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화가 중 누구를 좋아하세요? "네 저는 고흐를 좋아합니다.", "저는 피카소를 좋아합니다." 고흐와 피카소와 같은 유명화가들에 대해서는 예술에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도 그 이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오늘 피카소 보다 더 위대한 화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피카소와 함께 큐비즘을 창시하였던 그의 이름은 조루즈 브라크(Georges Braque 1886-1963)이다.
<라 시오타트의 풍경/조르주 브라크/1907/ oil on canvas/ France>
브라크는 프랑스 출신의 화가로 초창기에는 풍경화와 인물화를 거친 붓놀림으로 선명한 색조를 나타내는 야수파의 그림을 그렸으나, 세잔의 영향으로 인상파에 접근하게 된다. <라 시오타크의 풍경1907>에서 보이듯 선명한 색상과 거친 붓놀림 그리고 원시적 색조는 그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가지가 없이 곧게 뻗은 나무는 하늘을 향해 끝없이 치솟고 있으며, 땅과 수풀은 하나의 덩어리로 표현되어 마치 휘몰아치는 구름 위를 나무가 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집은 디테일하게 표현하지 않고 윤곽선으로만 표현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림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며 단순하게 표현되어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야수파의 거친 붓질과 원색적 색상임에도 불구하고 따듯함과 색채의 시원함이 공존하여 매우 강렬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레스타크의 풍경/조르주 브라크/73x60cm/1908>
브라크는 1907년 피카소를 만나며 사물을 일차원이 아닌 입체적으로 보게 되며 큐비즘을 창시한 인물로 프랑스 화단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자리하게 되었다. 큐비즘(Cubisume) 즉 입체주의란, 1900-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 운동으로 20C에 가장 중요한 예술 운동의 하나이다. 큐비즘이란 단어는 브라크가 그린 <레스타크 풍경1908>을 마티스가 보고 '조그만 입체(큐브)의 덩어리'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큐비즘은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그리고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미술사에서는 논하고 있다. 그리고 주로 단색을 사용하고 있으며, 브라크와 피카소의 그림은 매우 유사하여 두 그림을 함께 걸어 두었을 때 누구의 그림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포르투갈 인/조르주 브라크/116.8x86cm/oil on canvas/1911/바젤미술관 스위스>
브라크의 대표적인 작품 <포르투갈 인1911>이다. 그림은 단순히 평면적으로 눈에 보이는 곳만 표현한 것이 아닌, 사물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평면을 통해 한 번에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브라크의 생각이었다. 자~~ 그렇다면 포르투갈 인의 얼굴과 신체의 부분은 어디쯤에 있을까? 신체의 좌우, 상하의 모습을 한 번에 표현하였으므로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포르투갈 인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아주 리드미컬한 연주를 하여 그림은 조각조각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다. 큐비즘의 그림은 분석적(수학적)이고 과학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심상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큐비즘에 대해 조금만 공부한다면 이것처럼 재미있는 회화의 분야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때론 언어학과 구조주의로 해석하여야 하므로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
브라크는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정물화를 주력하여 그리기 시작하였다. 사물을 조각내어 분석적으로는 보는 것에 대한 시선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나, 인간으로서 회귀를 꿈꾸며 그의 그림은 노후에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상을 띠고 있다. 이것이 바로 피카소와는 차별된 점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피카소는 매우 야망 있고 정치적이며 사회적 인물이었으나, 브라크는 피카소와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종합적 큐비즘(주로 콜라주 기법을 사용)을 완성할 당시 브라크가 피카소 보다 먼저 콜라주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자 약삭빠른 피카소는 브라크보다 더 먼저 콜라주를 만들어 대중에게 선보였다. (피카소의 천재성은 분명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사상을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브라크의 작품들은 피카소의 것들과 달리 더 부드러운 색조와 선을 가지고 있다. 이는 화가 자신의 심상이 외적인 표현을 통해 나타나는 특징으로 볼 때 브라크는 피카소보다는 세상을 향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붉은 원탁/조르주 브라크/180x73cm/oil on canvas/1939-1952/퐁피두센터 파리>
온 가족이 또는 모든 사람이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원형의 탁자. 사각형의 탁자와 달리 그 어떤 서열도 없으며 편 가르기를 할 수 없이 모두가 공평히 시선을 마주하며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원형의 탁자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원형이라는 소재는 브라크가 입체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래로 꾸준히 사용하였던 모티브이다. 위의 작품은 브라크가 원탁을 주제로 그린 그림 중 가장 늦은 시기에 그린 그림을 알려져 있다. 작품은 우아하게 발레를 하는 발레리나의 다리를 연상시키듯 아름다운 세 개의 다리가 원형의 탁자를 받치고 있다. 탁자 위에는 크리스털 물병과 유선형의 기타, 과일이 놓인 접시와 흰색의 접시 주위에 놓은 두 개의 멜론 등 정물을 배열한화면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 정물의 뒤쪽에 그려진 두 개의 직사각형은 창문을 형상화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의 하단 부분이 검은색으로 칠해진 것을 보면 아마도 창사이로 햇살이 들어와 그림자를 드리운 것으로 보인다. 브라크는 이 작품을 통해 기존의 전통적인 정화물가 지니고 있던 정형적인 주제들을 이질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기괴한 형식을 통하여 깨뜨렸다. 브라크의 정물화에서도 보이듯 작품은 전체적으로 조각이 이어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이는 기존 회화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화의 장을 열어 현대미술이라는 또 다른 예술의 세계를 이끌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에 브라크는 피카소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화가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프랑스 영화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 속 주인공인 폴은 어릴 적 기억을 잃고 두 명의 이모와 함께 살아가는 피아니스트이다. 폴은 이모들이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음식을 먹으며, 원하는 음악만을 연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래층의 살짝 열린 문에 호기심으로 들어간 마담 프루스트의 집. 그 집안은 온갖 꽃들과 지금껏 폴이 경험하지 못했던 식물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폴은 그곳에서 마담 프루스트로부터 특별? 치료를 받게 된다. 이후 폴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닌 조각조각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각난 기억의 파편을 이어 붙여 하나의 완성된 인간이 된 폴. 그는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은 물론이고 사랑까지 얻게 된다. 그러나 마담 프루스트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다. 조각난 기억은 그 연결고리를 찾아 하나로 이어 붙였을 때 한 인간의 미시사적인 역사가 완성된다. 브라크의 그림에서 보이듯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체가 되었듯 우리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조각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조각이 깨지고 흐트러질 때 전체는 무너지고 만다. 그러므로 자신을 더욱 가치 있는 존재라 생각한다면 이 사회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NOTE: 내가 좋아하는 짐 브릭만의 음악을 들을 때면 상기된 마음이 늘 편안해진다. 솜사탕을 머금은 듯 부드럽고 사랑가득한 피아노의 선율 말이다. 오래 전 노래이긴 하지만 나는 지금도 짐 브릭만의 피아노를 즐겨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