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line Nov 29. 2020

침묵과 표현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1932-현재)에 대하여.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더불어 Covid 19 환자가 하루 세 자릿수를 넘어가고 있다. 뉴스를 보는 것이 두려워진다.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을 때면 마치 세상이 좀비(?)로 가득 해지는 영화와 같은 허구의 세상이 현실로 다가온 듯 느낌으로 섬뜩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 TV를 보지 않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정보, 필요 이상의 과장된 말들, 시청자를 유혹하기 위한 말장난 그 이유로 나는 TV 리모컨을 어딘가에 잘 모셔 두었다. 어딘가에. 이사를 해야 찾을 수 있으려나 기억조차 가물하다.


<Mouth(Brigitte Bardot's Lips)/게르하르트 리히터/67cmx74cm/oil on canvas/1963/: Art Institute of Chicago>

붉은 입술이다. 입을 벌린 채 윤곽선이 모호하며 형태 또한 허물어져 있는 모습이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호한 입술. 그러나 붉은 립스틱을 살짝 바른 것으로 보아 여성의 입술임을 짐작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입술보다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붉은 호스의 입구와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입술 옆 쪽의 둥근 원을 그리고 있는 선들은 입술 쪽으로 향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원심력으로 인해 마구 빨려 들어갈 것 만 같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으며, 거친 듯 부드러우면서도 메마른 입술은 신비한 힘을 가진 그 어떤 생명체 보다도 강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입이란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 중 하나이고 미각을 느껴 원초적  본능을 만족시키며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신체기관이다. 단순한 기능적 측면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표현의 수단적 측면을 더 강조하고 싶다. 수 없이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가기에. 그 말은 기쁨과 환희를 때론 슬픔과 절망을 안겨준다. 그러기에 구강이라는 기능보다는 표현의 수단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예술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아름다운 노랫말을 풀어놓는 곳 또한 입이다. 누군가는 입으로 풀어놓은 것을 우리는 듣고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민간신앙에서도 입으로 주문과 같은 말들을 읊조리며 평화와 안녕을 기도했다.


이러한 입이란 구조는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는 저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입이란 따듯함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따스함을 주는 말이 그리워서 일 수도 있으며, 그 필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일상에서 입으로 그러한 표현을 자주 해서 일 수도 있겠다. 돌아보면 우리에게 그 따스한 표현이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어찌 보면 경쟁사회라는 틀 속에 살아가며 무쓸모한  견제(?)라는 것이 무의식을 지배해서 일수도 있으며, 어린 시절 교육에 있어 표현의 방법을 학습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표현을 많이 하는 것도 학습과 연습이라는 생각이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함께라서 더욱 좋습니다.' 아주 간단한 말이지만 평소 그 말을 할 때 우리는 의례적인 형태를 고수할 뿐 감정을 담지를 않는다. 감정을 담아 건넨 한 마디의 따스한 말! 그것은 때론 생명과 같아 잠자고 있는 삶을 꿈틀거리게 하는 힘을 가지며 온화하고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했으면 한다.


<브릿지 바도트1934-현재/은퇴후 동물보호권익운동가로 활동중>

이 그림은 세계를 대표하는 독일 출신의 화가이자 사진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1932-현재)의 작품이다. 그림 속의 여인은 그 시절 누구나 사랑했던 프랑스의 배우인 브리짓 바도트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가의 초기 작품이다. 당시(1960년대) 그녀는 유럽에서 성적 상징 중 하나였으며, 그녀의 대중적 이미지는 성과 대중문화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 상품화의 연결고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트의 관능적인 입술을 거칠게 전환시킴으로써 리히터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리히터의 팝아트 시초이자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그림은 초현실주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흐릿한 입술과 입이 잘려 얼굴과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머와 아이러니를 통해 냉전시대 분단된 독일에서 활하는 독특한 정치적 상황들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독일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란 팝아트와의 공유된 특징 즉 대중매체에 대한 관심, 소비주의, 일상생활의 진부성 때문에 때때로 독일의 팝아트로 생각되기도 한다.


살며 우리는 영원한 침묵과 더불어 많은 표현을 해야 하는 중간지점에서 고뇌를 하기도 하지만 삶이 주는 신비로움 속에서 적당한 타협을 한다. 요즘과 같이 어수선한 세상에서 입이란 것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염되고 퍼지기에 입을 봉쇄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각종 모양의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있다.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은 옳은 행동이다. 그러나 중무장(?) 상태에서도 우리는 표현이 가능하다. 입이 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사랑과 감사의 표현은 숨 쉬는 것조차 두려운 이 세상에 살아가는 힘이 되리라 오늘은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 감자와 한 실외 쇼핑센터에서 쇼핑 도중 유모차에 올라탄 감자를 보며 지나가던 중년의 남자가 한 마디를 내뱉었었다. "에이~ 어디 개 xx를 데리고 이런 곳에 오는 거야? 아이씨 더러워" 나는 그 중년의 남성을 빤히 쳐다봤었다. 폭발 일보 직전임을 감지한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한다. "참으시라는 게 아니고 무시하세요. 제가 사과드립니다." 젊은 청년의 말에 미소를 보내고 그 매장을 나와 버렸었다. 그 중년의 남성이 만약 손녀가 있었다면 그 손녀가 강아지를 너무도 사랑했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내게 보였을까 순간 궁금해졌었다. 동물의 유무와 취향을 떠나 자신의 표현을 그렇게 과감히 할 수 있는 그의 자신감? 에 나는 지금도 놀라울 뿐이다. 감자를 지키고 있는 엄마가 곁에 있는데 말이다.



https://youtu.be/yHJ3VWPD4FA


https://youtu.be/3iA5uHLF9xk

요즘 매일 듣고 있는 노래이다. Covid 19로 인해 변해 버린 세상을 아주 담담히 관조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뮤비가 나에겐 행복이었다.

코드 쿤스트, 최정훈, 쌈디, 이선경, 박정민(딸은 광팬이다) 그리고 나의 사랑 이재훈. 내가 좋아하는 이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이 조합은 찐조합이 분명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