에 창고로 사용되던 공간은 이제 현대식 쇼핑센터로 변신해 있습니다. 붉은색 벽돌이 돋보이는 쇼핑센터 안에는 다양한 기념품부터 초콜릿 같은 여러 먹을거리들이 있어 여행 선물을 구입하기에 적격입니다.

베이 지구 내 쇼핑센터

해가 져 어둠이 내려오면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 하코다테 야경을 만나기 위해 이동합니다. 나가사키, 고베와 함께 일본 3대 야경이라고 불리는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하코다테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로프웨이라고 불리는 케이블카를 타면 해발 334미터 정상까지 5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코다테 야경을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과 같이 도시가 하얀 안갯속에 갇히는 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운이 따르지 않은 오늘의 날씨로 인해, 사진 속에서만 봤던, 한반도를 닮은 하코다테의 멋진 야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안개를 뚫고 미지의 세계를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독특한 경험만은 기억하고 싶습니다.

하코다테 야경(출처: Unsplash)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갈 때와는 다르게 전차를 타지 않고 밤거리를 걸어봅니다. 그 길에는 예스러운 고즈넉함이 함께 합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주인공이 클래식 자동차를 타고 과거로 타임 슬립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는 과거로 가서 헤밍웨이에게 자신의 소설도 보여주고 피카소도 만나고 달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오늘 이 거리의 느낌이 딱 그러한데, 그런 일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하겠죠? 그래도 마음만은 가까운 과거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입니다. 여행 자체는 짧았지만 그 순간순간만큼은 강렬한 추억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에피소드 주제곡 ♫    

▶︎ Debussy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3.Clair de Lune // pf : 조성진
▶︎ https://youtu.be/97_VJve7UVc
▶︎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가 1890년에 작곡한 피아노 독주곡으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에 실려 있는 세 번째 곡입니다. 도입부가 느리고 서정적이다 보니 연주하기 쉬워 보이지만 의외로 굉장히 어려운 곡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어 제목 <Clair de Lune 클레르 드 륀>은 보통 ‘달빛’이라는 순우리말로 번역되는데, 사실 베토벤 <월광 소나타>의 ‘월광’과 드뷔시의 ‘달빛’은 영어에서는 모두 ‘Moonlight’로 표현됩니다.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들은 정말 많습니다. 우리 연주자들 중에서는 백건우, 손열음, 임동혁 등이 있고, 외국 연주자로는 다니엘 바렌보임, 랑랑 등이 있죠. 그렇지만 그들 누구도 조성진만큼 이 곡을 ‘몽환적’으로 연주하지는 못합니다. 피아노 건반의 한 음, 한 음이 들릴 듯 말 듯 날아와 우리 마음속에 살포시 가라앉는 경험. 그날 밤 하코다테 밤거리의 느낌이 음표로 고스란히 바뀌어 다가옵니다.




이전 05화 키아마 . ‘청정(淸淨)’의 실사판이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