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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e Jul 22. 2020

생각이 너무 많은 당신에게.

프레데릭레이턴(Frederic Leighton1830-1896)에 대하여



<엉킨 실타래 풀기 /프레데릭 레이턴/100.3cmx161cm/oil on canvas/1878/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Sydney>

지금 여인은 어린 소녀와 함께 엉켜 버린 실을 풀어 감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발끝에 힘을 주며 의자에 앉은 여인의 몸에는 붉은색의 실들이 감 켜져 있는 것이 보인다. 여인은 지금 실을 풀고 있는 것인지 자신에 몸에 더 감고 있는지 사실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실이 꼬여있다. 그러나 그림의 제목으로 보아서는 지금 실을 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실을 풀고 있는 여인의 표정은 매우 부드럽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리고 실을 감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여인이 풀어내는 실을 감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소녀의 눈동자는 여인의 손을 향하고 있다. 여인이 엉킨 실을 풀어내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실이 풀리는 순간 재빠르게 실뭉치에 감기 위해서 말이다. 그림은 아름다운 하프의 연주 소리를 음미하며 부드러운 실바람과 함께 춤을 추는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하늘의 구름 또한 여인과 소녀가 입고 있는 우아하고 풍성하게 주름진 실크 드레스와 같이 하얗고 붉은색의 실과 소녀의 치마처럼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다. 여인과 소녀는 실타래를 풀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 명상의 순간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험으로 보아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은 여간 힘들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참을성이 적은 편이어서 가위를 가지고 와 싹둑 잘라내고는 실을 다시 묶어 목도리를 짜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20대가 뒤 후 실을 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아빠는 "아이고 우리 00 이가 이제 많이 컸구나. 실을 끝까지 푸는 것을 보니 이제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어."라고 말씀하셨었다. 그 한 마디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끝까지 집중하여 일을 해결하는 방법을 어른이 되어서야 체득(體得)한 나는 일을 마치고 난 후 늘 기진맥진이 되곤 한다.


<타오르는 6월/프레데릭 레이턴/120.6cmx120.6cm/oil on canvas/폰세미술관U.K>

여기 그림 속의 여인처럼 말이다. 온 힘을 다해 집중을 하고 난 후 즐기는 그 달콤한 휴식의 시간. 여인은  얼마나 깊은 잠에 빠져 있기에 지금 곁에 누군가가 있는지도 조차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다. 날아갈 듯한 부드럽고 섬세한 조직의 드레스는 그녀의 온몸을 감싸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몸을 다 누일 수 없는 소파에 앉아 잠을 청해야 할 정도로 피곤했던 것인지 아니며 뜨거운 여름날 오후 깊은 낮잠에 빠져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한쪽 다리는 위쪽으로, 다른 다리는 아래에서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며 잠이 들어야 할 만큼 고단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좁은 소파이지만 여인의 풍성한 머리카락은 늘어져 있으며 한쪽 팔을 괴고 잠든 얼굴은 편안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신화 속 그림의 여인들처럼 사실과는 동 떨어진 듯한 그림 속의 여인들의 모습은 현실과는 동 떨어진 모습이라기보다는 그림에 더 몰입하게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위의 그림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화가인 프레데릭 레이턴( Frederic Leighton, 1st Baron Leighton 1830-1896)의 그림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때로, 그 시기는 제국주의로써 전성기를 맞이 하여 안정된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에 국가의 많은 지원으로 인해 문학과 예술이 아주 번성했던 시기이다. 그는 영국 출생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역사적이며 성서적이며 고전적인 주제를 묘사하였다. 위의 그림의 모델이었던 도로시는 레이턴이 48세가 되던 해 6개월간 전 유럽을 뒤져 찾은 모델로 당시 20세의 어린 나이였다. 이렇게 도로시는 레이턴의 뮤즈가 되었다.  1857년쯤부터 파리에서 생활하였으며,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프레데릭은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서 다시 공부를 한 후 1897년 영국 왕립 아카데미 회장이 되었다. 또한 1897년 남작 작위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남작 작위를 받은 다음 날 협심증으로 사망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이지게 된다. 평생을 결혼하지 않았던 그에게는 동성애자였다는 소문과 함께 자신의 모델과 사랑에 빠져 사생아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 오지만 사실관계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피톤과 레슬링 선수/프레데릭 레이턴/1886/174.6cmx1099cm/청동/Tate Britain London>


비가 와서 인지 몸과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일을 하며 가끔은 생각이 너무 많아 멈추고 싶을 때도 있고, 때로는 그 일들이 즐거워 전력질주를 하듯 뛰어들 때도 있다. 요즘 그랬다 전자처럼. "셀린, 너는 늘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적당히 즐기며 거기까지만 생각해."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엉킨 실타래를 풀듯 차분히 실을 풀다가 결국 꼬여 버려 가위로 과감히 잘라내고 실을 다시 이어도 되건만 결국 그 실을 다 풀고 말아야 하는 성격 탓에 스스로 발목을 잡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인생이란 길고 긴 실은 꼭 깨끗하고 색조차 선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낀 요즘이다. 적당히 얽히기도 하며, 힘들 땐 실을 풀기 위해 만져 꼬질한 손때의 얼룩이 생길 수 있으며, 그래도 안될 때는 가위로 싹둑 자르고 실을 다시 이어나가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이 떠오른다. 우리는 왜 생각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사유의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데카르트의 말은 적당히는 맞고, 적당히는 틀리다. 때론 우리는 모두 침묵하기를 원한다. 현실에서 벗어나 사회화된 무리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말이다. 침묵의 행위는 쉽다. 그러나 생각의 침묵은 어렵다. 입은 다물고 있으나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지금 여기서는 무엇을 해야 하지 하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는 의미이다. 버려야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의 생각까지 침묵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정말 자유롭기 위해서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vbk8Fy26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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