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아름다워라.

혜허의 양류관음도에 대하여.

by Celine

나에겐 종교가 없다. 나에게 종교가 없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게으르기 때문이다. "Celine!! you'r very lazy"라고 늘 나를 놀리는 친구의 말처럼 나는 때를 맞추어 주기적으로 어딘가를 가야 하는 책임감이 주어진 일을 해결하지 못하는 성격이 있다. 그러나 나도 인간인지라 삶이라는 것이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간혹 사찰이나 성당을 찾고는 한다. 조용한 사찰의 마루 끝에 앉아 봄, 가을에는 살갗을 스치는 바람에 힘들게 사찰을 찾아 걸어 올라간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날려 버린다. 또는 한 겨울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하고 한기가 가득한 성당에 앉아 오롯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늘 흔들리는 마음을 부디 신이 다 잡아 주기만을 바랄 때도 있다. 이러한 행위는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행위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쯤인가 부모님이 불국사 여행을 다녀오시며 나에게 선물하셨던 아주 작은 석굴암 모형이 있었다. 새벽 잠들어 있던 나는 잠결에 그 작은 모형을 보았다. 그리고 이유 없이 기절을 한 후 삼일 정도인가 학교를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식은땀을 흘리고 헛소리를 하며 정신을 잃어 부모님은 그 작은 불상을 나의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워낙 혼자 상상 속 세상에서 사는 것에 익숙해서였는지 종교미술이 가지고 있는 그 신성한 힘?으로 인해 아마도 잠재의식 속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후 성장하며 불교미술을 가까이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원 수업 시 동양미술사 중 불교회화와 조각을 전공으로 하여야 하는 나로서는 그것을 미뤄낼 수가 없는 불가피한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교수님께 말씀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기암을 할 정도로 책을 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강의하시던 교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불교조각과 회화를 꺼내어 보여 주지 않으셨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아주 천천히 내가 가지고 있던 불교미술에 대한 트라우마를 스스로 깰 수 있도록 강의를 해 주셨기에 나는 불교미술을 다른 전공으로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


종교미술 중 불교미술은 우리의 문화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랑스러운 예술의 한 분야이다. 특히 불교가 가장 꽃을 피웠던 고려시대의 불화는 그 섬세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무아지경으로 인도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각 개인의 종교가 다르다 하여도 우리가 우리 것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독자들에게 한 번쯤은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래서 오늘은 고려시대 불화 중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양류관음도/혜허/고려1300년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양류관음도/혜허/144x62.6cm/비단에 채색/1300년대경 고려시대/일본 도쿄 센소지>

고려시대의 불교는 교리의 발전보다 현실 생활과의 접촉에 있어 더 사회적인 중요성을 보여준다. 도교를 받아들여 가람의 위치와 석조물 등의 위치가 자유로워졌다. 이는 종교가 국교 또는 신분의 계층을 넘어 개인 기복적 종교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시대에는 아미타불화가 많이 그렸다. 아미타불이 사는 곳이 바로 서방정토 즉 '극락'을 의미한다. 서방세계에서 설법을 하는 아미타불은 현재까지 가장 인기가 있는 부처로 아미타불화가 속세의 중생들은 극락의 세계로 인도하는 부처라고 믿었기에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이 아미타불화를 많이 그렸던 것이다. 그중 관음보살도는 수월관음, 양류관음, 백음관음 등으로 불리며 내세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복신앙의 대표적이 주제이다. 온갖 보배와 꽃과 과일이 풍부한 청정한 남인도의 보타락가산에 살고 있으며, 풍부한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솟아나는 연못 옆의 금강보석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중생을 이롭게 하고 선재동자에게 설법하는 모습으로 가장 많이 그려진 그림이다. 위의 그림은 현재 일본이 가지고 있는 약탈 문화재 중 하나인 <양류관음도/혜허>이다. 양류관음도는 고려시대 불화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최고의 극치이다. 이 관음도는 보통의 관음도와 달리 광배가 버들잎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으며 물방울무늬라고 표현하는 학자들도 있다. (여기서는 버들잎으로 표현하겠다.) 그러나 그 버들잎 모양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다.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약간 더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서양의 그림과 달리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그린 것이 아닌 그림에 담긴 그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모습이다. 고려의 불화들의 바탕은 주로 붉은색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그러나 이 양류관음도는 아주 정적이며 우아하고도 단아한 모습을 보여 준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색상으로 그림을 통일하여 차분하게 가라앉는 색조의 품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관음상을 중앙에 배치하고 다른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였다. 이는 그림의 주제는 관음상 그 자체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관음보살의 하얀 천의는 아주 작은 세필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기에 더욱 신비스럽고 우아하게 표현되었다. 그것은 마치 결혼식 주인공인 순백의 신부가 성스럽게 웨딩드레스를 입고 콘트라포스 자세를 취하며 서 있는 듯하다. 또한 하얀색 천의는 관음의 살갗이 보일 듯 말 듯 아슬하게 표현하였다. 살갗이 보일 듯 말듯하게 그려진 보살의 천의의 표현은 고려시대의 불화만이 가지고 있는 우아함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인도의 불화는 입과 코 등에 하이라이트를 주어 그림에 입체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나 고려의 불화는 아주 평면적이나 그 속에 우아함과 고고함 그리고 종교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양류관음도 세부1>
<양류관음도 세부 2>


