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빚이 있다.

메리 카사트(Mary Stevenson Cassatt 1844-1926)

by Celine

딸이 떠나고 혼자 지내다 보니 불안증이 슬금슬금 올라와 터지기 직전인 상태로 찰랑거리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어 몇 번을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열두 시간 이상을 잠들은 것 같다. 어제저녁 먹은 약을 제 역할에 충실했다. 다행이다.


드디어 딸이 떠났다. 인생에서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흘러 보내며 아쉬움이 가득했던 딸이다. 출발 전 딸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딸! 힘든 엄마 옆에서 많이 힘들었지?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이번 시간은 너만을 위해서 살아~ 엄마 걱정 말고" 이 말을 듣고 딸의 멀쩡히 반짝이던 눈에서 엉엉~~ 대성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자~ 촌스럽게 울지 말고 얼른 들어가" 하며 등을 밀어 보내 버렸다.


세상 어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것은 보편적 가치이며 본능이자 책임이며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로서 완벽하려는 것이 아닌 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엄마. 그런 면에서 나는 딸에게 너무도 많은 빚을 지고 있다.


<The Child Bath(The Bath)/메리 카사트/oil on canvas/1893/Art Institute of Chicago>

세족식은 예수가 자신의 열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행위의 중심은 섬김에 있다. 여기서 섬김이란 과거에는 종교적 의미로 행해져 있었으나, 현대에는 상대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믿음에 의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발을 씻어 줌으로써 겸손과 존경 그리고 사랑을 담아 손으로 상대의 발을 만지면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이는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는 듯 보인다. 살이 오동통 오른 아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는 따듯한 물속에서 꼼지락 거리는 아이의 발가락 하나하나 그리고 발등 부드럽게 만져 주고 있다. 얼굴과 팔 부분이 빨간 것으로 보아 아마도 아이는 추위 속에 있다 따스한 물속에서 편안한 안도를 즐기는 것만 같다. 마치 엄마의 따스한 양수 속에서 노닐던 그때를 무의식적으로 느끼면서 말이다. 물병이 옆에 있는 것으로 보아 엄마는 아이를 씻기기 위해 물의 온도를 맞추어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인지 지금 그림은 사랑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미국 태생의 메리 카사트이다. 그녀는 상류층의 환경에서 자랐으나 화가가 되길 원했지만 가족의 반대가 매우 심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며 우여곡절 끝에 파리에서 에드가 드가를 만나 그의 그림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드가는 자신의 많은 그림에 파스텔을 이용했었다. 이러한 기법에 영향을 받아서 인지 카사트의 그림에서 유채화에서 느낄 수 있는 단단하며 고정된 듯한 느낌보다는 부드러우며 고운 질감을 느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카사트의 특징은 사랑이나 존중 등의 뜻을 표현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기법이라 생각된다.

<푸른 안락의자에 앉은 작은 소녀/메리카사트/oil on canvas/1878/워싱턴DC 내셔널갤러리>

위의 그림은 또 다른 카사트의 그림이자 내가 사랑하는 그림 중 하나이다. 그림 속 소녀는 나의 딸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딸은 이곳을 떠난 후 표정과 목소리가 달라졌다. 참으로 다행이다. 어린 시절 개미 구경하느라 저녁이 되어서 집에 들어오기도 할 때면 나는 아파트 관리실에 방송 부탁하고 집 앞 파출소를 찾아야 했었다. 그 엉뚱? 했던 소녀가 이제 어른이 되어 버렸다. 어른이지만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했던 딸에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고 살았었다. 그런 딸에게 다시 한번 감사와 미안함 그리고 사랑을 전해 본다. 그리고 딸이 품으로 돌아오는 날 나는 그녀의 발을 씻겨 줄 것이다. 그녀가 한발 한발 딛으며 마주한 많은 시간들을 위로하고 사랑을 담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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