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억

제백석(치바이스Qi Baishi)에 대하여.

by Celine

봄이 되면 생콩가루에 냉이나 쑥을 살짝 버무려 끓여 놓은 된장국이 참으로 좋다. 어린 시절 (7,10살쯤) 주말이 되면 집 근처에 계시던 둘째와 셋째 이모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특히 셋째 이모의 집에서의 추억은 많다. 겨울이면 오빠들과 이모집 뒷산에서 꿩을 잡기 위해 작은 대나무 바구니를 세워 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빠들은 비료포대를 깔아 썰매와 같은 미끄럼을 태워 주웠고, 그렇게 잡은 꿩으로 이모는 만두를 만들어 주셨었다. 이모가 만들어 주시는 만두에는 늘 동전이 하나들이 있었다. 그것을 가진 사람은 행운이 따른다고 해서 우리들은 기껏 이모가 정성 들여 만들어 놓은 만두를 마구 헤집어 놓기도 하였었다. 당시는 이것이 중국의 식문화인지 몰랐었다. 내가 서른 후반쯤 되었을까? 어느 봄날 이모가 보고파 무작정 찾아간 기억이 있다. 이모는 반갑게 맞아주시며 방금 밭에서 캐와 잘 다듬어 놓은 냉이에 생콩가루를 넣은 냉잇국을 끓여 주셨었다. 이모가 끓여주신 냉이는 카스테라와 같은 질감으로 입에서 사르르 녹는 듯 폭신거렸었다. "이모~ 냉이가 너무 부드럽다. 이거 무슨 비법이 있나?" "응! 비법이 있지!" 하시며 그 비법을 나에게 알려주셨다. 나는 그 이후로도 냉이 된장국을 볼 때면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셋째 이모 생각이 난다. 오빠들과 가재를 잡기도 하고 논두렁을 마구 뛰어다니던 그때.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풀에 들어갔던 나의 몸은 온갖 알레르기 반응으로 또 고생을 하여야 했던 그 시절.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이, 그 품? 이 너무도 그립다.


<송백고립도/제백석/수묵/1948/개인소장>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경매에서 약 718억원에 낙찰돼 중국 현대 회화작품 사상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중국 화가 치바이스(齊白石)의 ‘송백고립도(松柏高굤圖)’ 란 그림이다.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영웅을 뜻하는 매를 둘러싼 이 그림은 치바이스가 대만 총통 장제스(蔣介石)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오른쪽과 왼쪽의 한자는‘인생장수(人生長壽) 천하태평(天下太平)’이라는 글이다.


인생을 장수하며 천하가 태평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원할 것이다. 요즘 세상과 문 닫고 사는 나로서는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글이기에 과연 우리의 현실에 천하태평이 있을까 싶다. 바이러스들과의 전쟁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을 매일 접하다 보니 바람과 소원이라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끼게 되었다. 치바이스는 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훗날 자신을 갈고닦아 당대 최고의 학문가. 철학가 그리고 화가가 되어 지금은 동양의 피카소라는 말을 듣고 있는 지식인이며 예술가가 되었다.


그의 먹선은 대담하며 시원하다. 그리고 종래에는 사용하지 않던 추상적 기법 즉 현대화를 접목하여 새로운 화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대부분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이 많다. 또한 청말기 관료들의 무능함을 꼬집는 그림 또한 많다. 그의 대표 그림은 살아있는 듯 표현한 새우의 그림들이 있다. 내가 치바이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던 간결하면서도 대담하며 시원한 먹선 때문이다.


제백석의 새우




지금의 현실은 천하태평과 만수무강을 위해서는 조용히 입과 귀를 닫고 눈은 감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사회가 퇴행(?)을 하는 모습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치바이스가 그의 말년에 왜 칩거생활을 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의 나는 조용한 마을로 삶의 터를 무의식적으로 옮긴 것 같다. 그러나 사회의 정의를 위해 나의 촛불 밝힌 손이 필요하다면 다시금 뛰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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