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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e Jan 25. 2021

엄마.

나의 엄마는 손솜씨와 EQ가 매우 발달된 사람이다. 어린 시절 먹을 게 없을 땐 고구마를 달달하게 볶아 반찬으로 내어주고 없는 살림에 마가린에 계란과 설탕을 넣어 과자를 구워주기도 하셨다. 어찌나 별난 성격인지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이라도 사 먹으면 그날은 온몸에 나는 두드러기로 등짝을 맞아야 했었다. 그리고 저녁이면 커다란 빨간 물통에 물을 받아 자식 넷을 매일 씻기셨다.


노라노 선생님의 제자인 엄마는 옷도 늘 만들어 주셨다. 참고로 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엄마가 만들어 준 책가방을 메고 다녔었다. 자수도 어찌나 이쁘게 놓던지 손솜씨가 없고 성격이 급한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없었다. 나의 감자와 쿠키의 겨울 모자 목도리를 만들어 깜짝 선물을 하던 엄마. 그러나 늘 언니를 챙기는 모습을 보며 은근 서운한 맘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표현한 적이 없다. 시골에서 모든 면에서 그리 뛰어났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기대는 언니를 짓누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늘 집 안에서 겉돌며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엄마는 매일 아팠다. 나의 기억으로는 첫 생리대도 아빠에게 선물을 받았고 소풍 때는 그 흔한 김밥 도시락을 싸 주신 적이 없었다. 친구의 엄마가 늘 챙겨 주셨었다. 엄마의 성격은 매우 특이해 동네 아줌마들과는 어울릴 수 없어 늘 혼자 집에서 바쁘게 움직이거나 외갓집에서 생활했었다. 엄살도 심하고 소녀와 같은 감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어른 아이.

 

 

내가 큰아이를 낳던 날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이토록 이쁜 아기를 네가 낳았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나의 아이 둘을 그 아픈 몸으로 다 키워 주셨다. 그래서인지 나의 아이들은 나의 엄마와 아빠가 세상을 떠나실 거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어느 날 할머니가 자꾸 아프시니 돌아가시면 어쩌냐는 나의 지나가는 말에 다 큰 아들 녀석이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다며 대성통곡을 하며 우는 것이다.


엄마는 매일 아팠다. 우리 자매가 다 자라 여유? 가 생긴 후 독일과 미국 캐나다의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봤지만 병명은 한 가지! 영원히 고칠 수 없는 희귀병이란다.


엄마는 늦은 나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자신을 괴롭히던 병과는 멀리하며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많이 아프시다. 나는 지금껏 엄마에 대한 미움이 컸었다. 그런데 요 며칠 숨쉬기도 싫을 만큼 다시 무기력해지고 있다. 나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엄마를 미워만 하던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나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만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앉지도 서지도 미음도 삼키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오늘 나는 너무도 아프다. 그리고 언니와 남동생에게 미안하다. 나의 몸뚱이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이유로 쏙 빠져 피해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픈 엄마를 나는 평생 지켜봤으나 언니와 동생들은 오랜 외국생활로 인해 이제야 엄마 곁에 있다.


글이 두서도 요지도 없다. 그냥 무겁고 씁쓸한 맘을 달래보기 위해 몇 자 끄적여 보았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인 게 분명하다. 더 이상 엄마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가 않다.



엄마~~~ 못난 딸이 늘 툴툴대고 짜증만 부려 미안해!

그러니까 이번 만은 꼭 일어나야 해. 엄마의 살 냄새가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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