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

친구와 여행

by Celine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란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을 말하는 것으로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겪은 정신적 육체적 경험을 자신의 저서 《로마, 나폴리, 피렌체(Rome,Naples et Florence)》(1817)에서 묘사하였던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네이버지식사전참조>


지금껏 나는 두 번의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했다.


"셀린~ 우리 여행 가자. 베트남"

"뭔 베트남? 난 습기 많은 거 싫은데..."

"우리 여행 다녀온 지도 꽤 됐다. 환기 좀 하고 오자 어때?"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안돼~"

"그냥 가자. 여행 같이 갈 친구가 너밖에 없어"

"아구 그래? 그럼 다녀오자"


그렇게 우리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이용하여 4박 5일 여정의 여행을 떠났다. 아직은 여름이 시작하기 전이라 더위는 참을 만했다. 친구와 나는 여자끼리 사귀는 사이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3030개의 섬이 자리하고 있다는 하롱베이로 출발했다. 잔잔한 바다, 순수한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신비스러운 약간의 해무까지. 보트에 올라 잠시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바다를 감상하고는 또 다른 보트로 갈아탔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섬의 아랫부분에 위치한 약간의 공간이 있는 사이로 보트는 향하였고 순간 만난 것은 물과 둥글게 자리한 암벽뿐 그렇게 우리는 오롯이 앉아 있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공기와 바다 그리고 암벽이 만나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몇 초가 지났을까? 순간 나의 뇌는 아무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은 쉬고 있으나 그것은 숨을 쉬는 것인지 가늠되질 않는 순간이었다. 또한 모든 세포는 영화 속 순간정지가 된 장면을 연상케 하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순간의 감정을 굳이 비유하자면 수술대에 누워 마취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초월함을 느끼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곳을 빠져나오는 동안 그리고 그곳에서 멀어지고 난 뒤 한참 동안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암석 밑으로 들어가면 병풍처럼 둘러 싼 암벽들과 물을 만날 수 있다./베트남 하롱베이

그 무아지경의 경험을 잠이 들기 전 친구에게 말하였다. 친구는 말한다.

"그래 나는 너의 그런 점이 참 부러워, 너는 늘 감각을 열고 사는 사람이잖아."


나의 스탕달 신드롬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석호의 곤돌라>라는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흐르던 눈물은 오열이 되었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미술에 대한 호기심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 감정을 무언지 모른 체 지난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그 생경한 경험이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사실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우리에게 예민하다는 감정은 사회적으로 불편하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라는 연결망 속에선 때론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 여기서 불편이란 자기 이기에 중심을 둔 것이 아닌 개인의 감정을 중심에 두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예민함이라는 무기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위에 불편 또는 불쾌하게 하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이기적임은 자신을 사회에서 고립시키거나 옭아매게 하는 단점이 될 수 있으나, 세상의 많은 예술가와 정신적, 종교적 존재들은 그 작고 세밀한 감정과 상호 연결된 연결망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었기에 그들의 발달과 발전을 통해 현재라는 시간 속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모든 세포를 열고 산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훈육이나 교육으로 암기하듯 깨달을 수도 없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났으나 그것을 자각하는 이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선천적임과 자각을 통해 교육이 더 해진다면 감정은 확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반복된 교육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즉 문학 예술 철학을 통해 대리경험이나 성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봄이다. 개나리가 피고 목련도 이쁘기만 한 이 계절 삶의 답답함으로 막아 두었던 몸을 활짝 열어 보길 추천한다. 따스함과 포근함이 가득하길 소망하며 말이다.


마지막으로 삼십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곁에 있어 준 늘 신중하고 차분한 나의 친구 그녀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베트남 하노이와 하롱베이 선상>




https://youtu.be/C_ColwsJ7zU

<너는 기억한다/폴킴> 나는 이 노래를 매일 듣고 있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참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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