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line Jun 08. 2023

나의 노스텔지어에 대하여.

서양화가 이종승

어린 시절 나의 외갓집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이층 집을 지었으며 과수원과 부동산이 제법 있는 그런 힘 꽤나 쓰던 집안이었다. 외할머니는 늘 코가 뾰족한 흰 고무신에 쪽진 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계셨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귀함이 남달라 어린아이들도 함부로 말을 걸지 못하시던 분이셨다. 외할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고 큰 키에 돌아가실 때까지 허리가 꼿꼿하셨으며 늘 무언가를 만들거나 일을 하셨다. 그럴 때면 난 할아버지 옆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대거나 할아비지 그건 왜 그렇게 만들어요?라고 물으며 의도적인 말을 건넸었다.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엄마뿐이라는 것을 어린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듯싶다. 두 분의 생신날에는 쌀 한 가마니 또는 두 가마니의 밥을 해야 할 정도 많은 손님이 부쩍 거렸던 그런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손가락에 있던 금쌍가락지를 빼 나를 주셨다. 외숙모는 그것에 질투?를 하셨는지 엄마에 대한 구박이나 험한 소리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외숙모에게 대 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외숙모는 나를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하신다. 외갓집은 쌀집이었다. 거기다 담배도 팔았다. 유일하게 지어진 그 이층 양옥집 한쪽에 담배라고 쓰여 있는 초록색 철제 간판이 붙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면 덜그럭 소리를 내던 그 간판. 시간이 흘러 색이 벗겨지고 글씨가 낡아지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자랐다.

이종승 작가의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 담배라고 쓰여 있던 낡은 철제 간판이 떠 오른다. 그것은 단순히 낡은 간판이 아닌 나의 어린 시절 노스텔지어를 강력하게 만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다. 한국의 노화가중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의 예술세계를 가까이에서 허물없이 만날 수 있기에 더욱 작가의 작품 속 색의 더께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고 있으며 이해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셀린~ 나 철들게 하지 말어. 나 철들면 작품활동 못해. 난 언제까지나 아이로 남고 싶어"

"선생님! 나이가 몇이신데 안 들은 철이 갑자기 들겠어요? 왜 철근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들고 계시게 철을 좀 들게 해 드리고 싶어요" 낡은 농을 건네면 작가는 자신이 예술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에 대해 담대히 늘 말씀하시는 그런 겉만 멋진 것이 아닌 속까지 멋진 분이시다.

데꼴라(Décollage)기법이란 원래 붙인다는 뜻의 콜라주와 반대의 뜻으로 떼어내고 박탈한다는 의미로 일상적인 사물을 찢어내고 지우고 불태우는 파괴행위에 의해 우연한 효과를 기대하는 방법으로, 파괴적인 행위를 거듭함으로써 우연성의 창조적 흔적과 사회적인 비평성을 찾아 기법을 의미한다.(세계미술용어사전/월간미술 참조) 캔버스 위에 여러 행태로 그리거나 칠을 하고 그것을 붙였다 떼어냈다 하는 행위를 수 없이 반복해야만 하나의 색의 더께가 생길 수 있는 결과물을 만나 수 있다. 그러므로 오랜 작업 시간과 색의 선택에 따라 작품의 성격을 결정 지을 수 있는 산물인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색의 깊이는 남다르다. 때론 차분하고 따듯하며 때론 강렬하다. 여기서 강렬함의 의미는 단순히 색이 가지고 있는 강렬함이 아닌 결정적 순간 판단을 내릴 때의 단호함을 의미한다 하겠다. 작가는 프랑스 여행 중 물랑루즈의 포스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포스터를 떼어내고 새로운 포스터를 붙이는 반복적 행위의 결과물로 벽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들에 착안을 해 오랜 실험 끝에 나온 지금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서양화가 이종승 디지털 작품집

https://naver.me/578EcZ2J


그의 작품을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마치 동화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듯 말이다. 어떤 날에는 작은 새가, 성자(者)가, 또 어떤 날에는 어린 시절 까만 피부에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할 말은 결국하고야 말아야 했던 고집 세던 나를 만나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작가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다. 부유했던 외갓집과 달리 어렵고 힘들게 살던 나의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몰래 건네주시던 천 원짜리 그리고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커다란 사과를 주시며 얼른 가지고 가라고 하시던 그 시절을 마주할 때마다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재작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의 오빠인 외삼촌께서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00아 외삼촌이다. 너희들이 어렸을 때 외숙모에게 그런 상처들을 받고 살았는지 나는 여태 몰랐다. 내가 사과할게. 진즉에 알았었으면 너희를 그렇게 방치하지 않았을 텐데 정말 미안하다.", " 외삼촌 그러지 마세요. 외삼촌 덕에 저희 가족 라면을 못 먹어 봤지만 흰쌀밥 먹고 이렇게 어른이 되었잖아요. 우리 가족들은 서운하지 않아요. 저희 다 잘 자랐잖아요. 다 외삼촌 덕분이에요. 굶지 않게 해 주셔서요."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니 내가 더 미안해서 너희 볼 낯이 더욱 없구나. 너희들이 잘 자라고 아픈 엄마에게 하는 모습을 보니 난 부럽다. 내 자식 중에는 그런 자식이 없어." 그렇게 한 시간 가까운 대화를 하고 나니 맥을 풀렸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습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슬픔과 아픔이 가득하다. 그러나 말주변은 없으나 정 많고 솜씨 좋은 엄마와 문학과 철학을 얘기하시던 서정적인 아빠의 따듯한 사랑이 있어 버티고 이 만큼은 자랐다.

어젯밤 화가와 통화 중 "셀린 나 요즘 3kg이 빠졌어. 가뜩이나 없는 살에 근육이 빠져나가서 이제 후들거린다." "선생님 아직 멋지세요. 저에게 늘 그런 모습으로 남아주시길 바래요."라며 나의 맘을 전해 드렸다.


화가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떠나시는 날부터는 그의 정신은 남아 우리 집 벽에 붙어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는 슬픈 약속을 이 아침 해 보았다.  



https://youtu.be/q6lXejRaSSY

마루 밑 아히에타OST 중 아리에타 송.

https://youtu.be/qH2MwzIO1n0

한글자막.

개인적으로 지브리스튜디으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특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마루 밑 아리에타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아. 뭐라도 되겠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