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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e Jul 23. 2023

이루지 못 한 꿈-제3인터내셜기념탑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Evgrafovich Tatlin)

음악, 그림, 책, 사람, 장소 등을 소개할 때 '좋아하는'이라는 형용사를 자주 붙이곤 한다. 어느 날 지인이  "Ceilne은 참 좋아하는 것도 많아요"?라는 질문에 나는 어리둥절했었다. "Celine은 말할 때 보면 내가 좋아하는 하늘!  이런 식으로 늘 좋아하는 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던데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몰랐다. 내가  모든 것을 늘 구분 짓고 있는지. 감정과 의견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전달하는 성격이라서인지 형용사를 붙이는 표현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리 나쁘지만 않다. 좋아하는 것이 많다는 것은 나의 삶을 풍부하게 해 줄 자원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대상을 밝은 이미지로 기억하려는 기질 탓이기 때문이다.


<The Soldier(자화상)/블라디미르타틀린/oil on canvas/71.5x71.5cm>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Evgrafovich Tatlin1885-1953)은 러시아(구 소련) 모스크바 출신으로, 시인이었던 어머니와 미국인 철도 기술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조각가이자 무대디자이너, 의상디자이너 등 다양한 부분에서 활동한 작가이다. 타틀린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타틀린은 조각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작가이다. 기존의 작품들은 대좌에 받쳐져 고정되어 있거나 이동이 가능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타틀린은 자신과 쌍벽을 다투던 절대주의 창시자인 말레비치와 전시회를 열며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Coner Counter-Relief/블라드미리 타틀린/철,알루미늄,도화선/1915-파손된 후 원작의 사진을 토대로 마틴초크가 재구성/1966-1970>

타틀린은 1915년 ‘러시아의 마지막 입체 미래주의 전시 0.10’전에 <코너 카운터 릴리프 Corner Counter relief1915>를 출품했다. 철판과 나무 조각, 노끈을 결합시킨 이 작품은 최초의 추상 조각 중 하나로 벽과 천장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공중에 매달려 있는 듯한 효과를 주었다. 이 전시회는 카치미르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가 <검은 사각형 Black Square1915> 으로 그의 절대주의를 출범시킨 전시회이기도 했다. 말레비치 작품의 바로 맞은편에 전시되었던 <코너 카운터 릴리프1915>는 철저하게 반(反)말레비치적인 작품이었다. 말레비치는 예술에 내재하는 모든 물질성을 배제한 반면, 타틀린은 냉정한 유물론적 태도로 재료의 물질적 속성에 집중했다. 


조각의 개념을 처음으로 완전히 뒤바꿔 놓은 탸틀린의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과 평론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 했었다. 그러나 이후 타틀린의 작품들은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The Guitar/파블로피카소/종이/65.1x33x19cm/1912/뉴욕MOMA>

타틀린의 예술적 성장에는 1913년 파리에서 만난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의 영향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당시 피카소는 타틀린의 여러 번의 방문요청에 응대하지 않았으나 타틀린은 그의 작업실에 들어갈 기회를 틈 타 <기타1913>를 접하게 되었다. 실제 피카소와 타틀린이 만난 적은 없다. 당시 피카소는 소련에서 온 젊고 가난한 타틀린을 만나주지 않았던 것이다.) 타틀린은  피카소의 실험적 입체주의 작품 <기타 Guitar1913>을 접한 후 러시아로 돌아와 전통적 회화기법을 중단하고, ‘역(逆) 부조’라는 의미의 <카운터 릴리프 Counter relief1914>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모서리를 향하는 작품은 러시아 정도회의 성화 즉 이콘을 향한 성스러움의 표현임과 동시에 인간의 도덕적 모순, 철학적, 사회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 그는 나무나 철사, 판지, 금속판 등의 기초 재료들을 일련의 유사한 기하학적 형태들로 배열하여 실내의 모서리를 가로질러 걸 수 있게 만들었다. 회화의 평면 속에 가상으로 존재하던 삼차원적 요소를 실제 공간 안에 존재하는 실제 물체로 대체시키고자 했으며, 이것이 러시아 구성주의(구축주의)의 시작이었다.

