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전과는 달리 조용한 분위기 아니 차분하다 못해 그 공기는 싸늘하기까지 한 올해이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떠 올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화목 난로에 불을 지필 때 나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퍼지는 장작 타는 냄새 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주먹 만 한 크기의 함박눈과 오븐 속에서 바삭하게 구워지는 쿠키의 버터향이 집 안 곳곳에 베어드는 고소함을 떠올릴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나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잠시 떠올려 보았다. 나의 엄마는 빨간색의 동그란 오븐에 마가린과 설탕을 잔뜩 넣은 과자를 구워주셨다. 그리고 친구들의 손을 잡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교회로 향하였었다. 모르는 찬송가를 따라 부르고 동네 언니, 오빠들이 준비한 노래와 연극 그리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내고 동네 목사님이 나눠주시는 과자와 빵을 한 봉지 얻어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뒤돌아보면 그리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따듯함이 가득했던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하니 그립고 또 그립다.
<무제/마우드 모리스/공책만한 크기/유화물감/년대미상/개인소장>
사슴 한 쌍이 한적한 시골 마을을 향하고 있다. 눈이 쌓인 산길을 내려와 동네 어귀에 멈춰서 말이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하늘은 노랗고 붉게 물들어 저녁쯤임을 알리고 있으며, 마을을 감싸고 있는 숲은 잔잔한 물결처럼 굽이치고 있다. 마치 초록의 물이 마을을 감싸 안아 절대적 안정감을 느끼도록 말이다. 또한 멀리서 바라본 집과 예배당은 어린 시절 쏙 들어가 놀았던종이 상자와 같이 아늑하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커다란 나무는 가지의 그 끝자락이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힘들 만큼 높이 뻗어있으며 잎사귀를 다 떨어트린 마른나무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초콜릿을 입에 넣었을 때 혀끝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함과 부드러움까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사슴 앞에는 노란 강물이 흐르고 있다. 그 강을 건너야 사슴은 마을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사슴은 저 마을에 어떻게 하면 다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우드 루이스 부부의 생전 모습>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캐나다 출신의 마우드 루이스(Maud Kathleen Lewis 1903-1970)이다. 2017년 에단 호크와 샐리 호킨스가 연기했던 영화 <내 사랑>의 실제 주인공이다. 영화 또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였지만, 실제 그녀의 그림들은 영화보다 더 순백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그림들은 기교와 화려함이 없이 매우 단순한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선과 약간의 곡선을 사용하여 그렸으며 채도가 높은 그림이지만 매우 안정감을 선사하며 밝고 긍정적이고 희망의 메시지와 따스함을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선천적인 병으로 인해 다리를 절었으며 이후에는 관절염으로 인해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녀가 처음 그림을 접하게 된 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발견한 그녀의 그림 재능으로 작은 크리스마스 엽서를 그려 팔기를 권유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정식적인 미술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듯 어질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가난하였으나 생선장수였던 남편과 함께 사랑과 긍정의 힘으로 삶을 살아 나갔었다.
새벽녘 잠이 오지 않아 감자를 안고 잠시 거리를 걸었었다. 새벽 두 시의 거리는 조용했다. 지금 생활하고 있는 제주의 이 곳은 카키색의 건물이다.
아래층에는 전 세계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PUP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을 지나는 순간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깜빡깜빡 화려한 형형색색의 빛은 우리네 삶 속에 녹아 반복되는 행복과 희망 그리고 절망과 고통이 교차하는 것만 같았다. 전구의 전기가 나갈 때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불이 들어오면 삶 속에서 해결할 무언가가 반복적으로 생겨나고 그림 속의 사슴이 노란 강을 건너면 마을에 도착할 수 있는 것처럼말이다.
우리에겐 언제나 주어진 과제와 해결하여야 하는 삶의 숙제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해결하는 순간에는 고통을 줄 수도 있으나 해결한 후에 느끼는 만족감과 성취감은 고통을 감내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리라 생각된다.
어쩌면 마우드 루이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고통을노란 강으로 무의적표현을 하였으며, 한 쌍의 사슴은 마우드와 평생을 함께 하였던 남편의 모습일 수 있다는 느낌이다. 안락하고 편안 삶을 동경하듯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삶을 동경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끝없이 예술에 도전하였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삶이라는 강을 헤치고 건넜다. 다시 생각해 보니 사슴 한 쌍은 노란 강물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새로운 생각이 든다.
올 한 해 참으로 어수선했었으며 어느덧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또다시 맞아야 한다. 마우드의 사슴이 바라보는 세상과 같이 더 나은 질적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이 어려웠던 한 해가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P.S :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내게 관심 없데도 난 늘~ 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짠짠!
독자 여러분! 오늘 밤 자신을 스스로 한 번 꼭 안아주세요. 수고했어. 00아~하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