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을이라는 이유 아니 핑곗거리를 대고는 정신없이 약속을 잡았었다. 다시 시작한 상담실의 교수님께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을 만나고 즐거운 자리를 갖아야 하며 그 속에서 나 자신이 살아 있음을 스스로 느껴 자존감과 자기애를 쌓아가길 추천하셨기 때문이다. 좀체 집에서 나가지 않는 성향의 내가 그러한 자리에 초대를 받을 때면 늘 거절하였건만 이번 가을만큼은 선뜻 모든 초대 자리에 응해 보았다. 결과는 역시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인지 안개가 자욱한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던 나의 인생이 작게나마 조금은 맑아진 느낌과 삶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아직은 남아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자기 검열의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안개가 자욱한 밤이다. 밤의 안개가 주는 느낌은 신비스러움과 야릇한 설렘을 동반한다. 오래된 다리 아래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당시하층계급의 모습으로 보인다. 산업의 발달로 인해 인간 삶의 방식이 변해 버렸다. 도시로 사람들은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등은 구부정하게 휘어있다. 그의 하루가 얼마나 고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듯 말이다.
그림은전체적으로 어둠이 안개처럼 깔려 몽롱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다. 그림 속 중심의 다리는 동양의 수묵화에서 보이는 一筆揮之의 굵은붓선을 연상케 한다. 또한 어찌 보면 사회의 제도 또는 규범 등을 의미하듯 보여 조금은 섬뜩한 느낌도 자아낸다. 때론 일탈(?)을 꿈꾸는 이들에게 매우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겠디는 생각이든다. 여기서 일탈(Departure)이란 법이나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행동이 아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때론 사회에서 정해놓은 삶의 틀(?) 등에서 벗어나고픔을 의미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사회적 위치와 책무가 있다.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때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범위 안에서 가끔은자신이 살아있음과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라는 제도는 나를 사랑하기에는 많은 장애물(?) 들과 책임이 존재하기에 그리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저 커다란 기둥은 서로 다른 세상을 잇는 가장 필요하며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면서도, 길이 보이지 않아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는 누군가에겐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밤하늘에는 노오란 별빛이 쏟아지고 있다. 어디선가 쏘아 올린 폭죽의 터져 나오는 '빛' 말이다. 빛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사회의 많은 장애물과 부딪혀 쓰러질 때도 있지만 저 기둥을 넘어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들의 앞날을 환히 밝히는 한 줄기 희망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그림은 미국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인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1834-1903)가 자포니즘(Japonism)이 유럽에 성행할 당시 일본의 우끼요에 중 히로시게의 에도 명소 100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우끼요에의 특징인 간결한 선과 시간이 멈춘듯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것과 같은 구도에 템즈강의 배터시 다리를 배경으로 불꽃놀이를 그린 작품으로 휘슬러는 평소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제목 또한 음악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쇼팽의 녹턴(nocturne)과 같은 야상곡의 용어는 미술적 언어로 야경화(夜景畫)를 의미한다.
<Nocturne in Blue and Green/제임스 애버 맥닐 휘슬러/50cmx59.3cm/oil on canvas/1871>
자신의 생각만으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쉽게 단정 짓고 판단하는 일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고 생각한 요즘이다. 집안에 틀어박혀 나만의 안정된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던 나는 요즘 사람들과 부딪히며 작게는 인간 삶의 이기적임과 넓게는 자신을 보호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타인의 감정과 상처에는 관심도 없는 동물적 본성이 인간에게 남아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인가? 관계를 맺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계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판단하였다. 살다 보니 우리는 어쩌다 어른이 되어 버렸다. 어른이 되어야 함에 대해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듣지도 못 한 채 말이다. 나는 어른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른이 되는 길을 찾고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말이다.그림 속의 커다란 다리 기둥이장애물이 아닌 든든한 어깨로 우리에게 보일 수 있는 튼튼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 깊은 계절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보길 추천해 본다. 누군가 쏘아 올린 작은 불꽃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방향을 알려주듯 상대에게 조심스레 건넨 우리의 손길은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