<:The Third International/나무,종이/548.6x640cm/1919-1920현재소각>

 상징과 환영을 다루는 미술세계에서 벗어나 실제 사물과 시간, 공간의 세계에 발을 디딘 타틀린은 이후 다른 미술가 및 문학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10월 혁명에 수반한 정치적 이념은 당시 활동하고 있던 미술가들과 그들의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은 그들의 혁명 이상을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 언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구성주의가 세력을 떨치며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1919-1920>은 이러한 주제에 걸맞은 건축적 조각이다. 

<제3인터내셔널 스케치/1919>

타틀린은 철저한 유물론자로서 러시아 혁명을 크게 환영하였으며 무한한 재능과 열의를 가지고 소비에트 공화국의 여러 중요한 미술학교들을 직접 이끌었었다. 이러한 유물론의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재료와 형태에 대한 예술적 지식을 실제로 응용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노동자들의 방한복, 가정용 난로, 가구 등 일상의 대량 생산 소비재를 디자인했다. 1929년부터 1인용 비행기 ‘리타틀린 Letatlin’ 프로젝트에 집중하였으며, 모터에 의지하지 않고 자체 동력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타틀린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열망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또한 그는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모스크바 예술극장 등에 장식을 의뢰받기도 했지만, 1930년대 이후 구소련의 미술 지도 방침의 변화에 따라 그 활동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당시 많은 예술가들은 체제에 반대하며 망명을 했었으나(말레비치 등) 타틀린은 정치체제보다는 자신이 태어난 땅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구 소련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타틀린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보다는 정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자신의 천재적 예술세계를 펼치지 못한 채 1953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구성주의는 회화, 조각뿐만 아니라 건축, 무대 미술, 상업 미술의 영역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네덜란드의 데 스틸이나 신조형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신사역 사거리를 지나다 마주친 공사중인 건물. 이 순간 나는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이 떠 올랐다.


제3인터내셔널은 이루지 못 한 꿈이 되었다. 당시 구 소련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사상이 뿌리를 내렸기에 이러한 문학적 건축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훗날 정치적 사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태워졌다. 현재는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지난달 신사역 사거리를 지나다 신호등에서 정차 시 우연히 한창 공사 중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타틀린이 떠 올랐고 당시 정차한 차 속에서 건물의 사진을 찍었었다. 이후 타틀린에 대한 글을 쓰려하였으나 여러 이유로 미루다 오늘에야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심리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는 신호이라서 인지 기쁜 마음이다.


타틀린의 생을 들여다보면 아픔 그 자체이다. 정치적 거짓선동에 속았으며 자신의 믿음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확신 없이 그저 믿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나의 믿음은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고 있다. 결론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에겐 이루지 못 한 꿈이 이미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들과 평범하게 살고팠던 꿈. 그래서인지 새로 꿈틀대던 작은 희망과 꿈이 또다시 이루지 못한 꿈이 되지 않기만을 소망한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그 어떤 것이든 나의 자의로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틀린의 순수함을 바탕으로 한 무모한 자신에 대한 믿음과 달리 나는 입체적 사고를 바탕으로 결론내리려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중 한 명이 바로 블라디미르 타틀린이다.




-참고용어


구축주의[構築主義, Constructivism]

‘구축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1913년)을 전후하여 러시아에서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 일어난 전위적인 추상미술운동이다.


미술이 현대적 기술의 과정과 형태를 모방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기존의 미술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조각은 공업용 소재와 기술을 이용하여 구성되었으며, 회화에서는 추상적인 형태들이 기계기술을 연상시키는 구조를 창조했다.


현대 미술상의 반(反)사실주의 운동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예술상의 한 주의로서, 자연의 묘사 또는 인상적인 표현을 배제하고 주로 기계적 또는 기하학적 형태의 합리적, 합목적 구성에 따라 새로운 형식의 미를 창조, 표현하려고 했다.


 구축(Construction)이라는 용어는 미술작품의 제작과정과 그것 자차의 구조 모두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구축주의 작가들은 '구성(Composition)'이 구축으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성은 이미 고착된 상투적인 배영방법인 것에 비해 구축은 마치 건축적 구조와 마찬가지로 상호의존적인 요소들의 기능적인 결합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구축주의 작가들은 ‘구성’이 고급미술의 엘리티스트적인 방법이라면, ‘구축’은 당시 러시아의 역사, 사회적 상황과 감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 세계미술용어대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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