<양류관음도 세부 3>

지금 관음보살은 우아한 손 모양으로 버들잎을 들고 있는데 버들잎은 연꽃을 피우는 물을 향해 아래로 향하고 있다. 버드나무는 자라서 그 잎이 아무리 위를 향하려 하여도 땅을 향하여 아래로 처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산은 남성적이며 물은 여성적이므로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버드나무는 여성을 의미한다. 버드나무는 악을 쫓아내는 기운이 있다거나 그 잎에 물을 묻혀 뿌리면 정화의 기운이 있다고 믿었던 것은 바로 보살이 중생을 보살피려는 의미로 이는 하나의 모성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고려의 불화는 매우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관음 앞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있다. 그 연꽃은 마치 선재동자가 관음이 살고 있는 천상의 세계로 이끄는 발판과 같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관음의 광배가 빛이 아닌 버드나무로 표현된 것은 버들잎이 광배를 대신한 것 같지만 관음은 천계로부터 그를 찾는 인간의 외침을 듣고 버들잎과 같이 아름다운 문에서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혜허가 관음의 광배를 버드나무 잎과 같이 녹색의 색조로 칠한 것도 버드나무와 그 잎을 통해 불교의 이치를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고려의 불화는 원나라 침공으로 강화도로 옮겨간 고려 조정이 몽고와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부터 약 120년간 제작되었다. 이 시기 그려진 불화는 전 세계적으로 160점 정도 남아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불화는 약 10점 정도가 된다. 주로 색채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각종 돌가루(색을 가지고 있는 돌가루)나 금가루 등을 사용하여 그렸으며 이러한 그림을 그리는 직업화가가 있기도 하였고, 스님들이 직접 그리기도 하였다. 고려의 불화는 복채법을 사용한 것이 매우 큰 특징이다. 복채법이란 보통의 그림은 재료의 위에 바탕을 그린 후 그 위에 바로 채색을 하는 기법을 사용하나 복채법은 그 반대를 의미한다. 즉 천이나 비단의 뒷면에 바탕을 그린 후 채색을 하고 채색한 부분을 두드려 앞면에 색채가 스며들어 보이도록 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그렇게 스며든 색채는 다른 기법의 그림들과 달리 은은하면서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글은 좀 길었다. 읽는 독자들에게 한 번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픈 욕심이 앞선 듯싶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것을 알지 못하고 남의 것만을 추종하는 것은 나의 뿌리를 알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종교를 떠나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와 후세가 이 땅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며, 나아가야 할 이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첨단기기의 발전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 가는 우리의 많은 문화에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잃고 아직 떠돌고 있는 우리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또한 문화란 우리 삶의 뿌리요 우리의 살아가는 근본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늘 나에게 끝없는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이숙희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다시 드리고 싶다. 늘 멋지고 시원하신 나의 교수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fcL8KqpgKs 두 번째 달 얼음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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