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유난히 깊고 푸른 가을이다. 하늘을 좋아하는 나는 요즘 매일 집을 나선다. 가을바람과 하늘의 그 청량함이 주는 설렘을 안고 말이다. 감자와 함께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면 카페에 앉아 있는 이들의 여유로움을 바라보거나, 바람이 나의 살갗을 살며시 매만지고 떠날 때도 그저 행복하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면 다시 침대에 눕게 된다.
사람은 환경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따라 마음이 쉽게 변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어린 시절 나는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아이였다. 집 앞 강물이 흐르는 다리 한편에 올라앉아 물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하루 종일 바라보거나, 동네 교회 계단에 앉아 하늘에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온갖 상상을 하는 것 그리고 새로산 크레파스의 알록달록한 색들을 보며 마냥 신기하고 행복해 화학물질이 가득한 그 박스 안에 코를 들이대며 냄새를 맡는 것이 친구보다 더 행복했던 아이. 처음 친구가 생긴 것이 바로 초등학교 5학년. 그때까지 나는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만 자리한비밀스러운 친구와 현실과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러한 어린 시절에 대해 조심스레 말을 했을 때 누군가 나에게 화살이 꽂히듯 비아냥 거리며 말했다. "너는 그래서 문제야. 너 알지? 너 또라이라는 거! 그게 정상적인 행동이니?" 어린 시절 나만의 세상을 나는 지금도 매우 사랑한다. 나는 그 순간 말하였다.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냥 들어만 주면 되잖아. 왜 비아냥거려" 그러한 나의 꿈속세상을 향해 단단한 차돌을 던지며 유리조각내듯 나를 깨버린 사람이 있었다.지금 돌아보면 그는 사랑이 많이 그립고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The Wounded Angel/휴고 짐베르크/127cmx154cm/oil on canvas/Finnish National Gallery 헬싱키>
하늘을 날던 천사가 추락한 듯 보인다. 천사는 앞을 보고 싶지 않은지 눈을 가려버렸다. 그녀의 날개에는 추락당시의 흔적들이 보이고 있다. 진흙투성이인가? 상처의 자국인가? 추락하기 전 천사는 매우 환한 얼굴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하얀색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유유히 아름답게 날아다녔을 것이다. 어쩌다 천사는 저토록 상념과 상처 그리고 슬픔에 가득 차게 되었는지 그저 궁금할 뿐이다.아니 당장 달려가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애처롭기 그지없다. 입을 꾹 다물고 표정이 없는 두 소년. 그들은긴 나무 장대에 천사를 앉혀 지금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소년들에게선 슬픔이 아닌 분노가 가득 차 보인다. 검은 모자를 쓴 소년은 천사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장대에 손을 꼭 쥔 모습이며 표정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모습이다. 뒤쪽의 소년은 증오가 가득한 무서운 눈으로 화면 밖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소년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말이다. (나는 잘못이 없단다. 화내지 마렴) 푸른색의 강물은 마치 한 겨울 얼어버린 강물을 연상케 한다. 또한 소년들이 걷고 있는 땅은 습기가 없어 먼지를 풀풀 날리듯 메말라 보인다. 그러나 그 메마른 땅에 하얀 꽃이 피었다. 마치 희망을 상징하듯 말이다. 천사의 오른손엔 꽃이 들려 있다. 아마도 소년들이 천사에게 하얀 들꽃을 건넨 것은 아닐까? 소년들은 천사에게 말을 건넸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상처를 알고 있습니다. 많이 힘들었군요. 이제 잠시 눈을 감으소서 그리고 지금의 슬픔과 고통 뒤에 당신을 보듬을 사랑이 찾아올 것입니다. 자~ 당신과 닮아 있는 이아름다운 꽃을 바칩니다. 당신은 아무 걱정 말아요."
반백살이 된 나이의 내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 꿈꾸던 나만의 세상이 아직 자리하고 있다. 눈을 감으면 가끔 그 세상 속으로 빠져든다. 오늘 거리에서 마주했던 나무의 모습 그 나무는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 종일 무엇을 바라보았을까? 그리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그러한 생각들이 들 때마다 느끼는 것은 共感이란 단어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마음과 마음의 연결된 상태를 말한다. 상대가 진정 나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느끼는가? 바로 표정과 눈빛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함께 기쁨과 슬픔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힘! 우리의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은 친구와의 시간으로 자리할 것이다. 그 시절 우리들은 그 나이에 맞는 몸짓 언어와 표정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 우리들은 순수하게 사랑하고 감정을 공유했던 그 이쁜 마음이 사라지고 있다. 그림 속의 천사가 상처투성이가 되었듯 말이다.
요즘 하늘이 높고 푸르러 그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는 계절이 되었다. 이 설레는 계절 나에게 상처가 있다면 치유할 수 방법을 모색했으면 한다. 세상을 향한 분노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만큼 스스로에게 잔인한 행동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속 한쪽 구석에 조용히 잠재워 두었던 어린 나를 오늘은 일깨워 어른이 된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눠 보면 어떨까? 그림 속 천사가 추락했을 당시 소년들이 곁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너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넌 나를 얼마나 사랑해?"
"그동안 힘들었지." 하고 말이다.
휴고 짐베르크(Hugo Simberg: 1873~1917)는 핀란드의 상징주의 화가로, 우울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렸던 화가다. 위의 그림은 핀란드들이 뽑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부상당한 천사라는 제목 또한 당시에는 이름 없던 그림에 후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짐 베르크는 "사람마다 자기가 보고자 하는 자기 내면의 것을 볼 따름'이라며 제목란에 까만 줄만 그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에서 보이는 건조함과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들은 사회에 짙게 깔린 어두운 심리 그리고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